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에 와서보니 2
우리에게 알려진 라오스는 지독히 못사는 나라다. 못산다는 진정한 의미와 기준은 무엇일까? 가진것이 없다는 말은 행복하지 못하다는 말과 반드시 동의적 관계를 이루는 것일까? 바로 그런 점에서 이곳 라오스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심성들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오늘 아침에는 어디를 가던 말릴 수 없는 나의 지리 탐색 욕구가 다시 발동하였다. 숙소를 벗어나 무작정 포장된 간선 도로로 들어 설 때만 해도 오늘은 절대로 탈선하지 않고 정도만을 걸으리라 마음 먹었다. 그러나 결국 가다가 만나는 좁은 골목길의 보이지 않는 안쪽을 향하는 마음의 유혹을 끝내 단절하지 못하였다. 또다른 마음의 한편에서는 낯선 곳에 가서는 절대로 함부로 으슥한 골목길에 들어서지 말라'는 여행자의 원칙이 떠올라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들긴 하였다. 그러나 이내 이미 날은 밝아져 있었고 더구나 여기는 악마가 창조해 내었다는 대도시가 아니고 우리나라 60~70년대와 같은 시골 인심이 아직도 살아있으리라는 기대가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좀 더 깊숙이 그들의 거주 환경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우선 어젯밤에 한차례 사납게 내린 소낙비로 인해 곳곳이 수렁길이어서 '이제 그만 여기서 돌아갈까' 하는 마음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내 발걸음은 자꾸만 '여기까지 와서 그게 뭔 소리냐'면서 막무가내로 앞장을 선다. 어쩌다 사람을 만나면 그들은 흔치 않은 사람을 볼 때의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다 본다. 마치 동물원에 가면 우리는 원숭이를 구경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원숭이 또한 우리를 구경하고 있는 것처럼. 혹시라도 무단으로 마을에 나타난 사람은 무조건 지체없이 경찰서에 신고하라는 철저한 반공시대 간첩 신고 교육을 받으며 자랐던 나에게 이제는 오히려 내가 이곳 사람들에게 간첩으로 오해받아 불의의 사태에 직면하게 될른지도 모른다는 은근한 걱정에 지레 겁을 먹게 된것이다. 이러한 불안한 상황을 재빨리 벗어날 수 있는 묘안이 떠올랐다. 내가 먼저 그들에게 약간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내가 이 나라에 와서 가장 먼저 배워서 자주 써먹고 있는 '싸바이디'라는 전천후 인삿말을 건네는 수법이었다. 그러면 이내 그들도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고 환한 얼굴로 친근감을 표해 오는 것이다.
너저분하게 지어진 판자집이며 비위생적인 양계장 시설을 둘러보면서 혹시라도 그들에게 감추고 싶어하는 속살을 들킨 것 같은 열등감의 상처를 자극하게 되지나 않을까 조심스럽게 좌우를 살피면서 핸드폰으로 몰카를 찍고 돌아서 나오는데 동네 사람들이 한데 모여 시끌짝하게 웅성거리는 모습이 보이고 이내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려왔다. 잔뜩 호기심이 일었지만 자칫 잘못하면 그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할 것이 우려되어 소심하게도 모르척하고 지나쳐 오려고 했다. 그런데 내 발목이 도체체 그들이 뭐하고 있는지 알고나 가자고 또다시 나를 가로 막고 나섰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그들에게 접근하여 ' 싸바이디, 커이 뺀 콘 까올리 따이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 사람입니다)' 라고 인삿말을 건넸더니 이내 무리의 댓방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반가운 표정으로 맞아 주었고 아줌마는 바닥이 맨땅으로 된 아주 허름하게 보이는 오두막 집안으로 들어와 쉬어 가라고 권유하는 시늉을 지어주었다. 나는 잠시 아주 멀고 먼 옛날에 시골 작은집에 가면 동네 어른들이 나를 반겨주며 예뻐해 주시던 기분을 되찾아 볼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주변을 좀 더 찬찬히 살펴보니 곳곳에 아주 깨끗하고 깔끔하게 지어졌거나 지어지고 있는 집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아마도 한국과 라오스의 2시간 시차만큼이나 떨어져 있는 이곳 거주 문화의 환경도 이제 급속한 변화의 물결을 이루며 종종걸음으로 우리를 뒤쫓아 오고있는 것은 아닐까? 있을때 잘하라고 했다. 이는 우리가 좀 앞서 있을 때 이들에게 보다 많은 찬절을 베풀어야 하는 이유가 될 것아다.
늦은 오후에는 동행한 김부장님과 함께 줄곧 우리의 일정 전반을 서포트 해 주고 있는 민간인 친절 대사격인 현지인 팯의 안내를 받아 이곳 시엥쿠왕주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공산당 고위 당원 신분의 깜씨댁을 특별 초대 손님으로 저택을 방문하였다. 그댁 가족들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고 즐거운 환담을 나누었다. 비록 서로간의 언어 소통이 자유스럽지는 못했지만 이심전심의 기법으로 궁하면 무조건 웃어 주면 만사가 형통이다. 만찬에 성의있게 차려진 닭고기, 소고기, 오리고기 요리에 바다가 없는 내륙 국가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우럭 생선에 이르기까지 우리 입맛에도 전혀 거부감이 일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그야말로 진수 성찬이었다.
귀가길에 내 평생동안의 풀리지 않는 화두가 되고 있는 '인간의 불평등 기원'에 대한 신의 진정한 뜻은 무엇인가를 깊이 깊이 사색해 보았다.
* 이미지는 인터넷 기능이 원활치 못하여 귀국하여 보완 첨부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