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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의 즐거움

허니강 2006. 2. 15. 14:30
 

‘공짜’의 즐거움

강허니

  예나 지금이나 돈 안들이고 큰 수고 없이 공짜로 얻고, 보고, 먹고, 마시고 하는 것은 그 모두가 무작정 즐거운 일이다. 오죽하면 공짜라면 양잿물도 서로 큰 걸 차지하려 한다고 하지 않던가?

  지금은 웃어가며 회상해 볼 수 있는 ‘공짜’에 얽힌 우리들의 어린 시절 추억들을 꺼내 보자면 참 포근하고 정겨워진다. 그 시절만 해도 무척 가난하고 궁핍하여 그저 시간은 많으나 돈이 없어 누리지 못하던 문화에 대한 갈증에 허덕일 때, 그래도 유일하게 우리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 참여의 기회라고 해봐야 기껏, 어쩌다가 ‘군민 위안 잔치’랍시고 별 빛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 초등학교의 너른 운동장에서 값싼 광목천으로 만들어 진 스크린을 펼쳐 놓고 벌어지던 ‘공 굿’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얄궂게도 세상의 ‘공짜’는 결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은 날씨가 안 좋아서’, 또는 ‘오늘은 영사기가 고장이 나서’ 등등의 이유로, 약속된 제 날짜, 제 시간에 맞추어 속 시원하게 ‘공 굿’을 보여주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간신히 돌아가기 시작하던 발전기는 한편의 영화를 끝내기까지 어지간히 속을 많이 썩 이면서 몇 번이고 태업의 ‘곤조’를 부렸고, 저질의 낡은 필름은 수없이 자주 끊기거나 시종일관 소낙비 오는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끈기 있는 인내력을 발휘하며 몇 번이고 연기되는 상영 날짜를 맞추어 그 곳에 찾아가기를 포기 하지 않았고, 영화 속에 감정을 몰입시켜가며 슬픔의 장면에는 눈물을, 신나는 장면에는 박수를, 웃기는 장면에는 폭소를 아낌없이 보내 주는 성의를 보여줌으로써 ‘공짜’에 보답하였다. 그리고 그때마다 거의 영화 상영의 중간 중간에 벌어지는 각종의 지연 사유로 인해, 끝나는 시간이 연장됨에 따라 결국에는 지역 경찰서장의 특별한 은총을 입어 야간 통금시간을 넘기고도 당당하게 대로를 통해 집에 돌아오는 뿌듯한 자유를 만끽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그 때 당시 읍내의 공회당을 빌려 운영되던 극장에 가서, 엄마를 졸라 겨우 얻어 낸 코 뭇은 돈을 내고, 이제는 영화 제목과 ‘이윤복’이라는 주인공의 이름만 기억되어 있는 ‘저 하늘에도 슬픔이’라는 영화를 단체 관람을 하게 되었을 때의 감격이란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뇌리에 남겨질 정도이다.

  그 시절을 회상하자니 또 하나의 ‘공짜’에 얽힌 생생한 장면이 떠오른다. 당시 우리 고을 최초의 영화관 사장님이 우리 반 친구의 아빠였었는데, 어느 날 담임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며 교실에 들어오시더니 그야말로 영화 속에서나 나오는 ‘생이별 쇼’를 실감나게 보여 주시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자식을 서울로 전학을 보내야만 하는 아빠의 슬픔을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하는, 그야말로 찐하고 감동적인 연기로 꾸며 보여주신 것이다. 그리고서는 자기가 운영하는 또 다른 사업체에서 생산 된 ‘아이스 케잌’을, 잠시 동안 천진스런 눈망울을 굴려가며 열심히 관람해 준 우리 모두에게 ‘공짜’로 하나 씩 돌려주셨다. 더욱이나 고마웠던 것은 그 당시 불량 색소를 사용하여, 먹고 나면 혓바닥이 빨개지거나 파래지는 값싼 것이 아니고, 최고급의 ‘앙꼬’가 들어있는 아이스 케익을 얻어먹을 수가 있었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 때, 고급의 ‘공짜’ 아이스 케잌을 얻어먹은 일이 얼마나 은혜로웠던지 지금이라도 그 시절로 되돌아가 또 다시 그들 부자간의 영화 속 배우 흉내 내기 연기를 보고, 보고, 또 보고, 나중에는 눈을 감고 한 번 더 보아 주고서라도 그처럼 맛있었던 ‘공짜’ 아이스케익을 부끄럽지 않게 얻어 먹어줄 용의를 갖고 있다.

  이젠 공짜가 별로 흔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혹시 누가 공짜라는 가면을 쓰고 접근해 온다 하여도 오히려 그 이면에는 무서운 흉계나 속임수가 숨겨져 있을 듯하여 그다지 반갑지가 않다. 다만 우리가 안심하고 취해도 좋은 영원한 ‘공짜’에는 하느님께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베풀어 주시는 ‘꿈꾸는 일‘이 있을 법하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욕망을 꿈속에서나 마음껏 취해보고 싶다. 그 모두가 ‘공짜’일 테니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