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에 와서보니 4
내가 여기에 와서 줄곧 머물고 있는 곳은 라오스 시엥쿠앙주 폰싸완 도시 중심가에서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 사일럼 학교 인근에 있는 삼동 인터네셔널 사무소 겸용 숙소이다. 나는 앞으로 이곳에 상주하면서 사일럼 학교와 렁삐우 학교 교육 지원 사업에 참여 할 예정이다. 사단법인 삼동 이사장 (김명덕 교무님)께서는 과분하게도 나에게 이 두곳의 학교 발전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도와 주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교육계획을 세워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과연 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나는 그들에게 우선 어떤 도움을 주려고 하기보다는 그들과 최대한 인간적인 접근을 통해 우정어린 친구가 되어 주고 싶다. 충분히 그러한 나의 희망이 성취될 수 있으리라는 징후는 벌써부터 여러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선생님들이 교무실에서 사용하는 사무용 개인 책상마저도 제대로 마련되지 못하고 하나의 테이블에서 여러 선생님이 둘러 앉아 사무를 처리해야 하는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도 그들은 밝은 표정으로 나를 환영해 주었고, 학생들도 짧은 운동장 조회를 통해 나의 소개를 마치고 내가 준비해 간 축구공과 배구공 그리고 약간의 값싼 학용품 선물에도 그들은 진심으로 고마워 하는 순박한 표정이 역력하였다.
사일럼 학교는 현재는 유초등학교 과정과 중학교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고 전체 학생 수가 600여명이며 교직원은 30여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는 학교 건물이 맨바닥에 낡은 판자벽으로 된 허름한 교실환경이었으나 삼동재단의 획기적 후원으로 지금은 아주 번듯한 교실 환경을 이루고 있다. 아직 남는 여분의 교실이 남아 있어서 앞으로는 고등학교 과정까지 연장해 나갈 것이라고 한다.
학교 운영에 관한 제반 상황은 아직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상호간에 언어 소통이 자유롭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내가 마치 그 학교에 장학지도를 나간 것처럼 관료적인 태도로 학교 내부 사정에 대해 벌써부터 이것 저것 캐 묻는것이 적절치 못하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여러차례에 걸쳐 교실 난간 창문을 통해 두루 관찰해 본 바로는 학생들의 수업 받는 자세나 선생님의 가르치는 열의는 아주 양호한 편이었다. 특히 수업 시간 중에 일반적인 한국 학생들처럼 책상에 엎드려 있거나 막무가내로 소란을 피우는 행위는 단 한차례도 목격되지 않았다. 새삼스레 배우고자 하는 학습 열의가 강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라오스 선생님들은 비록 급료가 충분치 못하여 방과 후에 또 다른 직업을 갖어야 한다거나 마땅한 육아 대책이 없어 아이를 안고 교실에 들어가 수업을 해야 하는 처지이긴 하지만 그래도 통제불능의 학생들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한국 선생님들에 비해서는 참 행복하겠다는 자조적 상념이 들었다. 그리고 라오스 학생들의 진취적 학습력으로 보아 머지않아 한국의 경제적 문화적 수준을 능가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제 아침에는 내가 인근의 허름한 식당에서 쌀국수 한그릇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하고 사무실로 돌아 오던 중에 몇몇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을 지나쳐 가게 되었는데 그중 어떤 학생이 나를 보고 손짓하여 가까이 가 보았더니 집에서 가져 온 과일을 쪼개어 나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내가 아는 요즘의 한국 학생들은 오히려 선생님보고 막무가내로 뭘 사달라고 한다는데 이처럼 라오스 학생들은 선생님을 존경하고 따르는 자세가 좋아 보였다.
교무실에는 별도의 내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하기가 미안할 정도의 좁은 공간이라서 주로 도서실에서 머물며 쉬는 시간마다 모여드는 학생들과 손짓 발짓 섞어가며 대화도 하고 장난짓도 하다보니 벌써 그들과는 빠른 속도로 친밀한 관계를 이루어 가고 있다. 선생님들과도 어렵게 하나씩 터득해 나가는 라오어로 의사소통의 범위를 넓혀 나가고 있다. 어제는 아이를 안고 있는 선생님께 부탁하여 찹쌀 3kg를 구입하였는데 그 값이 겨우 우리 돈 2000원이어서 횡재한 기분이 들었다.
렁삐우 학교는 사일럼 학교에 비하면 아직 우리나라 60년대의 달동네 판자촌을 방불하는 실정이다. 아주 좁은 공간의 판자집으로 된 기숙사에 무려 85명의 학생들이 수용되어 있었고, 그들 스스로 공동 취사를 하고 있었는데 식당은 맨바닥에 비가 새는 녹슨 양철 지붕으로 덮여 있었다. 그걸 보면서 부족한 국가 예산을 무시하고 고급의 무료 급식 타령이나 하는 한국인의 실정이 참으로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만약에 우리 한국의 학생들을 이곳 학교에 유학을 보내 온다면 글쎄, 과연 몇명이나 끝까지 버텨 낼 수 있을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