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의「농사 꾼」소감
강허니
흔히 현대 사회를 가리켜 각종의 ‘자격증 남발 시대’라고도 한다지만 유독 ‘농사꾼이나 ’장사꾼‘만은 아직까지도 특별한 기관 발행이나 인증 형식을 거치지 않고도 맘만 먹으면 언제든 연령 제한 규정을 무시하고 덤벼들 수 있는「꾼 자」항렬의 원시적 직업군으로 남아 있다.
내가 오랜 공직생활을 마치고 사회 제도적 떠밀림에 의해 은퇴하게 되었을 때 내 친구는 나에게 은근한 유혹의 미끼를 던져 왔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100세의 수명을 바라보는 고령화 시대에 할 일을 잃고 백수로 살아야 하는 시간은 너무나 지루하고 무의미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보다 몇 해 앞서 직장을 벗어나 있던 친구는 결국 갑자기 많아진 시간 처리 방법에 대해 고민하다가 ‘나에게는 결코 영원한 은퇴란 없다’거나 ‘나는 평생을 현역으로 남고 싶다’는 강렬한 희망을 성취하기 위해 제2의 창업 정신으로 용감하게 덤벼든 일이 바로 무자격자에게도 환영의 길을 열어주고 있는 인기 없는 중소규모의 ‘농장 경영인’의 직업이었고 나에게는 어차피 총원 2명으로 한정된 직장에서 인심 좋게 연봉 불문의 ‘농장 장’이라는 허울 좋은 직위를 제안해 온 것이다.
잠시 생각해 보니 경제적 투자의 위험 부담이 없고 무엇보다도 복잡한 인간 상호간의 이해관계에서 멀리 도망쳐 갈 수 있겠다는 단순한 판단으로 나는 엉거주춤 반승낙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 해 무섭게 휘몰아쳐 온 태풍은 내가 ‘숲속의 자연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꿈을 망가뜨리고 말았다. 가벼운 건축 자재로 지어진 임시의 농막이 그만 세찬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덤브링의 기교를 부리는 바람에 허망하게도 하루아침에 폐허의 잔재로 변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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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2년 반여의 시간이 흘렀다. 내가 이러저러한 연고로 대전 시내에 자리하고 있는 어느 평생교육 기관에서 만학도의 학업을 돕는 학교 경영인으로 일하는 동안 내 친구는 혼자서 고향의 무공해 청정지역인 호수 변에다가 농장의 터를 닦고 다종의 과실수(뽕나무, 감나무, 블루베리, 아로니아) 묘목을 심어 정성을 다해 육성하였다.
내가 약속된 기간 동안 연장된 교육 사명의 역할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고향으로 귀환해 왔을 때는 어느덧 친구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개척한 농장의 농산물들이 잉태의 산고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출하의 시기를 맞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친구의 정성과 땀으로 결실된 수확의 열매들이 불티나게 팔려 나갈 수 있는 마땅한 판로는 전혀 희망을 찾지 못하고 암담해 있었다. 이를 어찌해야 하나.
( * 이쯤해서 염치 불문하고 광고 한 편을 때려야 한다. “유네스코 지정 생물권 보존 지역인 고창의 ‘동림 호수 변’에 마련된 저희「새솔터 농원」에서는 100% 무농약, 유기농으로 생산되는 ‘오디’와 ‘블루베리’와 ‘아로니아’를 여러분의 품질 좋은 제철 건강 보조 식품으로 제공하고 있사오니 많은 애용을 바랍니다”. 이후 베토벤의 감미로운 ‘전원교향곡’ 일부를 흘려보내면 더 좋을 성 싶다)
내가 정년 이후의 안식처로 흔쾌히 이곳을 선택한 주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연 친화적 인간 본성에 최대한 근접해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살아오는 동안 줄곧 나를 괴롭혀 왔던 인간 상호간의 수리적 타산과 이익의 공정한 분배 면에서 갑과 을 간에 벌어지는 치열한 마찰과 충돌에서 오는 심리적 갈등 상황으로부터의 완벽한 탈출을 원했던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여기에 와서 잠깐 경험해 본 농업은 이미 원시적 1차 산업에서 크게 벗어나 1차+2차+3차 산업이 종합된 첨단의 6차 산업으로 껑충 뛰어 올라와 있는 현실이 비로소 인식되었다. 다시 말하면 경작 노동과 기계적 산업화와 유통 서비스가 종합적으로 구동하는 멀티 시스템으로 발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친구는 태연하게도 전통적인 농촌 인심에 의존하는 구태의 농업 경영방식에 머물기를 고집하였다. 예를 들면 고임금 지불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수의 노동인력을 한꺼번에 투입한다거나 가까이에 있는 우리의 이웃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며 그들에게 값비싼 ‘삼계탕’을 점심밥으로 제공하는 선심성 낭비와 인터넷 구매방식을 활용한 상품 포장 용기 단가의 절약을 면소재지 소상인 보호 차원에서라며 고의로 외면하는 등의 마켓팅 전략의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의 어설픈 계산법으로 보더라도 농사 마무리 뒤의 예상 가능한 판매수익과 제반의 농비 또는 상품 운송 과정의 소요경비 등의 대차 대조 상 총계 이익은 아무래도 적자를 면치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나의 현실적 힐난에 대해 친구의 대답은 다분히 감상적이고 인본주의적이었다. 우리가 생산한 물건을 믿고 구매해준 전국 각지의 소비자들로부터 거두어진 이익을 모아 여러 가난한 영세 노동자나 사업자들과 나누어 가지는 정직한 분배의 실현만으로도 우리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다는 이론이었다. 듣고 보니 우리와 작은 이익을 서로 나눌 수 있었던 생산과 유통 과정상의 인적 범주는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하루의 생계를 중노동의 대가로 지불되는 품삯에 의존하는 일용 노동자와 그 가족들, 농산물 포장 도구 등을 판매하는 작은 수익금으로 먹고 살아가는 가난한 면단위의 소상인들, 제철 과일의 수확시기에는 운송 물량의 폭증으로 삼시 세끼의 식사마저도 걸러야 한다며 울상을 짓는 택배회사 종업원들, 광활한 농촌 들녘의 어느 곳인들 가지 못할 곳이 없다는 치열한 생존 의식의 소유자로 분류되는 오토바이 식당 배달 알바족, 그밖에도 ‘농자’ 직업 항렬의 주변에서 푼돈 얻어 쓰며 살아가는 숱한 영세 사업자들. 그들 모두가 우리가 함께 챙겨 주어야 할 우리의 선량한 이웃이라면 당연히 우리에게 남는 이익의 잔고는 적을수록 값지다는 친구의 숭고한 뜻이 비로소 가슴에 와 닿는다.
굳이 그렇게 과장된 ‘천사표’ 생색내기가 아니라 해도「농사꾼」직업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무형의 자산들은 또 있다. 뜨거운 태양 볕에 까맣게 살갗을 태우며 한바탕 분주하게 땀을 흘리고 난 뒤에 개운하게 한 바가지의 찬물을 온몸에 끼얹을 때의 상쾌함. 발목 위에까지 올라 와 있는 장화를 신고 포장되지 않은 맨땅을 걸을 때의 발바닥에 전해져 오는 부드러운 감촉. 오전 중의 고된 노동으로 인해 피곤하고 허기진 육신을 격려하기 위해 한가운데 차려진 푸짐한 들밥을 오순도순 둘러 앉아 나누어 먹을 때의 인정미 넘치는 평화로움. 그러한 우리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숲속의 키 큰 소나무들. 한 줌의 먹잇감을 두고 동료들과 떼로 뭉쳐 공중전을 감행해 오는 미운털 조류 족속들과의 한바탕 치사한 싸움을 끝내고 난 뒤에 멋쩍게 지어보는 헛웃음. 지하 땅굴을 파고 침투하여 애써 가꾸어 온 과수의 뿌리를 상처 내어 죽게 하는 두더지 특공대의 야속한 행위를 두고 무차별 욕설의 포탄을 날려 보내고 난 뒤에 오는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 가끔씩 살랑살랑 피부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결의 친절한 우정. 얼마 전, 그동안 잉태의 산고를 무사히 치룬 포상으로 농장주로부터 한줌씩의 고급 유기질 비료를 얻어먹고 희희낙락해 있는 뽕나무와 블루베리의 함박꽃 같은 밝은 표정들. 이제는 모두가 하루의 작업을 마치고 각자의 집으로 흩어져 가고 난 뒤에 나 혼자 농막에 남겨 졌을 때의 고요한 적막감. 비로소 한가한 마음으로 시선을 멀리에 보내면 반갑게 다가오는 가슴 넓은 호수의 잔잔한 물결들. 그리고 깊은 밤이 되면 청천 하늘에 밝게 드리워지는 총총한 별빛들.
만물이 잠들어야 하는 이슥한 밤에 바람처럼 지나가 버린 나와의 소중한 인연을 잊지 않고 기억해 내어 나와 친구의 정성어린 손길로 키워 낸 열매들에게 따뜻한 입양의 손길을 전해주신 마음씨 착한 지인들과 그들의 입소문을 무작정 믿고 호의를 베풀어 준 친구의 또 다른 친구들과 이웃들 그리고 강한 ‘햇볕 노출 기피 증후군’에 시달리면서도 히잡을 둘러 쓴 아랍 여인의 복장으로 ‘농사 현장 체험 봉사’에 참여하여 불청객 벌레들을 만나 질겁해 하면서도 “이들이 곧 ‘친환경 농산물’임을 인증하는 보증서가 아니겠느냐”면서 넉넉하게 웃어 보이던 외래 방문객 여러분들께 내가 이곳의 자연으로부터 얻은 축복의 선물을 생일 케익 나누듯이 곱게, 곱게 쪼개어 보내드리고 싶다. (헌)
(* 마지막 협찬의 광고 ; 여러분의 보다 건강한 삶을 위해 저희 ‘새솔터 농원’의 직원(2명) 일동은 내년에도 보다 품질 좋은 상품 생산을 위해 더욱 정성을 다해 노력 할 것을 약속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