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터 강허니
지금부터서라도 할 수만 있다면 지구 끝까지 한없이 걸어 보고 싶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길은 너무 도시화 되어 있어서 질주하는 차량과의 충돌의 염려와, 오염된 공기로 인한 호흡의 곤란과, 각종의 소음이나 축산물 등의 악취로 인해 쾌적한 기분으로 길을 걷기에는 그다지 좋은 환경이 되지 못하였다.
그런데 고국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이곳 라오스에서 이룰 수 있는 행운의 기회를 얻었다. 내가 지금 거주하고 있는 이 곳은 이제는 한국 영토에서는 찾아 보기 어려운 천혜의 쾌적한 환경 조건을 가진 오지이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나서면 주요 간선 도로를 빼놓고는 모두가 목초지 사이로 나있는 스폰지같은 풀밭길이거나 황토 흙길이다. 그래서 아주 기분좋게 걸을 수 있다.
오늘 나는, 아침 일찍부터 그 길을 찾아 나서려고 한다. 아니 찾아간다기 보다는 끌려간다고 해야겠다. 원래 길이란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장구한 시간동안 인류의 조상들이 현실적인 생산의 필요에 따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수시로 길목이 막혀 있어서 그때마다 되돌아서 나와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내가 살아 온 인생도 그처럼 수없는 단절의 아픔을 겪어오지 않았던가?
순탄한 길이 끝나자, 어쩔 수 없이 이처럼 좁은 논길을 따라 가 보았더니
아이쿠! 이런, 외나무 다리가...
하는 수 없이 아찔한 기분으로 불안하게 다리를 건너다 보니 하마터면 토끼가 집에 두고 왔다는 내 소중한 간 마저 떨어질뻔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 간도 소금에 절여 냉장고에 넣어두고 올껄 그랬나?
알고 보니 바로 지근의 거리에 이렇게 쉽게 건널 수 있는 보가 있었네?
(나의 인생도 이처럼 혜안이 부족하여 부질없이 방황하던 때가 많았다)
이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소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 서 있었다
혹시 이곳은 소씨 가족 소유의 전원마을 아닌가?
이 길의 끝도 결국은 막혀 있어서 다시 되돌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이 지역은 왜 산에 나무가 많지 않은지를 이제야 알겠다.
낮은 구릉지를 목초지로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ㅏ
내가 살고 있는 곳의 반대편에서 바라 본 전경은 참 아름다웠다.
(가끔은 나를 이처럼 객관화 시켜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활한 목초지, 소씨들의 자유로운 놀이터?
이곳은 쥔 없이 버려진 허름한 농막이었다
여기는 우리 소씨 가족들의 낙원이로세
장례차량의 질주
(죽음으로 가는 길이 뭐 그리 바쁘다고 그토록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뒤따르는 상주와 조문객들
(그들도 언젠가는 이 길을 따라 가겠지?)
북망산천도 이렇게 아름다울까?
운전 교습소도 오늘은 쉬는 모양이군
운전 학원 강의실이 왠만한 시골 벽지 학교보다 나아 보이네 그려
1945년에 태어나 2006년에 돌아가신 분의 무덤.
(죽어서도 콘크리트에 갇혀 지내려면 얼마나 답답하실까?)
마을로 들어 가는 길
'평화'가 비둘기처럼 내려 앉아 정다운 이웃과 함께 사는 곳
마을 뒷길은 징검다리를 건너 시내로 이어져 있었다
(우리도 그동안 무수히 건너왔던 출렁대는 인생길?)
마을 앞 공터에서 애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불을 피우고 있었다. 사진이 좀 흐리군.
엎어진 바에 쉬어간다더니, 웅덩이를 건너다 아예 자전거 세차까지? 햐! 고녀석들.
야, 그집 참 멋져부러 잉~~
버스 터미널에 들려 이 다음 여행 스케줄이나 잡아볼까?
이곳은 우리학교(살롬 스쿨)에 비하면 도심의 귀족 학교로군.
남렁시장의 집단적인 청과물 노점상, 가격 흥정도 재미있는 놀이였다
늦어진 점심은 쌀국수로. 아줌마, 제발 향(고수)은 빼 주세요
동네길을 지나다 보니 애들이 단수수를 베고 있길레
껌하고 바꿔 먹었다
한가하게 그물짜는 구멍가게 아저씨, 어디를 가든 '싸바이디' 한마디면 금새 친한 친구가 되어 버린다.
(*말이 안통하는데 어떻게 친구가 되냐고요? 지는 지 하고 싶은 말 하고, 나는 나하고 싶은 말하다가 종내는 둘이 동시에 크게 한번 웃어버리면 대화 끝.)
낙껀(나 먼저 간다 잉~)
대나무로 된 징검다리, 떨어지면 황천길? (그 정도는 아니고)
아침에 나를 따라 나서려는 자저거를 떼어 놓고, 무려 6시간 정도를 거의 쉬지 않고 걸었더니 지쳐 다리가 무거워져 있는데, 동네 아저씨가 오토바이로 학교 앞까지 태워다 주셨다. 고마워서 시장에 들려 사들고 온 사과 2개를 꺼내어 드렸다.
(* 오늘 일기는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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