걸음아, 걸음아 나와 함께 떠나자
(금강 길 홀로 걷기 기행문 5)
강헌희
- 어쩜, 무령왕은 죽어서도 땅 부자가 되었구나. -
옛날에는 <공주>로 들어서거나 나갈 때 유일한 교통로가 되어 주었던 <금강교>는 이제는 보행과 자전거 도로로만 이용되는 ‘용도 축소’의 운명에 처해있다. 주된 자동차 통행도로는 대한민국의 눈부신 건설 토목 기술의 발달에 따라 웅장한 규모의 ‘고가 도로’가 사통팔달로 이어져 있었다.
내가 70년대 초반, 대학 다니던 때에 어느 잡부가 기존의 산소 주변 배수로 공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던 무령왕 능의 묘역이 그때에 비하면 엄청나게 커져 있었다. 나는 새삼 살아서 큰 위세를 부리던 자는 죽어서도 관권을 이용하여 땅 부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한때 세계적인 골프의 여왕으로 화려하게 등극하였던 박세리의 ‘투혼 탑’도 보인다. 탑신에는 ‘백옥 같은 다리에 구리 빛 얼굴로 우리 겨레의 투지와, 슬기와, 자신감을 만방에 펼쳤다’며 그녀의 공적을 높이 찬양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변 사람 들리지 않게 목소리를 잔뜩 낮추어서 조심스레 하는 말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박세리가 뜨기 시작하면서부터 대한민국의 여권은 상종가로 치솟고, 남성의 권위는 하한가로 추락하기 시작한 것 아닌가하는 생각에 나는 선뜻 과장된 문구에 얼른 동의하고 싶지는 않았다.
- 곰나루 백사장에 새겨 놓은 내 연인의 이름은 어디서 찾아보나 -
옛적에는 낭만이 있었던 곰나루의 정취는 아예 찾아 볼 수가 없다. 곰 아낙이 나무꾼 남편을 납치하여 바위굴에서 살았는데…, 어쩌고 하는 애달픈 전설을 옮겨 놓기에는 너무 격에 맞지 않을 정도로 현대식 건물과 위락 시설로 꽉 채워져 버렸기 때문이다.
또다시 <이명박>을 떠올려야 하는 분노의 지점에 이르렀다. 대청댐에서 겨우 빠져나온 물길을 <세종보>에서 한 차례 막아서더니 이곳 <공주보>에서 두 번째로 가로 막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으로 흐르는 강물마저 ‘바리케이트’를 쳐놓고 검문하려 하는 어이없는 권력의 행태에 다름이 아니다.
<고마나루 솔밭>에 이르렀다. 대학시절 누구와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섶 다리를 건너고 마을 앞길을 지나 인적이 드문 백사장에서 라면 끓여 먹던 생각이 이젠 그리움이 되어 내 가슴 언저리에 번져 오는 듯하다. 내버려두어도 잘 흐르고 있는 물길을 바로 잡는다는 명분으로 그 많던 강변의 모래는 품질 좋은 건설 자재로 모두 팔려 나가다보니 다시는 모래밭 위에 하얀 발자욱으로 그린 하트표시 안에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새겨 넣던 ‘백사장의 낭만’은 이제 다시 되살려 볼 수도 없게 되었다.
- 밤의 금강에는 침묵이 잠겨있다 -
금강의 젖줄을 따라 아래로 내려올수록 간간히 <가창오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가족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요즘에 AI 병원균의 매개체로 지목되어 혹독한 수난을 겪고 있는 종류의 철새다. 군집을 이루어 이동하는 생태적 특성 때문에 집중적인 예방조치를 치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한 마리씩 따로 따로 생포하여 예방주사를 놓아 줄 수도 없어서 고민이다.
혹시 군대에서 대대장이 훈련병 집합시키듯이 그들 중 총사령관 역을 맡고 있는 리더를 정중하게 초대하여 방역에 협조하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인간과 그들 간에 의사소통이 가능한 통역관만 찾아 낼 수 있다면 협상이 아주 어려운 것만은 아닐 터인데. 이래저래 관람료 없이 <군무 에어쇼>를 보여 줄 때만 하더라도 인기 절정의 박수를 받던 시절에서 이제는 제발 이 땅을 빨리 떠나주기만을 애원하는 관계로 전락해 버린 그들의 사정이 딱하기만 하다.
<자전거 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군데군데 ‘인증센터’라는 것이 보이는데, 이는 올바른 ‘행위’에 대한의 보상이라기보다는 형식적인 ‘스펙’을 요구하는 요즘 취업 형태를 반영하는 왜곡된 문화의 일단이 아닌가 하여 좀 입맛이 씁쓸하다. 내가 내 건강 챙기기 위해 운동 삼아 하는 일을 굳이 국가의 인증까지 받아야 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제 서서히 잔잔한 강물위에 밤이 내려서고 있다. 흐름을 멈추어 버린 강의 주변은 삭막한 침묵이 감돌고 있을 뿐이다.
나는 잠시 강변길을 벗어나 차도로 나선다. ‘여행에 나서면 해가 지기 전에 잠자리부터 정하라’는 한비야 선생의 여행 10계명 중 하나를 무시했다가 혼 줄이 났던 어제의 쓴 경험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오늘은 좀 일찍부터 서둘러 잠자리 확보 전략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리 길을 걸으며 좌우로 고개를 두리번거려도 도대체 마을도 보이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떠나는 사람은 많고 돌아오는 사람은 적은 농촌은 지금 한창 잡초가 점령의 기세를 올리고 있는 중이다. 이러다가는 <지구 멸종 위기 동물 보호 종>의 목록에 머지않아 ‘농촌 사람’도 포함시켜 할지도 모른다는 다소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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