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거리/내 생각, 내 마음

나의 독서 遍歷記

허니강 2015. 7. 12. 11:25

강허니

「男兒修讀五車書」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한글을 비롯한 문자를 터득한 이후로 대충 몇 권의 책을 읽었을까? 아마도 잠시나마 내 손을 거쳐 간 책까지 포함하면 그까짓 다섯 수레쯤이야 너끈히 되고도 남을 테지만, 단순히 ‘학교’라는 시스템에서 요구되는 의무적 교과과정이나 직장에서의 신분 상승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책읽기를 제외한 자발적인 순수 인문 교양서적만을 치자면 붉어지는 얼굴을 차마 치켜 올릴 수가 없을 정도일 것이다.

 

이제는 직장에서 은퇴하여 가족 생계의 부양 책임감에서 벗어나게 되니 그동안 남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내 인생의 시간을 주로 사용하다보니 충분한 독서의 여가를 얻기 어려웠다는 변명도 통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그동안 다 채우지 못한 순수한 독서의 열정을 불태워 보고 싶다.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은 미처 다 갖추어지지 못한 채로 그저 마음만 바쁘고 욕심만 앞서다 보니 어느 세월에 한 권씩의 책을 여유 있게 순차적으로 읽어 나갈 수도 없다. 그러다보니 나의 방에는 그간 먼지 낀 책장에 갇혀 지내던 책이나 가끔씩 헌책방에서 눈에 띄는 대로 입양해 온 책들이 즐비하게 늘어 선채로 내 손때를 기다리고 있다.

 

죽기 전에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들을 마치 학창시절, 내 책상 앞에 줄곧 붙어 지내던 1주일간의 ‘수업 시간표’처럼 역사, 종교, 문학, 과학, 건축, 예능 등의 전반에 걸친 학문의 영역을 넘나드는 서적들을 시시때때로 바꾸어가며 순서 없이 마구잡이로 읽어나가고 있다. 이제 나에게는 ‘줄 세우기’ 시험 성적과도 관계가 없고, 남을 가르치거나 남보다 많은 지식을 과시하기 위한 것도 아닌, 그저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무한정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초조감에서다.

 

그나마 기본적인 독서 이해능력과 기억능력이 자꾸만 퇴화되고 신체적 노화에 따른 시력의 약화가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그쯤은 내가 그동안 독서를 게을리 해 왔던 죄과라 여기고 흔쾌히 불편을 감당하고 있다.

 

때로는 요즘 우리 주변에 범람하고 있는 인터넷 전자 통신을 통한 지식욕구의 충족 수단을 활용하기도 한다. 예를 든다면 아주 잘 구성되고 편집된 다양한 TV 다큐물 시청을 통해 웬만한 전공 서적 몇 권 분량의 지식을 한꺼번에 퍼 담아 올 수도 있다. 또한 나의 친절한 지인들로부터 거의 매일 보내오는 교양, 지식 정보를 통해 나중에 죽어서나 형체 없는 바람이 되어 전 세계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글로벌한 여행을 즐길 수도 있고, 예수, 석가를 비롯한 고난의 면벽수련 수도승들이 일생을 바쳐 깨우친 ‘인생 교훈록’을 통해 일거에 다섯 수레 정도의 지식 량을 축적하고 섭렵할 수도 있어서 또한 편리하다.

 

나는 늘, 죽어서 생명 탄생 이전의 세계로 되돌아가 우리에게 ‘운명’이라는 프로그램이 담긴 유전자 칩을 내장하여 지구상으로 여행을 보내주신 생명 창조신 앞에 다시 서게 되었을 때, 바보처럼 더듬거리지 않고 내가 살다 온 ‘내 인생 프리젠테이션’에 임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잘못하면 지구 여행에 필요한 ‘시간’이라는 용돈을 무의미하게 낭비한 죄값을 톡톡히 치러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지구에 살면서 보고, 배우고, 깨우치고, 실천해 온 내용들을 꼼꼼하게 머릿속에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혹시 아는가? 우리에게 편의상 작은 기억 용량만 주어진 대가로 하늘나라에서 치뤄지는 시험에서는 특별히 참고 서적이나 스마트 폰을 활용한 ‘오픈 테스트’방식이 허용될는지도….

 

그래서 좀 엉뚱하긴 하지만 난, 오늘도 부지런히 각종 각양의 지식들이 담겨진 유용한 천국 시험 대비용의 ‘컨닝 페이퍼(각종 서적들)’들을 열심히 수집하여 읽어 두려고 한다. (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