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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에 와서보니 5

허니강 2015. 9. 12. 22:16

만약에 우리의 경제, 문화적 수준이 지금의 라오스 정도였다면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보면 비록 순탄치 못한 역사의 굴곡을 겪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태어난 것만도 신의 축복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 목적지를 선택하는데 있어 이미 길들여져 있는 생활 편의상 좀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 가 볼만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내 스스로 자원하여 혼자 떠난 이번 여행은 어쩌면 그동안 바쁘게 사느라고 잊고 지냈던 '나'를 다시 되찾아 보는 참 의미있는 여행이 되고 있는 듯 하다. 나와 살아 온 환경이 비슷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여기에 와서 며칠 지내보면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그동안 정치적인 혼란을 겪으면서도 다행히도 경제, 문화적으로는 남들보다 좀 잘살게 되었다고 해서 우리보다 후진국들을 깔보고 그들 앞에서 뻐기기를 좋아 할는지 모르지만, 사실은 지난날의 지독한 가난을 경험하고 당시의 선진국 국민들로 부터 마치 야만인을 바라다 보는 듯한 숱한 수모를 당했던 일들을 잊지않고 기억하고 있는 우리 세대들로서는 오늘날의 후진국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옛날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곳 현지인들을 대할 때 마다 '그들은 우리보다 못한 것이 아니고 단지 우리하고 살아오거나 살아 가고 있는 모습이 다를 뿐이다'는 마음으로 진실하고 겸허한 자세를 지키려고 애쓰고 있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은 어디에 가든 그리고 누구를 만나던 자신있게 '커이 뺀 콘 까올리 따이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때마다 그들은 한결같이 반갑고 친절하게 인사를 해오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우리를 적대시 하기보다는 친구로 여기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알고보면 나라 밖에 나와 애국하는 일이 그다지 거창한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을 볼 때마다 먼저 인사를 하고 짧게나마 말을 걸기도 하여 그들로 하여금 '한국인의 인상을 좋게 남겨 주는 일'이야 말로 가장 쉬운 애국 행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하루도 나에게는 의미있고 보람되었다. 마침 오늘이 주말이어서 학교도 쉬고 별로 할 일이 없어 성공적인 여행자의 첫번째 조건이라 할 수 있는 '두려움의 제거 작업'을 감행하고 나선 것이다. 이른 아침 밥을 든든히 지어먹고 숙소에 있는 자전거를 끌고 무작정 시엥쿠앙 시내쪽을 향하여 아주 여유있고 차분하게 도로 좌우에 펼쳐지는 자연환경을 관조하면서 서서히 전진하였다. 가다가 여행자 안내소를 들려 그곳 안내인과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영어와 라오어를 총동원하고 그래도 안되면 손짓으로 사물의 모양을 그리거나 정 다급하면 한국말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오히려 여성 안내인이 나에게 한국말을 묻는 바람에 자신있게 한 수 가르쳐 주고 시원한 물 한잔까지 얻어 마시고 나왔다.

 

여행 안내 지도를 보고 박물관을 찾아 가는데 아무리 가도 보이지 않아 지나가는 젊은이들에게 영어로 길을 물었으나 그 누구도 시원하게 대답해 주지 못하였다. 그러고 보면 그들이 아직도 못사는 나라를 면치 못하는 것은 부지런히 영어를 배워 콧대 높은 미국에게 아부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하긴 그래서 별다르게 잘 못한 일도 없는데 괜히 남의 전쟁에 휘말려 엄청난 폭탄 세례를 받았는지도 모르지. 어렵게 찾아 간 박물관은 오늘이 주말이어서 쉰단다. 원래 관광객은 주말에 더 많이 밀려드는 것 아닌가?

 

'폰싸완'은 '시엥쿠앙' 주정부가 위치해 있는 대표적인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인구면에서나 도시 규모면에서 너무 단조롭다 보니 이곳에 와서 우리 삼동 재단과 긴밀한 협조 관계를 이루고 있는 펫씨 댁을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함께 구멍가게 음식점을 찾아가 쌀국수로 점심을 때우고 그와 헤어져 오던 길에 재래 시장에 들렸다. 과일을 현지 체험상 이것저것 맛보기 위해 어느 상점에 들어 갈까 잠시 망설이다가 기왕이면 꼬마 아가씨가 가장 정직해 보여 그곳에서 주로 우리 입맛에 맞아 보이는 걸로 한보따리를 챙기고 어렵게 계산을 마치고 나오면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거스름 돈 계산 과정에서 내가 손해를 본 것 같아 찜찜하기도 했지만 우리 나라에서 구입하는 값보다 더 비싸지는 않겠지 하고 선선히 언짢은 마음을 내려 놓았다.

 

집에서 충분히 쉬고도 시간이 남아 숙소 주변을 크게 원둘레로 돌아 오다가 화목용 나무를 사이에 두고 흥부 박 타듯이 톱질하는 부부의 모습이 너무 정겨워 보여서 아는체 하고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고 났더니 옆에 있던 딸네미를 시켜 의자를 내와서 앉으라고 하고는 청하지도 않은 물 한잔을 주면서 나를 환대해 주었다. 그집에서 나와 내가 이곳에 와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로 들어서게 되었는데, 호젓한 곳에 나뭇가지로 위장한 움막에서 청년 둘이서 아주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어 호기심에 한참동안 지켜보았다, 어이없게도 그들은 이미 잡혀 발목이 가는 실로 묶여있는 새를 이용하여 또다른 새를 사냥하는 아주 기발하고 희한한 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옛날 작은집 사촌형이 마당에 새끼줄로 연결된 망태를 세워 놓고 모이로 유인하여 참새를 잡던 모습을 떠올리면서 또 한차례 잊혀진 그 때 그 시절의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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