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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길 홀로 걷기 기행문 2

허니강 2014. 4. 28. 18:12

걸음아, 걸음아 나와 함께 떠나자

(금강 길 홀로 걷기 기행문 2)

강헌희

- 천사는 전원을 만들고 악마는 도시를 만든다는데 -

바야흐로 대박의 꿈을 향한 건설의 활력이 넘치는 신도시 <세종>에 들어섰다. 하루가 다르게 변모해 가고 있는 이른바 <행복도시 세종>의 모습은 과히 ‘천지개벽’을 방불하고 있다. 이미 도심에는 땅의 효용가치를 최대화하기 위한 초고층의 아파트가 마치 대나무 죽순 자라듯이 하늘로 치솟아 오르고 있다.

아직도 초대형 포크레인이 지구 표면 성형 기술을 이용하여 확보해둔 광활한 토지 면적은 여기저기에서 돈 놓고 돈 먹으려는 땅 투기자들의 군침을 자극시키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의 산야에서는 적어도 20여년을 넘기었을만한 장년기 소나무들이 웅장한 기계톱 소리에 놀라 자빠져 내리고 있다. 신도시 <세종>은 그토록 학살당한 자연의 묘지 위에서 화려하게 번창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 강물은 아래쪽으로 흘러 내려가고 싶어 한다 -

이윽고 세종에서 금강 변으로 내려섰다. 자전거 도로 안내 표지판은 나를 보고 <대청댐(33km)>을 향한 역류의 길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금강 하구둑(111km)> 방향을 향하는 순리의 길을 따를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한다. 나는 이제 늙어가는 내 나이로 보아서도 순리의 강물을 따라 아래쪽으로 내려가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오늘은 금강 물길을 따라 옛 백제의 고도 <공주>까지 걸어 보려고 한다.

 

오후 2:00시경에 유성 <반석역>부근을 출발하여 자동차로는 불과 10여분이면 될 <세종>까지의 15km 거리를 ‘자전거 전용도로’로 걸어서 무려 2시간 반 만에 겨우 도착하였다. 시간의 효용성만으로 본다면 참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시간의 상대적 개념으로부터 벗어나 영혼의 자유를 만끽해 보는 일은 더욱 가치 있는 일이다.

인류가 최초로 직립으로 걸음마를 익힌 것이 지금으로부터 700만년전 쯤으로 추정해 본다면 오늘날 자동차로 달릴 수 있는 최고 속도와 고대 인류의 원시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내 직립 보행 속도를 비교해 보면 얼추 인류 탄생 이후의 문화의 발달 정도를 가늠해 볼 수도 있으리라.

지금 내가 강물을 따라 걷기 시작하려는 길은 지난 <이명박 정권>에서는 단군이래의 최대의 ‘국토 건설 토목 공사’라고 자랑하고 싶어 하지만 오히려 내가 보기에는 씻을 수 없는 정책적 행패라고 단정 할 수 있는 ‘흐르는 강물 가로막기’의 한 지점인 <세종보>이다.

원래 우주 창조주가 계획한 지구 지형 상의 설계 도면상으로 보면 물은 산에서 강으로, 강에서 바다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다분히 환상적인 경제적 논리로 순박한 민심을 속여 국가 권력을 움켜잡은 위정자들은 위장된 속셈으로 돌이킬 수 없는 ‘4대강 국토 사업’이라는 실책을 범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말미암아 강물은 더 이상 아래로 흐르지 못하고 이처럼 자유를 속박 당하게 된 것이다. 참으로 애통해 할 일이다.

 

갇혀 지내는 신세를 한탄하는 듯한 <세종보>의 강물을 뒤로 남겨두고 내가 그곳을 떠난 시간은, 나보다 한참 먼 거리를 두고 앞장 서 가면서 날보고 빨리 따라 오지 않는다고 재촉하는 듯한 석양이 이제 막 서쪽 산 너머로 이울어져 가기 시작하는 오후 늦은 시간(4:30분경)이었다.

 

약간은 찬 기운을 느낄만한 강바람을 쐬며 상쾌한 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강변 갈대밭에서 갑자기 까투리 몇 마리가 ‘파드득’하고 동시에 나르더니 곧바로 장끼 한 마리도 덩달아 나른다. 아마도 <일부 다처제>하의 꿩 가족들이 번식의 사명을 위해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 ‘사랑 놀음’을 즐기다가 인기척에 놀라 도망쳐 가는 모양이었다. 나는 마치 남녀 간의 은밀한 현장을 덮치는 것 같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또다시 길을 가는데 이번에는 고라니 새끼 한 마리가 놀라서 달아난다. 한참을 또 가다보니 이번에는 살찜이 두툼해 보이는 어미 고라니가 내 앞을 지나 튀어 도망쳐 간다. 참, 이상한 일이다. 왜 극히 적은 수의 애완동물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람들을 무서워하고 멀리 도망쳐 가려고만 할까. 그들은 아주 먼 수렵시대부터 인간의 ‘살코기 선호 식성’을 알아챌 수 있는 유전적 감각이 발달되어 있는 것일까? 나는 산이나 강 길을 걸으면서 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서 달아나는 동물들을 볼 때마다 그들로부터 심하게 왕따 당하는 기분이 들어 씁쓸해지곤 한다.

 

강가의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역시 갈대는 흔들려야 아름답다. 따라서 강변 산책길을 외롭게 홀로 걷고 있는 어느 여인의 모습도 갈대처럼 연약해 보일 때 비로소 뭇 남성들의 보호 본능을 자극할 수 있다.

 

강물위에 떠있는 물오리 한 쌍이 꽥꽥거리며 소리를 지른다. 저희들 나름대로의 짝짓기를 위한 프로포즈인지, 배가 고파서인지, 밤이 되어 무서워서인지, 그도 아니면 사춘기의 이유 없는 불만을 터트리고 있는 것인지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다. 제발 내가 알아듣게 말을 해봐, 요놈들아!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