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한마당/여기는 라오스, 라오스입니다.

이제는 또다시 ‘라오스’가 그립다

허니강 2016. 1. 31. 16:32


강허니

대개의 경우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변화무쌍한 것이어서 한 곳에 오래 머무는 법이 없다. 한동안 낯 설은 ‘라오스’에 가 있다가 다시 한국에 돌아 온지 한 달여가 지났다. 그곳에 있을 때 그토록 그리웠던 이곳이 이제는 또다시 그곳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그곳에 있을 때 한동안 내 수면의 잠자리를 떠나지 않고 꿈속의 배경이 되었던 이곳에 다시 왔을 때는 오히려 그곳의 모습이 꿈속의 무대를 이루었던 아이러니를 심리학의 이론으로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나는 떠나면 그립고, 머물면 다시 떠나고 싶은 어지러운 무상의 심고를 살아있는 동안 얼마나 더 계속해야 하는 것일까?

 

내가 멀리서라도 나타나 보일 때마다 각자의 학습이나 놀이 행동을 잠시 멈추고 나를 향하여 ‘싸바이디’하고 큰소리로 소리쳐 인사를 건네 오던 유아들, 마땅한 체육시설이 갖추어지지 못한 운동장에서 저희들끼리 재주 부리며 놀이에 열중해 있던 초등학교 아이들, 오토바이를 타고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나를 보고는 어디서 주워들은 한국말로 ‘안뇽하세요’하고 장난스럽게 인사하던 짓궂은 중학교 남학생 녀석들, 내가 먼저 말을 걸면 부끄러운 듯이 예쁘게 웃어주던 여학생들, 도움을 주러 간 나에게 오히려 혼자 지내면서 불편한 것은 없는지, 도와 줄 것은 없는지를 가끔씩 물어와 주시던 고마운 선생님들, 내가 미쳐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먼저 환한 웃음을 지어주시던 동네의 친절한 아저씨, 아주머니들. 그리고 내가 매일 아침, 저녁 산책길을 걸을 때마다 나의 심란한 마음을 다독거려 주던 산천의 초목들과 나를 호위하며 따라다니던 동네 개새끼들. 목초지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다가 지나가는 나를 보고 멀뚱멀뚱한 눈으로 바라보던 순진한 송아지들까지도 그립고 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 다시 돌아가야만 한다.

 

내가 잠시 한국에 와 있는 동안, 만약에 내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라면 천 원짜리 값싼 물건 하나 사주는데도 인색하였을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라오스의 어린 청소년 학생들을 위하는 일에는 아낌없이 많은 재화와 재능과 선량한 마음의 성원을 보내주셨다. 어떤 분은 그곳의 놀이나 체육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말에 선뜻 탁구대 설치를 위한 기금을 마련해 주셨고, 또 어떤 분은 무려 30여년 이상의 경험을 통해 얻어진 숙련된 미용기술을 불과 1주일간의 짧은 연수 과정을 통해 나에게 아낌없이 전수하여 주시면서 ‘나를 대신하여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좋은 일 많이 해 달라’고 부탁하셨으며, 그 밖의 많은 분들이 가난한 학생들에게 전해 달라며 한보따리 양의 학용품 일체를 기탁해 주시거나, 일부러 현지에까지 오셔서 한국어, 영어, 컴퓨터, 예체능 교육 등의 재능을 기부해 주시기로 약속해 주신 분도 계시고, 낡고 쓰러져 가는 열악한 교실의 리모델링 설계를 도와 주시겠다거나 대학생 자원봉사단을 동원하여 새로운 학교 환경을 조성해 주시겠다는 분들도 계셨다. 심지어는 올해 농사지어 얻어지는 수익금의 일부나마 좋은 일을 위해 후원하겠다는 분까지도 계셨다. 세상은 그토록 아름다운 마음씨들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영구히 망하지 않고 존속해 나가는 것이리라.

 

나는 그처럼 숭고한 인류애를 본받기 위해 노력해 볼 생각이다. 그래서 얻어지는 보람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알고 보면 나의 작은 선행은 남을 돕기 위한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의 행복을 찾아 나서는 일이라 생각해보니 좀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다만, 자고로 부모가 쌓은 공덕은 후대의 자손들에게 복이 되는 일이라 하였으니 나의 후손들에게 마땅히 물려 줄 재산이 없으면 살아생전에 남을 위한 마음의 공이나마 열심히 닦아 나가야겠다는 소박한 소망을 가져 본다. 나의 부모님이 나를 위해 본을 보여 주셨던 것처럼.

 

아마도 그곳에 가 있으면 금새 이곳에 두고 온 나의 가족과 친지들이 생각나고 끼니때마다 나의 혓바닥은 구수한 된장국 맛과 새큼한 김치 맛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다행히도 이제 나이가 들어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의 용도 폐기의 위기에 몰려있는데도 나의 무모한 가출을 용납해 주고 저마다 자립, 자생, 자발적인 의지로 세상풍파를 잘 견디어 줄 수 있게 된 사랑하는 나의 가족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을 남긴다. (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