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허니(스토리 강)
나는 쓸데없이 말 많은 사람이 싫다. 더더구나 술자리에서 몇 번이고 같은 말 되풀이 하는 사람은 더더욱 싫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 역시도 말이 많은 편이라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워질 때가 종종 있다. 그 이유가 내 주변에는 대체로 나보다 인격이 높고, 말 수가 적고, 겸손한 사람들이 많다보니 잠시 동안이라도 화제의 궁핍이나 대화의 단절로 인한 침묵이 주는 심리적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나로 하여금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비난받을 만한 또 하나의 요소가 될 뿐이어서 괴롭다.
언젠가 중학교 학창시절 이후 오랫동안 소식을 모르고 지내던 친구와 반가운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서로의 직업을 묻던 중에 내가 ‘교직에 종사하고 있다’고 했더니 그 친구 대뜸 한다는 말이 ‘넌 말 하나는 끝내주게 잘 하겠다’는 어쩐지 비아냥되는 것으로 들려 순간적으로 당황하던 기억이 지금도 가끔씩 되살아나곤 한다. 나는 그때마다 ‘하고 싶은 말의 내면화’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지금도 여전히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마구 떠들어 대고 난 뒤에 오는 쑥스럽고 씁쓸한 뒷맛으로 인해 울고 싶도록 후회할 때가 많다.
더욱이나 나를 부끄럽게 하는 것은 내가 남들 앞에서 많은 말을 쏟아 놓아도 좋을 만큼 사회 상식이 해박하지도 않고, 세상 물정에 능통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입담이 좋아 충분히 해학적이지도 못하며 설득력 있는 말의 논리 전개나 어휘력이 뛰어나지도 못하다는 점이다. 단지 소리를 내어 침묵의 공간을 어지럽히고, 시간적 공간을 엉성하게 채워주는 저급함 그리고 때로는 젊은이들 앞에서 제법 어른스러운 모양새를 갖추기 위한 위선과 쓸데없는 노파심에서 비롯되는 장광설을 죄 없는 공기 중에 마구 뿜어 대었을 뿐이다.
말에 대한 그러저러한 생각에 잠기다보면 나는 가끔씩 말이 필요하지 않은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너나없이 다들 무심하고 화가 잔뜩 나있는 사람들처럼 입을 굳게 다물고 살다보면 이 세상이 얼마나 단조롭고 건조한 곳이 되어 버릴까 걱정이 되는 때도 있다.
나는 앞으로도 세상을 살면서 남들에게 많이 말하기보다는 남들의 말을 많이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진심으로. 그런데 그러다보면 내가 남에게 많은 말들을 아낌없이, 그것도 돈 받지 않고 공짜로 나누어 주는 것 말고는 남을 위해 특별히 나누어 줄만한 재산과 재능이 없다는 점이 새롭게 대두되는 나의 고민이다.
그래서 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얻어냈다. 나의 쓰고 남는 시간을 이용하여 다양한 독서를 통해 남의 지식을 구걸하거나 훔쳐내어 얻어진 지적 재산을, 세상 살기가 너무 각박하고 여가의 시간이 부족하여 미처 책 읽을 겨를이 없어하는 많은 이들에게 지적 호기심을 대리 만족시켜드리기 위한 ‘책 읽어 주는 남자’의 구실을 무보수 봉사활동으로 해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내가 평소에 존경하여 마지않는, 아마도 80고령의 나이로 여겨지는 유태영 박사님의 왕성한 인터넷 지식 사냥을 통한 고급 지식 정보의 무료 공급 서비스 활동에서 얻을 수 있었다.
방법은 요즘 대세를 이루는 전자기기 전송수단 중에서 ‘카카오 스토리’ 매체를 활용하려고 한다. 내용은 내가 닥치는 대로 읽게 되는 다양한 인문학 서적 중에서 일반적이지 못한 숨겨진 이야기들을 족집게로 집어내어 옮겨 볼 생각이다. 물론 나의 초라한 지적 수준에서 골라진 범위 내에 한정될 테지만 가능하면 나의 견해는 생략하고 최종의 가치 판단의 결과는 독자의 몫으로 돌려주려고 한다.
한 가지 양해드릴 말씀은 나의 독서력은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만큼에서 크게 뒤져 있다는 점이다. 누구처럼 자기 할 일 다 해가면서 5년 동안 600권 이상의 책을 읽어 낼만큼의 속독법에 익숙하지 못하고, 오히려 책장을 넘기는 순간 앞장의 내용을 기억해 내지 못하여 이제는 일일이 연필로 줄 그어가며 읽어야 겨우 앞뒤 문맥을 파악하는 더듬이 독서법에 머물고 있지만 다만 그저 이 세상에 먼지처럼 쌓여진 잡다한 지식들을 모두 훑어보고 싶은 병적인 지적 호기심 환자쯤으로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 일이 언제까지 지속될는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무엇보다도 주인을 잘 못 만나,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신문 보랴, 각종 인터넷 정보들 검색하랴, 틈틈이 돋보기 코에 걸치고 이 책, 저 책 바꿔가며 줄쳐가며 읽어보랴, 가끔씩은 컴퓨터 워드 기능에 매달려 글쓰기 연습하랴, 밤늦게까지 TV 채널 돌려가며 좋은 프로 사냥질 다니랴, 이래저래 죽도록 혹사당하는 사탕 알 같은 내 두 눈깔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수고를 끼치게 되어 미안하고 고맙다. 그러나 어쩌랴, 워낙 가진 것이 없어 공짜로 부려 먹을 게 너 말고는 없으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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