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똥통에 빠져 본 적이 있나요?
강허니
어릴 적, 하루는 따분함을 면하기 위해 나와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네 집을 찾았다. 막상 재미있는 일을 찾지 못하고 있다가 언제나 나보다는 잔꾀 쓰는 일에 한발 앞서 가던 친구가 아주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며 환호성을 질렀다. 듣고 보니 누군가를 유인하여 크게 골탕 먹여 주는 일이었다. 남을 괴롭혀 주는 일이라서 선뜻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워낙 묘안을 찾아낸 친구의 기분이 들떠 있어 쉽게 만류 할 수도 없었다.
제법 치밀하게 세워진 친구의 계략에 따라 우리는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하였다. 우선 집 앞마당에 있는 감나무 주변을 범행(?) 장소로 설정하고, 농사용 도구를 이용하여 최대한 넓고 깊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그런 다음 그 당시의 문화 환경에서는 일반적으로 이용되던 재래식 변소에 가서, 메탄성 발효물과 질소산화물 등이 적당하게 배합된 오물을 서로 협력하여 작업 장소까지 힘들게 운반하였다. 웅덩이에 오물을 넘치도록 채워 넣고 그 위에는 짚으로 살짝 덮어 혹시라도 우리의 속임수가 눈치 채이지 않도록 온갖 지혜를 다 짜내었다. 노고의 땀을 흘리면서도 그다지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 걸려들어 망신스러워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즐겁기가 그지없었다.
이윽고 작업을 마친 우리들은 사립문 쪽을 연신 바라다보면서 첫 번째 눈요기 감을 기다렸다. 말하자면 겨울철에 깊은 산에 들어가 야생 동물 포획을 위한 올무를 설치 해 놓고 주변에 숨어 있다가, 걸려든 짐승의 생존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을 보면서 유쾌해 하는 기분이랄까? 인간의 본성에는 역시 고약한 악마의 속성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해 주는 일이기도 하였다.
기다리던 중에 드디어 첫 손님이 나타났다. 그 친구의 아직 장가도 안간 막내 삼촌이 때마침 찾아 온 것이다. 그 날은 어디서 맞선이라도 보기로 했는지 아주 단정하고 말쑥한 신사복 차림새였다. 이윽고 친구의 유인책이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삼촌, 잠깐 이쪽으로 좀 와 볼래?’ 하였고 평소에 조카 녀석을 어지간히 끔찍이 여기던 삼촌은 아무런 의심 없이 ‘왜 그러는데?’ 하고 음모의 현장으로 가볍게 발걸음을 옮겨 와 주었다.
결국 삼촌은 우리를 위해 코미디 극장의 일류 배우가 되어 주었다. 발목 깊숙이까지 오물에 빠져들어 간 삼촌의 황당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작전의 승리감에 빠져 박장대소하기를 한참 동안이나 계속하였다.
그런데 정작 우리의 통쾌한 웃음을 그치게 한 것은, 그 삼촌의 예상외의 행동 때문이었다. 화를 내지도 않고 단지 울상을 지으면서 ‘야-! 오늘 선보러 가려고 아침 내내 닦아 신은 구두인데!’하면서 ‘에이- 참, 에이- 참’하고 넋두리처럼 푸념만 늘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후 길거리에서라도 그 친구의 삼촌을 만나게 되면 항상 죄인처럼 부끄럽고 겸연쩍었다. 끝
'읽을거리 > 내 생각, 내 마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숲길을 걸으며… (0) | 2009.06.01 |
---|---|
왜 하필이면 어린이들 것이어야 했을까? (0) | 2009.06.01 |
우리 집 강아지 형제의 우정 (0) | 2009.06.01 |
“오늘 저녁엔 선생 놈들 포식 하겠다” (0) | 2009.06.01 |
어린 시절, 행복은 끝나고 고생은 시작되던 날 (0) | 2009.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