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거리/내 생각, 내 마음

나도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허니강 2015. 8. 12. 11:34

강허니

   우리는 참 운 좋게도 눈부신 현대 의료문명의 발달 수준에 힘입어 우리의 옛 조상 분들이 평균적으로 살다 간 나이보다도 훨씬 긴 생명 연장의 혜택을 받게 되었다. 그러한 여파로 급기야는 ‘대한 노인회’ 어르신들께서 공식적인 노인 연령을 65세에서 75세로 대폭 상향해야 한다고 정부에 건의하기에 이르렀다.

처음 들을 때는 자기들은 그동안 누릴 것 다 누렸으니 다음 세대들의 불만쯤이야 남의 일일 뿐이고, 오히려 그렇게 하여 절약되는 각종의 노인 복지 기금 혜택을 더 많이 차지하겠다는 극단적인 이기심의 발로가 아닌가하여 나 같은 소장파 노인 대열의 사람으로서는 분노에 가까운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곰곰 곱씹어보니 우리보다 훨씬 나이가 많으신 상노인들께서 우리 나이대의 사람들을 노인 축에서 애써 배제하려는 속셈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들을 아직 머리에 피도 다 마르지 않은 ‘젊은 늙은이’로 간주해 주겠다는 말씀이 반드시 기분 나빠 해야 할 일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그런데 막상 법적으로 인증된 노인 축에서 밀려난 우리네들을 젊은이들인들 반갑게 자기편으로 맞아주겠느냐는 것이 문제다. 그렇잖아도 선거철만 되면 ‘그래도 옛날이 좋았지!’하는 정치적 향수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노인네들과, 그들 모두를 고루하고 부패하여 역사의 진보를 가로막는 수구 꼴통 집단쯤으로 매도하려는 젊은이들 사이에 좁힐 수 없는 갈등의 골이 깊어져 있는 터에 순순히 우리에게 자기편 울타리를 곱게 열어주겠는가 하는 과제가 남는다.

여기에서 진정한 ‘노인 문제’의 본질적 접근은 단순히 나이를 기준으로 하는 노인연령의 문제보다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저절로 존경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진정한 삶의 모범이 되고자 하는 노인 의식의 대전환이 선행되어야 할 이유가 성립된다.

 

내 나이도 어언 노인 연령에 이르렀다. 얼마 전에 내가 막내로 있는 어떤 모임에서 ‘국립 생태공원’을 관람하게 되었는데 나보다 나이가 위인 형님들께서는 모두가 자기들이 왕년에 무슨 국가에 큰 공헌이나 한 것처럼 당당하고 의젓하게 ‘경로인’ 무료입장의 혜택을 받아 입장하는데 비해 유독 나에게만은 아직 태어난 생년월일이 경로의 나이에서 1개월이 부족하다하여 입장료를 요구하는 바람에 좀 억울한 마음이 들었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속마음으로 ‘경로’의 자격 기준이 왜 숫자로 따지는 나이가 되어야 하는지 의문과 동시에 불만을 갖기도 했다.

 

원래 ‘경로’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그분이 한 평생 살아 온 인생이 후세들에게 널리 본이 될 만하여 ‘존경하고 우대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본다. 그러한 점에서 과연 우리 사회의 노인층 사람들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따르고 존경을 받을 만큼 참된 어른으로서의 모범을 충분히 잘 보이고 있는지를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요즘 스마트 폰을 통해 자주 보게 되는 포털 사이트 제공의 정치관련 뉴스 기사의 밑줄에 붙이는 꼬리말(댓글)들을 보고 있느라면 지극히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우리 사회의 노인들은 많은 젊은이들로부터 존경받는 ‘경로’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합리적인 정치적 판단 능력을 상실하여 무작정 기득권 정치세력에 편승함으로서 나라의 장래를 망치게 하는 30%대의 수구꼴통 집단으로 매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이제 곧 그 범주에 확실하게 진입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만큼은 진부한 정치의식에 매몰되어 올바른 사고를 갖고 합리적인 사회의 진보를 지향하는 젊은이들의 공적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각별히 처신을 진중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져 보았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후세들이 우리가 살아 온 역경의 삶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울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겠다.

 

엊그제는 아직은 나의 육신이 성성하여 몇몇 친구들과 함께 지리산 준봉까지도 무난하게 산행을 다녀왔다. 옛날 우리 할아버지 세대를 상기해 보면 지금 우리의 나이는 그때 그분들의 40대를 풍미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의미 있게 살다 가느냐가 관건이 된다. 어떤 도인께서 나에게 들려준 말이 떠오른다. “우리가 한평생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는 인생은 최악의 인생이다. 그렇다고 오직 내 한 몸이나 내 가족만을 위해 살아간다면 지극히 평범한 인생을 살다 갈 뿐이며 만약 불행한 남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다 갈수만 있다면 그것은 최상의 인생이라 할 수 있다.” 듣기에 따라 극히 평범한 말이긴 하지만 나에게는 유독이 울림이 큰 한마디였다. 나도 남은 인생 기왕이면 최상의 인생을 살다 가고 싶다. (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