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낄~낄~낄) 수필 한토막
동물의 세계에서는 배가 불러도 평화는 쉽게 오지 않는다
강허니
우리 일상생활 중에서, 헐벗고 굶주렸던 지난 시절에 비하면 이제 웬만큼 생존을 위한 기초적인 먹거리 문제는 충족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음식물의 질적 개선에는 크게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아직도 자연 생태계와 우리 인간들 간의 싸움에서는 ‘평화공존’ 이라는 대명제에 합의하지 못하고 티격태격 각자의 권리 주장에 몰두하고 있다.
요즘 한창 수확에 열을 올리고 있는 내 친구 소유의 ‘블루베리’ 농장에서도 그러한 먹이차지 싸움은 자주 목격되고 있다. 평소에 주변 사람들에게 넉넉한 인심 베풀기를 좋아하는 친구인데도 불구하고 염치없이 마구잡이로 침범해 오는 각종의 새들(까치, 어치, 직박구리, 물까치 중의 어느 놈)과 치열하게 쫓고 쫓기는 신경전을 벌리고 있는 모양새를 관전하다 보면 ‘에~구, 사람이나 새들이나 집착과 욕심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라는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전에 사람과 새들 간에 이러한 이기적 충돌을 겪기 전만 하더라도 새는 곧잘 날개를 갖고 있는 우리의 이상적인 자유의 화신이거나 타고난 음악적 재능으로 잠 못 이루는 시인의 감성을 애절하게 녹여 주는 천사이거나 하늘의 신과 지상의 생명체 간의 교량적 매개를 담당하는 주술적 신비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인간이 애써 가꾸어 놓은 각 종 농작물에 함부로 곁눈질을 하고 무단 절도 행각을 서슴지 않게 되면서부터는 서로의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어 인간의 눈에 보이기에 새는 이제 한낱 좁쌀만도 못한 작고 못생긴 얼굴에 법정 허용치를 넘는 소음 발생의 잡범이거나 악독하기 그지없는 농산물의 절도행각으로 말미암아 마을 어귀마다에 촘촘히 설치되어 있는 CCTV에 찍혀 인근의 파출소에 신고 되는 바람에 결국에는 멀리 유배의 형량을 받아 쫓겨 가거나 아니면 독배를 마시고 죽어 갈 처지의 흉악 범인으로까지 몰리게 되는 가련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어쩌다가 평화로운 새들과 우리 인간의 상생적인 관계는 이토록 무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는가?
이처럼 인간과 또 다른 생물종간에 벌어지고 있는 다툼을 종식시킬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은 없을까? 원론적으로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양보하는 일이 최선의 방책이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막상 인간과 주변 생물들 간에는 최초의 지구 탄생 이후 그토록 오랫동안 같은 생활권에서 공존해 오면서도 아직도 뚜렷한 소통의 방식을 찾지 못하다보니 상호 협상의 최종 합의문을 도출해 낼 수 없다는 점이다.
사전에 정중하게 농장 주인의 방문 허락을 받지 않고 무단으로 침입하여 선량한 나의 친구를 격앙케 한 놈들의 행태만으로도 구경꾼인 내가 보기에 얄밉기가 짝이 없다. 엄연히 많은 돈을 들여 일반적인 새 대가리 크기보다 좁은 새 망을 설치하고 엄격하게 출입을 제한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깨스통을 앞에 세우고 무작정 돌진해오는 대책 없는 할아버지들처럼 선공 특공대를 미리 파견하여 몸을 비집고 들어 갈만한 틈새를 찾아내어 침투에 성공한 다음 미리 약속된 그들만의 시끄러운 언어 소통 방식으로 인간들을 조롱하듯이 저희 한 가족 떼거지들을 불러들이고 있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주인의 심정과 분노의 정도를 능히 헤아려 볼 수 있지 않으랴.
더욱이나 낱알 열매를 통째로 삼켜 배를 채우는 것도 아니고 크고 달고 맛이 있어 상품성이 높아 보이는 것만 골라 그 일부만 쪼아대는 작태는 한마디로 당장 때려 쥑이고 싶도록 분통이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대목에서 나처럼 양쪽 편의 싸움을 말려야 하는 입장에서는 상호간의 신사적인 협상을 주선해야 할 터인데 나 또한 그들과의 언어 소통에 문제가 있어 그마저도 수월찮은 일이다. 그렇다면 모든 동물들의 상호간 언어 소통에 능통하신 하느님께 그 중재를 부탁해 보면 어떨까?
- 하느님 : 이제부터 내가 태초에 너희에게 특별히 하사한 지상의 모든 먹이는 어느 한 개체군만이 독식을 할 것이 아니라, 모든 생태계 구성원들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만큼의 최소한의 에너지원과 몸 구성상의 필수 영양소 섭취량에 한정하여 서로 공평하게 나누어 먹을 수 있도록 해라. 단, 인간의 농작물 재배에 소요된 투자비용을 상회하는 이익을 보장하고, 땅에 떨어져 있거나 못생긴 나머지 허접한 열매는 너희 동물들이 배터지도록 몽땅 먹어치워도 좋고…, 그리고 먹고 남긴 것은 온갖 곰팡이나 병충해들에게도 좀 나누어 주고….
(* 이윽고 하느님께서 중재안을 다 꺼내시기도 전에 당장 그들의 항변이 시끄럽게 들려온다.)
- 새 대표 : 에~게~게, 결국은 인간의 욕심은 다 채워주고 우리들은 거지처럼 살다 죽으란 말이죠? 그렇게는 못 해요, 안 해요!!!
- 인간 대표 : 그럼 하는 수 없지?!!! 내년부터는 오기로라도 농사일 다 포기해버릴 테니깐. 어디 너 죽고, 나 죽고 누가 이기나 보자.
- 하느님 : 쯧~쯧, 어쩜 너희들은 한 치 양보도 없는 한국의 여야 정치인들을 그토록 빼다 박았니? 그래. (낄~낄~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