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스럽게 산다는 것
* 고창신문 수필 기고문입니다.(2021. 3. 9일발행)
강헌희
어릴 적, 1년 중 명절 때나 겨우 가보는 대중목욕탕에 내 바로 밑의 동생을 데리고 갔다. 나보다는 타고난 성격이 차분하지 못한 동생은 금새 숨 막히는 욕실 공간의 환경을 오래 견디지 못하고 일찌감치 밖으로 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후에 탈의실 쪽에서 어수선한 소음이 들려왔다. 웬일인가 하고 내다보니 나이 드신 어떤 분께서 내 동생을 무서운 어조로 닦달을 하고 있었다. 탈의실 옷장에 넣어 둔 자신의 금반지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때마침 그곳에서 형을 기다리고 있었던 내 동생은 어이없게도 유력한 용의자가 되어 있었다.
이윽고 신고를 받은 인근의 파출소 순경 아저씨가 현장에 출동하여 기초적인 수사에 착수하였다. 분실 피해자로부터 자초지종의 상황 설명을 듣고 난 순경 아저씨께서는 갑작스럽게 절도범으로 몰려 황당해 하는 내 어린 동생을 상대로 취조를 시작하였다. 이 것, 저 것 참고가 될 만한 질문 끝에 아버님의 함자를 물어 왔다. 그에 대한 답변과 함께 순경 아저씨는 즉시로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아, 그분의 자녀라면 전혀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
결국에는 욕실 내의 온수 탕 밑바닥에서 잃어버린 금반지를 찾아내었고, 내 동생은 굴욕적인 절도범의 오해를 벗어나 괜한 일로 소란을 피운 분실자로부터 정중한 사과를 받아내게 되었다. 나와 내 동생은 그 일로 해서 잠시 큰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부모의 사회적 평판이나 처신이 그 자녀들의 삶에도 아주 큰 영향을 주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비록 자식들에게 이렇다 할 만 한 물질이나 금전적 유산을 남겨 주지는 못했지만 우리 가족의 성실한 삶의 모습을 지켜 본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무한한 신뢰의 재산을 얻을 수 있도록 솔선수범해 주신 아버님이 한없이 존경스럽고 자랑스럽다.
이제는 나 또한 어른이 되어 나만의 자녀들을 얻어 기르게 되었다. 만약 내 자녀가 내 동생과 같은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었다면, 그래서 부모의 이름을 묻게 되었다면 과연 내 자식들은 내가 그간 내 주변 사람들에게 쌓아 온 공덕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인가? 아니면 나로 인해 오히려 심각한 해를 보게 될 것인가를 문뜩 머리에 떠 올리다 보니 머리칼이 쭈빗 솟아오를 정도로 아찔해진다.
요즘의 세상을 객관적인 눈으로 관조하다 보면 참 한심하고 막막하다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남-녀-노-소, 부모-자식-어른-아이의 도덕적 질서가 너무나 혼란스러워 보인다. 물론 시대 상황의 변화에 따른 창조적 신질서의 필연성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변혁의 속도는 보다 합리적이고 점진적인 사고의 과정이 수반되어야 바람직하다는 점에서 다양한 인간관계에서의 급소한 대립과 불신과 갈등보다는 상호간의 원만한 타협과 신뢰와 존중의 관계 회복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다. 그러한 노력은 어느 한 쪽의 희생적 양보가 아닌 모두가 승자가 되는 공동선을 향한 합의 선상에서 이루어져야 바람직 할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게도 우리의 사회적, 정치적 여론 형성의 상황은 자꾸만 서로 어긋나는 방향으로 줄달음질 쳐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특히 우격다짐이 아닌 설득과 인내와 자애심을 발휘하여 젊은이들의 귀감이 되고 본이 되어야 할 점잖은 어르신들께서 사사건건 그들과 맞서 싸우고, 고함지르고, 수구적 이념을 고집하고, 힘 있는 사람들 편에 서서 사회적 약자들에게 오히려 삿대질 하는 비열한 추태가 간간히 목격되어져 실망을 준다.
만약 돌아가신 내 아버님께서 지금까지 계속해서 살아 계신다면 나에게 어른스럽게 사는 방법에 대해 어떻게 훈수해 주셨을까?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니 가능하면 힘 있는 권력의 편에 서서 일신의 안일을 위해 모른 척, 못 본 척 남의 일 보듯이 속아주면서 살다 가면 된다고 하실 것인가? 아니면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말씀처럼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하였으니 정직하고 올곧은 마음으로 비록 내 자신이 손해보고 피해를 보는 일이 있더라도 널리 세상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일에 헌신하라고 하실는지. 나도 이제는 어지간히 나이가 들어 ‘적당히’라는 생활에 안주할 만한데도 부정적 사회나 불의의 정치 현상에서 오는 분노와 좌절로 인한 정신적 피로를 마냥 감당해 내기가 쉽지를 않다. 참 불행한 일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이가 많다고 해서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고, 인격과 품격이 올바르고 존경 받을 수 있어야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음을 아직도 유아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른스럽지 못한 어르신들께 정중하고 조심스럽게 진언 드리고 싶다. ‘나보다는 우리들의 후손들을 위해 어떤 세상을 물려주어야 할 것인지를 진중하게 고민하면서 결코 추하지 않게 늙어 가자고!’(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