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거리/내 생각, 내 마음

나의 ‘글쓰기 편력’에 대하여(2)

허니강 2015. 7. 31. 21:52

강허니

나의 고등학교 서울 유학시절 초창기에는 육촌형과 함께 서울역 뒤편 중림동 서민 주택지 마을에서 자취 생활을 했다. 그 동네에는 미로와도 같은 골목길을 겨우 벗어나 있는 곳에, 그나마 낡아빠진 상점 간판마저도 생략된 허름한 제과빵집이 있었다. 처음에는 밥 짓는 일이 귀찮거나 배가 몹시 고플 때 출입하기 시작하였지만, 얼마 되지 않아 내가 빈곤한 용돈을 축내면서까지 자주 그곳을 찾아 다녀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발생되었다.

 

(* 이제 막 그 비밀의 사연을 다 밝히기도 전에, 이미 그 계통의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벌써 눈치를 채고 더 이상의 스토리 전개에 흥미를 잃게 될지도 모르겠다.)

 

여러분이 예상한 바대로 그 빵집에는 어쩌다가 운이 좋으면 한 번씩 스치듯이 조우할 수 있었던 아주 어여쁜 쥔네 여학생 딸이 있었다. 나는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토록 얼굴이 예쁘고, 행실이 다소곳하며, 수줍은 듯 흘리는 미소가 아름다웠던 그 여학생의 모습을 다시 회상하여 글로서 표현해 내는 실력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굳이 약간 과장해서 말해 본다면, 하얀 백지에 그저 ‘예쁘다’는 말을 영어 단어 외우듯이 한   100번 정도 써놓고, 그 사이 사이에 99번의 더하기(+) 표시를 해 두면 좀 근접해 질려나? 아무튼 나는 아직까지도 그 여학생 소녀가 지금쯤은 내 나이 또래의 늙은 암컷 여우 형상의 볼품없는  할매가 되어있으리라는 상상조차도 내 뇌리에 허용하고 싶지가 않다.

 

그 때, 그 시절로 말하자면 내 심장 뛰는 박동 소리가 마치 절구통에 인절미 떡치는 소리 정도에 비견될만한 이팔청춘의 나이었으니 주체할 수 없는 사모의 정을 어찌 한마디 말로서, 하물며 한 줄의 글로서 표현될 수 있었겠는가?

 

진심으로 내 가슴 안에 뭉클하게 맴돌고 있는 ‘사랑의 고백’에 대한 내 인생 최초의 문학적 표현술의 깊은 고민은 아마도 거기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때, 당시의 서울 시내 명문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고향 선배 한 분이 고맙게도 나에게 ‘연애편지 쓰기 특별 과외 지도’를 자원해 주웠다. 나는 그 형이 잡탕 문학서적의 여기저기에서 그럴싸한 연애편지 인용 문구만을 끌어 모아 편집한 교본을, 내 피나는 용돈까지 털어 문제의 빵집에서 비싼 빵 사주어 가면서 겨우 얻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는 밤새도록 필사하고 모방하는 일부터 어설프나마 ‘글쓰기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 말하자면 비유가 그리 적절치는 못하나 나 역시도 오래 전에 이웃나라 작가가 쓴 작품의 일부를 표절하였다 하여 작금에 와서 호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존경하는 작가 ‘신경숙 님’과도 같은 범행(?) 전과자가 된 셈이다. )

 

그로부터, 어떻게 하면 촌철의 문장을 구사하여 단번에 내 마음을 사로 잡아버린 그 여학생과 호의적 감정을 일치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매우 진지하고 철학적인 사려의 고민이 거듭되었다. 선배 형으로부터 어렵게 구한 ‘연애편지 교본’에만 전적으로 의존할 수도 없어, 나는 틈틈이 중학교에서 대충 읽은 ‘한국 명작 문학 전집물’ 다음 순서로 고전의 ‘세계 명작 문학 전집물’을 읽으면서 순진무구한 소녀의 '마음 강탈용' 미사여구를 부지런히 수집, 발췌하여 두터운 잡기장에 누가 기록해 나갔다.

 

(* 아쉽게도 그 뒤에 나의 연애편지 ‘컨닝 페이퍼록’은 내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내 바로 밑에 동생이 무단 복제 사용 후 폐기 처분되어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하긴 이제 더 쓸모가 없게 되었으니…)

하여간에 나는 불순하게도 아주 달콤한 말로 순진한 어린 소녀의 마음을 훔쳐 낼 심산으로 연애편지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막상, 당장의 학교 시험공부마저 제쳐두고 밤샘 작업을 통해 어렵게 앞뒤 문맥을 짜 맞추어 완성한 편지를 전달할 수 있는 마땅한 수단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이마저도 나의 존경하는 ‘연애편지 쓰기 특별 지도 사부님’께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아, 그런데 나는 먼 훗날까지도 끝내 그 소녀의 답장을 얻어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먼 훗날에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배달 사고였다. 이미 청춘의 한바탕 인생이 끝날 무렵, 우연하게도 술자리를 함께 한 나의 ‘연애편지 쓰기 특별지도 사부님’이 들려 준 '사랑의 실패담'을 통해서 알게 된 여자 주인공이 바로 내가 피 끓는 청춘 시절의 한때에 순정을 바쳤고, 그에 대한 결과의 보상으로 나에게 글쓰기 습작의 동기를 불어 넣어 주었던 바로 그녀였던 것이다. 순간적으로 나는 철벽에 머리통을 찧고 싶을 정도로 분노의 배신감이 치밀어 올라왔다. 형!!. 아무리 그래도 사나이 의리상 그건 아니지!!!, 아~~~~~니~~~~~~지~~~~~~~!!!(* 참고 : 절규의 외침 표시임)

 

그로부터 이제는  그깐 일로 분노를 일으킬 수도 없을 만큼의 힘없는 나이에 밀려 와 있다. 아․이․고, 잃어버린 내 청춘이여!!! (헌)

 

(* 나의 글을 애써 읽어주게 될 독자의 흥미를 진작시키기 위해 때로는 약간의 ‘픽션’이 가미될 수 있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