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아, 걸음아 나와 함께 떠나자
(금강 길 홀로 걷기 기행문 후기)
강헌희
나는 어느 날 문뜩, 내가 보이지 않게 금 그어진 삶의 영역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되면서부터 줄곧 소망해 왔던 ‘유랑의 꿈’을 이제 더 이상은 미루어서는 안 되겠다는 성급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 두 다리의 근육에 운동 에너지 생산의 능력이 남아있을 때 서둘러 길을 나서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모처럼의 시간을 얻어 흐르는 강물처럼, 떠다니는 구름처럼 <동 가숙>, <서가식>하며 주유천하하던 옛 방랑자의 자유의 꿈을 가슴에 품어보고 싶었다.
이제 한창 나이인 젊은 대학생들의 장시간에 걸친 <국토 대장정>이나 글로벌한 <자동차 세계여행> 등에 비하면 겨우 초등학교 학생들 <소풍 길>정도에 불과하지만 오래 전부터 꿈꾸어 왔던 나의 소박한 꿈이 시작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100km 장정의 <금강 길 따라 걷는 도보 여행>은 나름의 의미를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걷는 동안 무엇보다도 나 혼자 실컷 대화하고, 웃고, 생각하는 시간이 보람되고 즐거웠다. 앞으로도 자주 나 자신과 놀아주는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충분한 생활 에너지 자원을 공급해 주지 않으면서 자신을 너무나 혹사시킨다고 투덜대면서도 끝까지 잘 참고 따라와 준 내 두 다리와 발바닥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형처럼 부모처럼 이들 발걸음의 아픔을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현명하게 내 생존의 위기에 대응하고 때로는 발 빠른 임기응변의 지혜를 발휘해 준 나의 대뇌 총사령관에게도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그밖에도 무거운 가방을 군말 없이 들어준 내 양쪽 어깨에게도 고맙고 또한 수시로 도망치려는 내 생각을 붙들어 두기 위해 한 쪽에는 볼펜을 또 한쪽에는 메모수첩을 들고 끝까지 기록의 사명을 다해 준 내 양 손에게도 감사한다. 아참, 이 모든 나의 신체 기관들이 협동하여 일할 수 있도록 무려 3Kg 이상의 저축된 에너지를 적절하게 공급해 준 내 뱃속의 창고지기에게도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는 나의 무모한 이번 여행을 한편으로는 나무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격려의 용기와 신체 안전의 염려를 기원해 준 나의 친절한 벗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나는 앞으로도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아무 때나, 아무 곳으로나, 불현 듯 혼자서라도 방랑의 여행을 다시 떠날 것이다. 나는 걷다가 죽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내 남은여생의 최고의 행복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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