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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안과 심안

허니강 2006. 2. 15.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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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안(肉眼)과 심안(心眼)

강허니

정상적인 신체 조건하에서 우리 인간은, 잠자는 시간 말고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육안을 이용하여 사물을 식별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는 여러 가지 원인들에 의해 천지만물을 시각적으로 인식해내는 기능을 상실해 버린 채, 끝없는 어둠 속에 갇혀 한평생을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지금은 피안의 세계로 떠나 가 계셔서 만나 뵐 수 없게 된 ‘신씨 어르신’이라는 분도 바로 그러한 삶을 살다 가신 분이다.

  그 분은 나와 교직 생활을 통해 알게 된 어느 후배 선생님의 춘부장이 되시는 분으로서 젊은 나이에 백내장으로 한쪽 눈을 잃으시고, 결혼 이후에는 집을 짓는 목수 직업으로 일하시던 어느 날 불의의 사고로 말미암아 다른 한쪽 눈마저 잃게 되는 불행을 겪게 되셨다. 그로부터 다시는 눈을 통해서 낮과 밤을 구별해 내지 못하는 암흑 빛 세상을 살게 되었고, 막막해진 가족들의 생계 수단을 위해 부인은 바닷가 갯벌에서 조개 채취의 일을 하게 되었다. 그 때, 조금이라도 부인의 일손을 덜어 주기 위한 일념으로 몇 날 몇 칠을 고심하고, 수 없는 시행착오 과정을 거치면서 평생 다져온 손 재능을 발휘하여 만들어 낸 것이 바로 단 시간 동안에 다량의 조개 채취를 가능케 하는 신제품의 ‘갈고리’였고, 그로 말미암아 어둠과 절망 속에서 일궈 낸 그 분의 감동적인 인간승리에 관한 이야기들은 국내의 많은 매스컴과 각종의 매거진에 의해 널리 소개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그 분의 고행과 인생 역정을 눈물나는 표현으로 다시 재탕하여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분을 통해 영혼의 극락세계는 단지 육안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마음 닦음에 따라서는 또 다른 심안에 의해 더욱 크고 넓게 열려질 수 있음을 말해보고 싶을 뿐이다. 

  내가 처음 그 분을 찾아뵙게 된 것은 그 당시 나의 돌팔이 급 수지침술을 이용하여 그분의 나빠진 건강을 임상 치료해 보기 위해서였다. 앞을 볼 수 없는 처지임을 미리 알고 있었던 나는 그분을 대하는 순간부터 놀라움이 시작되었다. 나의 초대면 인사를 아주 정답고 자연스럽게 받아 주실 뿐만 아니라 마침 식사 중이셨던 그 분의 숟가락이나 젓가락의 놀림 새를 비롯하여 그 어떤 행동거지에서도 시각 기능 상실이라는 신체적 불구 상태를 감지해 내기 어려웠고, 주위에 흩어져 있는 생활 용품들을 전혀 더듬거리지 않고 능란하게 다루시고 계시는 모습이 나에게는 경이롭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나중에 들으니 그 분은 동네 사람들이 직접 고쳐내기 어려운 각종의 기계 조립품 예를 들면 재봉틀이나 벽시계, 라디오 등을 마치 눈에 보이는 것처럼 능숙하게 고쳐 내신다는 것을 알고 더욱 놀라웠었다.

  내가 그 후 사뭇 전율의 감동을 느끼게 된 것은, 어느 날엔가 그 분이 병원에 입원하여 계신다하여 문병 차 찾아가 뵌 적이 있었는데, 무슨 말 끝에 창문을 좀 열어 달라고 하시더니 혼자 말씀처럼 ‘참, 하늘이 쾌청도 하구나.’하시는 것이 아닌가? 어찌 그처럼 눈에 보이는 것처럼 말하실 수 있었을까? 나는 지금도 그 의문에 명쾌한 답을 찾아 내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인간의 신체 구조나 감각 구조에서 부족한 만큼을 서로 채워주거나 대신해 주는 신기한 현상들을 전혀 보지 못한 바는 아니지만 정상적인 육안을 가지고 사는 사람도 구름 뒤에 감추어진 하늘까지를 볼 수 없을 터인즉 하물며 보이지 않는 허공에 눈의 방향을 맞추고 하늘의 청명함을 감지해 낼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어느 한 분야에서 눈을 가리고도 주어진 일을 해 낸다는 달인의 경지보다 한 차원을 더 올라서서나 볼까 말까한 심안통의 경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쉽게 버릴 수가 없다.

  나는 가끔 그 분을 머릿속에 떠올릴 때마다 내 운명의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전전긍긍해 하며 살아가는 나의 졸렬함이 못내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지금은 그 분이 높은 하늘의 허공에 올라 더욱 크고 넓은 눈으로 세상을 내려다보시면서 못난 세상 사람들을 안타까이 여기시고 한심해 하실 것만 같아 가슴이 조이고 얼굴이 붉어지곤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