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아, 걸음아 나와 함께 떠나자
(금강 길 홀로 걷기 기행문 7)
강헌희
- 어, 내 핸드폰 젖병이 어디로 갔지? -
이제 또다시 떠나는 일이 슬그머니 두려워진다. 그러나 오늘은 늦장부리지 않고 일찍 떠나서 여유 있게 다음의 숙박지에 도착하여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하였다.
‘아침식사 됩니다.’ 라고 써 붙여 놓은 식당을 찾아 들어가 밥을 먹고 나서 요 며칠 뜸하게 지낸 세상 인연들과의 소통을 시도해보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아차, 숨이 끊어져 있었다. 나 배고픈 줄만 알았지 미처 내 분신처럼 따라 다니며 온갖 심부름 다 해주던 나의 충실한 꼬마 보좌관(핸드폰)에게 간간히 젖을 물려주는 일을 깜박 잊고 있었던 것이다.
급히 가방을 뒤져 전기 도시락(충전기)을 찾아보니 아뿔사! 여행 첫날 저녁 모텔 방에서 밤새워 그에게 젖(전기)을 먹이고는 젖병은 그대로 두고 나와 버린 사실을 그때서야 겨우 기억해 내었다. ‘아이구, 어쩐다냐?’하고 잠시 당황해 하다가 ‘그래, 차라리 이때나 너도 낮잠 좀 실컷 자 두거라’하는 심정으로 당분간 세상과의 밀착거리에서 멀어져 있기로 결심하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혼자 떠난 여행에서 그나마 긴급 상황 시 가족들과의 연락 방법을 확보해 두어야 한다는 ‘생명 안전보장’ 심리를 떨쳐버릴 수가 없어 무작정 인근의 핸드폰 가게에 들어가 인트탄트(급속 충전) 식료품 공급을 요청했으나 ‘그런 건 없다’는 싸늘한 대답만 얻고 나왔다. 결국 비교적 떠돌이 여행자들의 사정을 잘 알아 줄만한 주변의 ‘유스 호스텔’ 프런트를 찾아가 겨우 한 시간짜리 젖동냥을 해 먹였더니 다소 안도감이 들었다. 핸드폰은 마침내 우리 현대인에게는 결코 없어서는 안 될 문명의 이기이면서도 한번 곁을 허용하면 쉽게 떼어 내버릴 수 없는 신앙적인 이단자와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듯하다.
- 부여 ‘구드래 공원’ 나룻 터에서 다시 금강과 조우하다 -
뜻하지 않게 숨 쉬는 일을 멈춰버린 핸드폰을 다시 소생시키기 위해 동냥 젖 얻어 먹이려다 보니 어언 오전 11:00시가 훌쩍 넘어버렸다. 서둘러 강변길을 타고 내려가려 하는데 이번에는 웬 사람들이 관광버스를 동원하여 떼거지로 몰려와 굿판을 벌리고 있었다. 병적으로 호기심이 강한 내 성미에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가까이 다가가 보았더니 염불하는 스님이 주연을 하고 신도들이 조연으로 출연하는 이른바 물고기 ‘방생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어떤 할머니는 겨우 손가락 크기의 물고기 몇 마리 풀어 줄 거면서 부처님께 부탁하고 싶은 소원은 어찌나 많은지 나중에는 손자 놈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그 통에서도 핸드폰 꺼내어 ‘에미야, 니 아들 이름이 뭐였더라?’하고 묻고 계셨다. 나는 속으로 (할머니, 부처님은 이미 학년(=나이)별로 출석부 다 만들어 갖고 계시니까 그냥 ‘내 손자 놈’이라고만 해도 다 알아들어요!)라고 말해드리고 싶었다.
사실은 그 광경을 보면서 우리 집 노모님 생각이 났다. 매일 새벽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시자마자 맨 먼저 하시는 일이 낡은 화장대 가운데에 ‘성모님 상’을 정중하게 모셔 놓고, 그 양쪽에는 왕 촛불 두 개를 켜놓으시고는 우리 집안 온 식구들 이름을 주어 삼키시며 어찌하든지 복 많이 달라고 비는 것만으로도 부족하여, 슬그머니 메모지를 꺼내어들고 우리 가족 소유의 차량 번호까지 다 불러드리면서 오늘 하루 ‘무사 안전’을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드린다. 아무래도 듣고만 계시는 성모님께서도 피곤해 하실 것 같아서 하루는 ‘어머니, 그렇게 많은 사람 복 달라고 하시면서 성당가시면 연보 돈은 얼마씩이나 바치세요?’ 하고 물었더니 ‘글쎄다. 사실은 나도 염치가 없어 지난주부터 내 용돈을 줄여서라도 조금 더 올려드리기로 했다.’하시며 멋쩍게 웃으시던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처럼 우리 부모님들은 하나같이 자식 손주 복 받는 일이라면 염치도 체면도 없는 것이리라.
늦어진 발걸음을 서둘러야겠다. <백제교> 밑을 지나니 옛 ‘나룻 터’ 유적지가 나타난다. 지금은 강을 사이로 하여 양방향 소통의 통로가 되어 주었던 ‘나룻 터’의 옛 정취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오직 높은 교각에 얹혀 하늘을 비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웅대한 현대식 교량으로 이어져있을 뿐이다. 그런데 온갖 사람들끼리의 깊은 인정과 이별의 애환과 삶의 활기 면에서는 아무래도 현대적 교량 시설이 황포돛대의 터미널이었던 ‘나룻 터’의 기능을 따라잡지 못할 것 같다.
이곳도 옛 백사장에 엄청난 규모의 시민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아마도 부여시민을 한자리에 다 끌어 모아 놓아도 다 채우지 못할 정도의 광활한 면적이다. 아직도 활용 가능한 광대한 면적이 막대한 국가예산의 투입에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이제 곧 봄이 되고 여름이 오면 마치 백제와 신라의 황산벌 싸움과 같은 대규모의 전쟁이 인간과 풀 사이에 벌어질 것이다. 어차피 인간이 다 차지할 수 없는 땅이라면 차라리 자연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어떨까? 몽고의 초원처럼 풀이 자라고 말이 뛰어 노는 곳으로.
잘 닦여진 <자전거길>이 끝도 한도 없이 이어진다. 주변의 경관도 아주 아름답다. 그러나 아직은 겨울의 차가운 날씨가 다 풀리지 않아서인지 자전거 동호인들은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지나가는 차량뿐만 아니라 과속 질주하는 자전거의 위협으로부터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 길을 가고 있다.
그렇다면 수 십 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국가 예산을 들여 지금 내가 이토록 아름다운 강변을 따라 ‘도보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해준 <이명박> 전 대통령님께 감사라도 드려야 하나? 그건 아니다. 인간은 자연이 양해하는 최소한도 내에서만 행복을 찾아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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