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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자연의 벗’이 되고보니…

허니강 2015. 6. 30. 12:07

또다시 ‘자연의 벗’이 되고보니…

강허니

 

잠시 동안의 사회적 제도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또 다시 행복이 눈뜨는 아침의 자리 <새솔터 농원>에 되돌아와 있다. 이제 제법 모양을 갖추기 시작한 농원에서는 올해 첫 기쁨의 소출을 올렸다. 어느새 우리의 오랜 꿈이 영글어 전국 각지의 최종 소비자에게 생기로운 건강 보조 식품으로 팔려나가는 과정이 퍽이나 흥미롭고 보람되었다.

 

인간의 본성은 참 희안하게도 ‘희망’이라는 미끼에 현혹되어 한없이 높고 미래지향적인 문화를 향유하려 하면서도 때로는 종종 뒤를 되돌아다보면서 ‘미련’의 아쉬움에 이끌려 원시적 본능의 고향을 그리워한다. 이 무슨 해괴한 논리의 모순인가?

 

나 또한 범인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완전한 <자연인>으로서의 삶을 꿈꾸어 왔다. 그래서 틈틈이 좌우사방이 단절의 벽으로 둘러싸인 ‘아파트 문화’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하였다. 다행히도 지금은 친구의 도움을 받아 반문화적 수렵시대의 자연생활을 만끽하고 있다. ‘넌, 그토록 편리한 아파트 생활을 마다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컨테이너 농막생활을 자원하는 참 희안한 놈’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비난을 올곧게 감수하는 대가로 얻어진 값비싼 자유의 획득 산물이다.

 

내 아무리 <동굴 본능>에 입각한 반문화적 기행을 즐기려한다고는 하지만 이제 막 재래시장에서 사온 버릇 나쁜 똥개 새끼처럼 아무데나 분별없이 똥, 오줌 갈겨대는 원시인의 지저분한 삶을 닮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겨우 친구를 설득해서 기존의 허름한 창고를 개조한 보통 이하 수준의 화장실을 마련하였다.

 

밤이 되면 주변 1km 범위 안에서는 인적을 느낄 수 없다. 누구의 간섭이나 억압도 받지 않을 수 있는 호젓함이 나의 심신을 편안케 해준다. 그래도 혹시나 무단 침범자가 이유를 알 수 없는 위해를 가해올 것을 염려하여 농막 안쪽의 문고리를 잠그는 것을 잊지 않는다. 지 아무리 어여쁜 처녀 귀신이 나타나 나를 밖으로 홀려 내려 한다 하여도 결코 응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나 오밤중에 나의 단잠을 깨우는 오줌보의 심보를 말릴 수가 없어 하는 수 없이 문고리를 풀고 밖으로 나온다. 사방은 고요의 담뇨를 덥고 무겁게 침묵의 늪에 침잠해 있다. 가끔씩 짝짓기를 애걸하는 황소개구리의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조용히 노래 부르며 서정적인 분위기를 돋우던 풀벌레들도 잠시 나의 인기척에 놀라 소리를 멈춘다.

 

낮 동안 나와 동일한 생존 수단의 먹이감 쟁취로 인해 경쟁을 벌리던 각종의 새들도 소리 없이 피곤을 잠재우고 있다. 어쩌다가 잠 못 이루는 소쩍새의 한숨어린 음파의 곡조만이 고요한 어둠의 공간을 가르고 있을 뿐이다.

 

하늘에는 별들이 초롱하다. 호수 건너편 마을을 지키는 가로등불이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물속에 풍덩 빠져들어 물놀이를 즐긴다. 은은한 달빛이 그들을 흐뭇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그처럼 자연의 밤은 평화롭다. 나도 그들과 섞여 들어가 어깨동무를 하고 싶다. 그러나 그들은 어쩐지 나에게 쉽사리 빈자리를 내주지 않을 것만 같다. 나는 자연으로부터 왕따 된 기분으로 다시 옹색한 간이침대로 쓸쓸하게 되돌아와 눕는다.

 

그로부터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인다. 나의 의식은 내가 살아 온 과거를 더듬는다. 그리고 끝임 없이 밀려오는 후회를 변명한다. 결국 내가 견딜 수 있을 수만큼의 고통에 머물게 해준 운명에 감사하며 오늘 하루를 접는다. 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