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에 와서보니 6
이제는 왠만하면 페키지 형식의 국외 여행은 피하고 싶다. 듣기에 따라서는 그 무슨 과분한 불평 불만이냐고 따져 물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긴 그 말도 맞다. 어쩌다가 운좋게도 죽기전에 좋은 세상을 만나 언감생심 꿈도 꾸어 보기 어려웠던 글로벌한 관광여행을 수차례 내지 수십 차례씩 하게 되고 아예 어떤 사람은 평생을 여행을 직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경우도 있으니까. 이미 우리 조상님들 중에 사주에 역마살을 타고나서 평생을 천하 주유 한답시고 겨우 좁디 좁은 조선 땅 내에서 짚신발에 풍찬노숙하며 평생을 고생스럽게 사시다가 초라하게 무덤에 갇혀 하늘만 바라보고 계시는 분들은 지금과 같은 문화적 황금 시기에 태어나지 못한 것이 많이 억울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보다 크게 잘나지도 못한 나만 해도 비록 대부분의 경우 짧은 일정이긴 하지만 어언 20여차례(북한까지 포함해서)에 걸쳐 밖앝 세상 나들이를 다녀 올 정도로 호강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처럼 아까운 외화 써가며 여러차례 구경 다니면서 내 인생의 가치를 얼마나 더 높일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해서 자신있게 답변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여행을 하더라도 나름대로의 미션을 정하고 자신의 견문을 높일 뿐만 아니라 기왕이면 남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의미있는 여행이 될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페키지 형식이 아닌 단독으로 진행해 본 이번 여행은 내 자신의 여행 지침을 수정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내 주변의 많은 지인들에게 선언 한바가 있지만 이번 나의 여행은 단순한 관광 목적이 아니라 나의 남은 인생이 쓸모없이 버려지는 불행을 줄이기 위한 새로운 모색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전례의 관광에서처럼 고대의 유적지 특히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그의 대표적 저서인 '월든 '에서 간파했던 것처럼 고대역사의 한 시대에 세습적 리더 역할을 자임하는 악덕의 군주들에 의해 꾸며진 기교적인 불탑이나 웅장한 신전 , 화려한 궁전. 심지어는 피라밋과 같은 자신의 무덤을 만들기 위해 그 많은 사람들의 전 인생을 망쳐 놓은 악마의 사치품을 구경하는 댓가로 막대한 여행 경비를 지출하는 바보스러운 여행은 그만 두어야 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다. 차라리 그러한 노력을 현지 주민들과의 허심탄회한 관계를 통해 전 지구인 상호간에 인간적인 유대를 이루고 서로간의 속내를 보다 깊이있게 들여다 보면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의미있는 여행을 해보고 싶다.
사실은 그러한 생각들은 이미 많은 뜻있는 선각자나 국제적인 NGO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평화주의 이론의 실천가들에 의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이번의 여행을 계기로 뚜렸이 알게 되었고 아울러 그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깊이 이해하고 높이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실컷 남들에게 칭찬 받을만한 좋은 생각을 한다면서도 솔직히 말해서 비싼 항공료 들여 여기까지 와서 바로 목전에 있는 관광지를 지나칠 수 있겠느냐는 유혹을 참지 못하고 주일 휴교일인 오늘 아침에는 일찌감치 점심 요깃거리를 챙겨 혼자서 자전거를 끌고 무려 6시간의 강행군 여정으로 이 지역의 대표적인 고대 유적이라 할 수 있는 '돌 항아리 ' 유적지에 다녀 왔다. 사람이 죽으면 모든 지상의 동식물들이 다 그렇듯이 원래 신의 소유였던 자연으로부터 평생 빌려 쓴 유기체는 자연의 흙속으로 다시 되돌려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돌로 된 항아리에 시신을 간장 된장 발효시키듯이 퍼질러 넣어 가면서까지 자신의 육신을 영구히 보존하고 싶어했던 인간의 영혼 불멸의 욕심은 그시절에도 말릴 방법이 없었나 보다. 아이러니 하게도 어떤 돌 항아리에 고여있는 물속에는 하늘에서 내려 왔는지, 아니면 죽은이가 환생을 해 왔는지 그것도 아니면 어떤 장난꾸러기가 잡아다 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물고기 한 가족이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유적지 곳곳에는 미군이 투하한 강력한 폭탄이 인위적으로 작업하여 만들어 놓은 커다란 구덩이가 깊숙이 패여 있었는데 만약에 고대의 무덤 형식으로 짐작되는 돌항아리가 만들어 지기 전에 미군의 폭격이 있었더라면 굳이 힘들이지 않고도 왕능 하나 정도는 거뜬히 만들수 있었겠다는 엉뚱한 게그가 머리에 떠올라 혼자서 씁쓸하게 웃었다.
나와 함께 유적들을 둘러보던 가해자격의 미국인 젊은이들은 전쟁의 피해자인 라오스 현지인의 해설을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를 묻고 싶었지만 불행하게도 짧은 영어 실력때문에 아예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들과 헤어져 혼자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