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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라오스」에 가는 까닭은

허니강 2015. 9. 2. 23:44

 

강허니

지금이 옛날이었다면 이제 우리 나이에 이르러서는 그동안 줄곧 해 왔던 일도 고스란히 내려놓고 안방마님처럼 뒷전으로 물러서서 그저 팔짱을 끼고 젊은 애들 하는 꼬라지나 구경하여야 할 처지다. 그러나 아직도 죽을 날이 멀게만 느껴지니 할 일 없이 허성구성 세상 살아가는 것 또한 고통이 따른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오늘은 뭐하고 지내지?’하며 궁리하고, 저녁이 되어 잠자리에 들 때는 ‘내일은 또 누구를 만나 뭐하고 시간을 때우나?’ 하고 미리 걱정을 가불한다. 어찌됐던 간에 규칙적인 일상에서 해방된 자유를 누리다보니 어느덧 비워진 뇌 공간이 확장되어 쓸데없는 공상 또한 많아지고 있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옛날 일을 회상하는 때가 많아지게 되는데 아무리 생각을 다시 고쳐보아도 내가 잘 살아 왔다는 생각보다는 잘못 살아 왔다는 반성의 회한에 더 강하게 사로잡히곤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저마다의 마음속에 숨어 살고 있는 유령과도 같은 ‘우상’을 섬겨 온 듯하다. 사람에 따라 그 ‘우상’의 대상은 돈이나 권력이기도 하고 명예나 권위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그 어느 부류의 사람들보다도 마음으로부터의 섬김의 대상을 ‘사람’으로 여기며 자신의 전 생애를 바쳐 남을 위한 실천적 봉사의 삶을 살아 온 선량한 인품의 사람을 만나게 됐을 때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아주 큰 감명을 받기도 한다.

 

‘나는 왜 그들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감동, 감화, 감명을 주는 사람이 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받는 사람으로만 살아 온 것일까?’ 요즈음에는 바로 그러한 문제가 나를 괴롭히는 화두로 자리 잡고 있다.

 

보름간의 일정으로 우선「라오스」에 다녀 올 생각이다. 내 생애의 대부분을 주로 남에게 신세 짓는 일만 해오다 보니 ‘세상을 살면서 결코 남에게 티끌만큼의 빚도 남기지 말라’는 부모님의 가훈을 죽기 전에 다 이루지 못하면 아무래도 께름직하여 편안하게 죽지도 못할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적어도 세상 살면서 알게 모르게 내가 지은 죄값만큼은 남에게 선행을 베풀어 갚아야겠다는 때늦은 각성을 실천에 옮겨보기 위해서이다.

 

나는 일찍이 말 못할 여러가지 사정으로 정규학교 과정을 제때에 수료하지 못하고 뒤늦게야 만학의 길을 걷고 계시는 분들과 생활해본 적이 있다. 그래서 그 분들의 배우지 못한 평생의 한이 얼마나 뼈아프도록 깊고 큰 것인지를 알만하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나라 교육 복지환경도 어지간히 좋아져서 본인의 자율적 의지가 부족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문맹이나 저학력으로 인해 자존감의 상실을 겪는 고통에서는 웬만큼 벗어나게 되었다. 오히려 배울 수 있는 기회와 장소는 넘쳐나는데 막상 배워야 될 수요자를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에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이제는 눈을 좀 더 넓게 뜨고 우리보다 경제 발전이 다소 늦어지는 이유로 앞서의 우리나라 만학도 여러분들이 겪었던 불행을 되풀이 하게 된 세계 각지의 열악한 청소년들에게 제때에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자 하는 교육 사업이야말로 인류 공영의 발전을 위해 크게 의미 있는 일이라 여기게 되었다.

 

마침 이러한 인류애적 종교정신에 입각하여 원불교 산하 기관인 사단법인 삼동 인터내셔날 김명덕 이사장님으로부터 라오스 시엥꽝 소재의 삼동스쿨을 개설하여 이미 그처럼 좋은 뜻을 펴고 계심을 지역 메스콤의 대담 방송을 통해 알게 되었고 이에 나 또한 용기를 내어 학교 관리  봉사 활동을 자원하게 되었다.

 

우선 학교 현장을 방문하여 구체적으로 내가 어떤 일을 도울 수 있는가를 타진하기 위해 떠나는 이번 여행 계획을 시골에서 작은 농장을 경영하는 친구에게 말했더니 “좋은 일은 네가 내 몫까지 대신하고 복은 나와 함께 나누자”는 뜻으로, 아마도 금년 농산물 판매를 통해 얻어진 마지막 잔고로 여겨지는 금액을 선뜻 항공료에 보태 쓰라고 내 놓으니 고맙기가 그지없다. 하긴 친구가 나에게 전해준 이익금은 알고 보면 전국의 친절하신 소비자 여러분들로부터 얻은 것이니 아무쪼록 내가 의도하는 선행이 순조롭게 이루어져서 그들 모두에게도 큰 복을 나누어 줄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해 본다. (헌)

 

* 이후의 활동 진행 사항은 저의 블로그를 통해 계속 전해드리겠습니다.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