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강 2016. 2. 8. 07:43

강허니


남들은 명절이라 하면 으레 하던 일도 그만두고 고향 찾아 발걸음을 옮겨 갈 판에 나는 거꾸로 고국을 떠나 이곳 라오스에 다시 오게 되었으니 도대체 나의 기행이 남들에게 칭찬받을 일인지 비난 받을 일인지 나 자신도 잘 판가름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오랜 공직 생활에서 은현중 몸에 배인 책임의식 때문에 삼동 인터네셔널 라오스 본부 사무실을 너무 오래 비워 둘 수 없어서 '그렇게 남들을 위해 충성한다고 해서 대통령 표창 받을 일도 아닐 바에는 차라리 그 반만큼이라도 가정을 위해 제대로 봉사해 보라'는 가족들의 힐란을 애써 무시하면서까지 또 한번의 과감한 가정 이탈을 감행하게 되었다. 

    

막상 이곳에 도착해서 보니 그동안 잠시 비워두었던 사무실 환경이 엉망이 되어 있어서 단절된 인터넷 통신, 단전, 단수의 원인을 찾아 복구하는데 애를 먹었다. 더구나 예전에는 볼 수 없었다는 이 지방의 강추위로 밤잠을 설치는 고통까 감내해야만 했다. 이제는 겨우 현지 서포터의 도움으로 차츰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는 중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왜 이토록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자청하고 있는지 가끔씩 스스로 자문해 볼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상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서는 누군가는 꼭 나서야 한다는 사명감을 나보다 훨씬 먼저부터 실천해 온  숭고한 정신의 국제적 자원 봉사자들의 노고에 대해 작게나마 나의 쓸모없이 버려지고 있는 삶의 시간과 에너지의 일부만이라도 보태어주고 싶은 소박한 마음으로 위로를 삼으려 한다.


오늘은 우리의 대 명절인 설날이다. 무엇보다도 집안의 장남 신분으로 보아서는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형제들과 함께 돌아가신 아버님께 정중하게 제례를 올리고, 또한 평소에도 오직 자식들 걱정만을 일삼고 계시는 노모님께 한해의 안녕과 건강을 축원하는 세배를 드리지 못해 죄송스럽다.


문뜩 나의 아버님께서 생존해 계실때 하시던 말씀 한마디가 떠오른다. '내가 돈이 있으면 뜻있는 자선사업을 꼭 해보고 싶다'던 말씀이었다. 어머님께서도 자주 '너희들이 그만큼이라도 잘 살고 있는 것은 비록 나를 고생시키기는 했지만 모두가 다 주위에 불쌍한 사람들 보고는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너희 아버님의 은덕인 줄 알라'고 하신다.


그러고보니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인연으로 이곳까지 와 있는 것도 '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다 이루지 못한 사회 봉사를 네가 대신해 달라'는 돌아가신 아버님 영혼의 바램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한국을 떠나 있어서 아버님께 제대로 제사음식이나마 공양하지 못하는 죄를 갚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 이곳 라오스 오지의 어린 유치원 학생들에게 내가 떠나오기 전에 어머님께서 미리 보내 오신 세배돈을 털어서라도 빵 한조각씩이나마 아버님 생전의 뜻을 대신하 나누어 주어야겠다. (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