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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의 유혹(수필)

허니강 2015. 4. 18. 12:31

살생의 유혹

강허니

 

「이 ××를 당장 죽여!?, 말어!?」

 

요 며칠, 내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 할 정도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화두다. 어릴 적에는 멋모르고 우리 집에 귀한 손님이 오실 때마다, 내가 장차는 어엿한 사나이로 성장하여,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을 때는 주저하지 않고 전쟁터에 나가 적군의 가슴을 향해 마구 총을 쏘아 댈 수 있는 역전의 용사가 되어 주기를 기대하시던 어머니께서 시키는 대로, 전혀 생명의 경외심이나 도덕적 양심을 가리지 않고 여지없이 닭 모가지를 비틀어 날개 죽지에 머리통을 파묻은 채로 발버둥 치며 ‘제발 한 번만 살려 달라!’고 몸부림하는 처절한 어미닭의 호소마저도 단호하게 무시하면서, 끝내 숨통을 막아 질식사 시켜버리고 말았던 잔혹한 카인의 후예로서의 본성이 꿈틀거리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다시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바로 요 며칠 전의 일이다. 내가 요즘에 수강하고 있는 ‘목 건축학교’ 오전 일과를 끝내고 적당한 방법으로 빠른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난 뒤에, 나의 오래 된 생리적 습관에 따라 독방의 기숙사에 들어가 잠시 낮잠을 청하려 하고 있는데, 내가 사전에 전혀 초청한 바도 없고, 방문을 허용한 적이 없었던 불청객 한 놈이 노크도 없이 내 방에 슬며시 들어와 온 방을 헤집고 다니면서 소란을 피우고, 귀찮을 정도로 내 얼굴에 스킨십을 청하는 바람에 끈질기게 나의 새콤달콤한 숙면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화가 나기도 하고 급기야는 내 평생 동안의 ‘사회성 교육’과 '생명 존중 사상'의 인격수련을 통해 잠재워 두었던 살생의 유혹이 치밀어 올랐다. “애~라~이. 요 녀석, 너 한 번 내 손에 죽어 봐라!”하고 마침, 내 뺨에 뽀뽀를 청해 오는 녀석을 내 나름의 번개 같은 손동작으로 어림잡아 허공을 잡아채었지만 고성능 헬기보다 빠른 동작으로 손쉽게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이제 단단히 겁을 주었으니 다시는 나를 얕보거나 함부로 건들지 않겠지?’ 하고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웬걸, 이제는 본격적으로 내 주변을 선회하면서 계속 싸움을 걸어온다. 아마도 최대한 나를 약을 올려 제풀에 쓰러뜨리겠다는 지 나름대로의 얄팍한 <꾀임작전>으로 간파되었다. ‘어쭈, 요놈 봐라?’ 이제는 아예 오던 잠도 멀리 도망가 버리고 ‘감히 한갓 미물의 처지에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모습으로 태어난 인간을 향해 도전해 오다니!’하는, 나의 물러 설 수 없는 인간적 자존심을 자극해 왔다.

 

그래서 나는 불끈 주먹을 쥔 채로 아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 야, 이놈아! 오죽 했으면 사람들이 널보고 ‘파리 목숨’이라고 했겠냐?”며 사뭇 전의를 불태워 갔다. 그러나 비참하게도 나의 단칸방에서 치러진 국지적인 작은 전쟁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야말로 코끼리와 생쥐의 싸움에서 생쥐가 승리하는 웃지 못 할 판정패 결과가 나온 것이다. 나의 치명적인 패배의 원인은 참으로 어이없게도 우리 인간이 인간을 속박하고 있는 ‘시간’이라는 제약 때문이었다. 싸움이 끝나기도 전에 그만 오후 일과 시간의 시작을 알리는 내 핸드폰의 ‘알람’이 울리게 된 것이다.

 

오늘도 일과를 끝내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 녀석이 버젓이 주인처럼 행세하고 있었다. 아예 즈이 친구인지, 애인인지 모를 동료까지 데리고 들어와 함께 어울려 놀고들 있었다. (심지어는 벌건 대낮에 내 침대까지 침범하여 더럽히면서)

 

나는 결국 그들에게 항복을 선언하고 말았다. 그리고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 주었다. “그래, 그동안 내방에 나 혼자 살기가 외로웠는데, 마침 너희들이 찾아와 친구해 주니 고맙구나. 그런데 어쩌지? 너희들에게 꼬박꼬박 끼니까지 챙겨 줄 생각은 없는데..., 요즘에는 워낙 야박한 냉장고 인심이라서 너희들 밥 빌어먹기도 예전 같지 않겠지만 정히 배고프면 내가 문 열어 줄 때 얼른 나가서 밥 얻어먹고, 웬만하면 다시 돌아오지 말~아~줘. 잉~~~~~.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