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인간의 ‘가지치기’는 어떻게 다를까?
강허니
나로 보아서는 생애 2번째 직장이라 할 수 있는 평생교육 학교 관리자의 일을 끝내자마자 곧바로 시작한 일이 내 둘도 없는 친구 소유의 ‘새솔터 농원' 농장장 직책이다. 말이 좋아 농장장이지 실상은 한 자리에 집합시킬 수 있는 직원이래야 친구와 나 둘뿐이고 내 밑으로는 함부로 부려 먹을 수 있는 똥개새끼 한 마리도 없다. 그토록 직장 사정이 열악하다보니 지켜야 할 출퇴근 시간마저도 따로 정해진 바가 없다. 오늘은 명색이 첫 출근일임에도 불구하고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어슬렁어슬렁 농사 현장을 찾아갔다. 농장주라 할 수 있는 내 친구는 벌써 출근해서 찬바람 맞아가며 열심히 뽕나무 가지치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다짜고짜 전정가위를 챙겨들고 일을 거들기 위해 나섰다. 친구는 다소 어이없는 표정으로 "야! 조경사 자격도 없는 하발이 일꾼 주제에 그렇게 막무가내로 덤비면 어떡해! 농사일도 기술인데 술, 담배, 물심부름부터 단계를 밟아 올라 와야지" “어쭈구리, 그러는 너는 언제부터 농사일 시작했다고?” 나는 고용주의 말을 적당히 문질러 버리고 내 멋대로의 창조적 농법 개발 작업을 시작하였다. (매사가 다 시행착오 학습과정이 필요하지 않겠어?)
난, 한바탕 싸움질을 끝내고 난 뒤의 헝클어진 계집아이 머리채마냥 무질서하게 늘어뜨려진 뽕나무 가지를 향하여 신출내기 이발사의 무식한 기세로 가위질 해 나갔다, 나 하는 모양을 한심스럽게 지켜보던 친구는 하는 수 없이 몇 가지 가지치기 기본원칙을 설명해 주었다. 들은바 대로, 기억나는 대로 대충 꾸며서 옮겨 써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구성된다. 첫째, 얼른 보아 체질이 허약하여 미래의 대목이 될 만한 싹수가 보이지 않는 놈은 일찌감치 거세 조치하라. 둘째, 염치없이 저 혼자만 살겠다고 옆 가지 진로 방해하는 싸가지 없는 놈은 과감하게 제거하라. 셋째, 아직도 어미가지 치마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땅바닥을 기고 있는 좀생이 놈들은 사정없이 처단하라. 넷째, 같은 줄기의 형제끼리 서로 양지쪽 차지하려고 쌈박질하는 못된 놈들은 가차 없이 팔다리를 절단 조치하라. 다섯째, 거만한 자세로 가운데 자리 차지하고 멀대처럼 커 올라 구성없어 보이는 놈은 당장 효수형에 처하는 본때를 보여주어라. 여섯째, 이미 곰삭아 자식 생산의 가망성이 없어 보이는 늙은 가지는 죽기 전에 미리 순장의 예를 갖추어 주어라. 일곱째, 남들은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가는데 신체가 부실하여 허리도 반듯이 펴지 못하고 고개를 땅으로 처박고 있는 연약한 놈은 그쯤해서 흙의 고향으로 되돌아가도록 특별 귀가 조치하라. 여덟째, 시도, 때도 모르고 지난겨울 잠시 따뜻한 날씨를 착각하여 새순 내보냈다가 얼어 죽게 한 유아성 치매환자는 서둘러 안락사를 허용하라. 아홉째, 없는 살림에 자식새끼 퍼질러 낳다보니, 한 가지에 너무 많은 식구들이 달라붙어 비축 양식만 축내는 놈은 산아제한법을 적용하여 가차 없이 구조 조정하라. 마지막 열 번째, 기타 전체적 수형 상, 눈에 거슬리는 놈은 니 맘대로 즉결 처분하라. 친구가 잠시 일자리를 떠난 사이에 이상의 뽕나무 가지치기 십계명을 충실히 지키다 보니 아차, 나무의 모양새가 지나치게 허성해진 것 같아 장차 풍성한 열매의 수확이 걱정스럽다. 제기럴, 이미 잘라버린 가지를 접착제로 다시 제자리에 붙여본들 한번 떠난 생명이 되살아 올 수 있으랴.
그러고 보니 내가 인간의 교육을 담당하던 젊은 교사의 시절에 끄떡하면 “너, 말 안 들면 퇴학시켜!”라는 위협적인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함부로 남발하던 때의 일이 생각난다. 그때 학교의 갖은 억압에 견디지 못하고 자진 퇴학해 나갔던 나의 제자들은 지금 어디서 어떤 모양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까? 오늘, 얼른 보기에 싹수없어 보인다는 이유를 들어 잔인하게 나뭇가지들을 함부로 잘라내면서 떠오르는 아픈 기억들이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