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린 자와 거두는 자가 따로따로인 세상
강허니
아직 세상 사람들의 한가한 휴식이 일상의 잠을 다 깨우지 못하고 있던 일요일 아침나절에, 사우나의 쾌적함으로 한 주간에 쌓인 피로를 풀어 볼 까하고 길을 나서던 나는 갑자기 내 고막의 진동 주파수를 높이며 들려오는 동네 할머니의 찢어지는 듯한 고성에 놀라 몹시 당황하였다.
“어떤 지미 **놈의 자식이…” 어쩌고 하면서 온갖 악담과 저주를 퍼 부어대는 욕지거리는, 간혹 심심파적으로 열리는 ‘대한민국 욕쟁이 경연대회’에 출연해서도 능히 우승 후보가 될만한 정도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나치며 들어 본 사연으로는 자기가 애써 가꾸어 놓은 배추를 밤사이에 어떤 년(놈)이 홀라당 뽑아 가 버렸다는 것이 그토록 할머니의 분노를 꼭짓점까지 올려놓은 주범이었다. 더구나 슬그머니 곁눈질하여 본 바로는 할머니가 손수 가꾸셨다는 배추는 넓은 밭떼기에 심어진 것도 아니고 한 뼘하고 반이나 될 듯한 대형 화분의 옹색한 공간에서, 집안에 들어서지도 못하고 길거리에 나와 누추하나마 정성스럽게 가꾸어 진 것으로 보여 졌다.
나는 순간적으로 할머니의 극렬한 분노에 한편이 되어 욕해 주기로 하였다. ‘정말로 배추 잎으로 걸레를 만들어 얼굴을 닦아 줄 사람이 아닌가?’ 그처럼 땀 흘려가며 가꾼 사람 따로, 무위도식하며 열매만 거두어 가는 사람 따로 인 불공평한 세상이라면 정말 사람 살맛을 잃을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목욕탕에 이르는 동안 할머니의 소박한 재산을 축낸 범인을 향하여 응원의 저주를 더해주었다.
그 일과 연관하여 어렴풋하게 내 머릿속에 남겨진 초등학교 2학년 아니면 3학년 국어책에서 읽었던, 내가 한글을 터득한 이후로는 아마 처음 접했을 동화 한편이 떠오른다.
어느 날 어미 암탉 한 마리가 보리 알곡 한 톨을 물어왔다. 그리고는 모든 식구들을 모아 놓고 물었다. “이 씨앗을 누가 땅에 심을까요?” 식구들은 모두 ‘저는 싫어요, 저는 싫어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어미 닭은 하는 수 없이 ”그럼 내가 심지요.“하고는 한 톨의 보리알을 땅에 심었다. 어느덧 보리가 싹을 틔우고 자라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다. 어미 닭은 다시 식구들에게 물었다. ” 자-! 다 자란 이 보리 이삭을 누가 벨까요?“ 식구들은 모두 하나같이 ”저는 싫어요, 저는 싫어요.“라고 대답하였다. ”그럼 내가 하지요.“ 어미 닭은 혼자서 땀흘려가며 열심히 보리 알곡을 수확하였다. 얼마 후 어미 닭은 수확한 보리 알곡을 모아 놓고는 이렇게 물었다. ” 누가 이 보리로 떡을 만들까요?“ 식구들은 여전히 모두 싫다고 하였다. 결국 혼자서 떡을 다 만들어 놓은 어미 닭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 자-! 이 떡을 누가 먹을까요?“ 그러자 모두가 나서며 ”제가 먹지요, 제가 먹지요.“라며 덤벼들었다.
내 기억능력의 부족으로 윗글을 온전하게 다 옮겨 놓지는 못했지만, 세상 사람들의 이기적, 개인적 속성을 에둘러 비판하고 있었던 교훈의 뜻만은 지금껏 명확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날 아침, 상쾌한 새벽 공기를 둔탁하게 가르며 가난뱅이 할머니께서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몸부림치듯이 외치고 있었던 욕지거리가, 마귀의 저주가 아닌 천사의 슬픈 음성으로 들려오는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끝)
* 후기 : 나는 여전히 글쓰기에 자신이 없다. 그동안 남발한 글들이 오히려 부끄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또한 내가 쓴 글을 과연 몇 사람이나 진지하게 읽어 줄 것인가에 대해서도 얼른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래서 몇 번이고 이쯤해서 글쓰기를 접어야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나에게 깊은 애정을 주고 있는 몇 몇 지인들께서는 가끔씩 계속 글을 써 보는 것이 좋겠다고 내 기분을 부추겨 주신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분수없이 자만해하는 자를 유독 싫어하는 나로서는 끊임없이 나를 격려하고 용기를 주시는 분들의 충고를 어느 정도로 진실성 있게 받아 들여야 할 것인지 곤혹스럽다.
또 다시 염치없는 글을 올리면서 내 머릿속에 저장된 문학적 수식어는 과연 몇 개나 될 것인지를 반성해 보았다. 그러나 오히려 단순하고 담백한 문장의 술어들이 문학 전문가 수준에서 벗어 나 있는 독자들에게는 더욱 진솔하게 접근해 갈 수 있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해량하는 마음으로 부담 없이 시간을 할애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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