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의 절규
팽목항의 절규
강허니
「제발 살려 줘!, 살려 줘!!, 살~려~줘!!!.」
그들의 아우성이 내 귓전에서 환청처럼 맴돌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좀 더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함께 기다리고, 함께 분노하고, 함께 슬퍼해 주어야 할 것 같았다. 즈이들의 육신마저 무거워 바다에 남겨두고 떠난 그들의 영혼을 만나기 위해 나는 아주 가벼운 차림새로 몇 번이고 버스를 옮겨 타면서 그들이 머물고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깝다는 팽목항에 겨우 이르렀다.
사고 첫날의 소식을 전해 듣고 TV 긴급뉴스에 주목하였다. 보도 화면 밑에는 "박대통령, ‘단 한명의 희생자도 없도록 하라’고 지시“하는 내용의 자막이 흐르고 있었다. 적어도 대통령은 현장의 위기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만반의 대책을 강구하여 승선객 전원을 무사히 구출 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일거라 믿었다. 반갑게도 얼마 후에는 ‘전원 구조’의 소식이 들려왔다. 그래서 ‘불행 중에 참으로 다행’이라 여겼다. 그런데 늦은 오후에 다시 확인해 본 바로는 ‘보도가 잘 못 되었고, 지금 구조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고 하였다. 나는 대형 선박의 구조 상 쉽게 침몰되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였다. 그래서 나는 별 걱정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귀가하여 염치없게도 깊은 숙면을 취했다.
나는 평소에도 일반적인 언론의 정직한 보도 관행을 별로 신뢰하지 못하는 편이어서 그날 밤 저녁 뉴스에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주변의 지인에게 핸드폰 문자 통신을 이용하여 가벼운 주말 인사를 띄웠다. ‘마음이 곧 청춘이니 즐겁고 유쾌한 기분으로 남은 인생 잘 살다가자’는 취지의 덕담이었다. 그랬더니 곧바로 답이 왔다. 한가하게 ‘청춘 타령’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뒤에 알고 보니 아직도 승선 인원 중 상당수가 구조되지 못하고 차가운 바다 속의 배안에 갇혀 있다는 우울한 소식이었다. 그때서야 나는 멋모르고 분별없는 언어를 함부로 사용하게 된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상황은 애초에 낙관적으로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나빠지고 있었다. 구조 인원은 첫날의 숫자에서 좀처럼 불어나지 않고 제자리걸음이 계속되었다. 참으로 국가적 재난에 직면하여 순발력 있게 대응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속수무책의 무능이 우리는 아직도 후진국에 머물고 있다는 자괴감을 갖게 하였다.
결국 사고 발생 후 보름의 시간이 지나고 한 달의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는데도 더 이상의 생존자는 나타나 주지 않았다. 국가와 국민은 참으로 황당하고 당혹스러움을 금할 수 없게 되었다.
어느 사망자의 유품에서 얻어진 스마트폰의 동영상이 유족의 양해로 공개되었다. 거기에는 사고 발생 당시의 선내의 상황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정말 가슴아프게도 처음에는 수학여행에 참가한 어린학생들이 ‘절대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는 선내 방송의 지시에 충실하게 따르면서 그들은 태연하게도 죽음이 가까워지는 것을 애써 외면하려는 듯한 장난스러운 모습들을 연출하고 있었다. ‘야, 배가 기울어지고 있다’ ‘신난다’ ‘물들어 오면 재밌겠다’ ‘타이타닉 되는 것 같아’ ‘나도, 나도 찍어줘’ ‘이거 뉴스에 뜨는 것 아냐?’
시간이 지나면서 좀 전의 농담 분위기에서 조금씩 현실적 상황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야, 장난이 아니야’ ‘선장은 뭐 하길레’ ‘야, 나 좀 살려줘’ ‘야, 나 진짜 죽는 것 아냐?’ ‘우린 죽기 싫다고.’ ‘제발 살 수만 있다면...’ ‘엄마 미안해, 아빠 미안해’ ‘나, 나쁜 짓 별로 안했는데...’ ‘마지막 할 말은 남기고 죽어야 할 것 같은데...’ ‘우리 죽기 싫어요, 죽기 싫어요.’ ‘아빠 나 죽기 싫어’ ‘엄마, 나 마지막이야’ ‘제발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엄마, 아빠 사랑해요’
그 와중에도 남을 챙기고 걱정을 한다. ‘내 구명복 너 먼저 입어’ ‘그럼 너는?’ ‘선생님은 괜찮을까?’ ‘갑판에 가 있는 얘들, 창문도 없어서 더 위험 할 텐데’ ‘(수학여행 다녀 올 오빠 기다리고 있을)내 동생 어떡하지?’ 그들이 남겨 놓고 간 동영상 장면을 시청하는 우리 모두는 소금 국물 같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팽목항의 파도는 차갑게 출렁거리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망연한 모습으로 먼 바다를 향해 저마다의 종교적 행위를 통해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었다. 부두의 난간에 열을 지어 노란 리본이 수없이 바람에 나불거리고 있었다. 살아 돌아 오라는 간절한 기다림의 열망이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저희들을 사랑한다는데,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데 아직도 살아 돌아오지 않고 추운 바다 속에서 남아 있는 실종자들을 향하여 그들의 부모 형제는 목놓아 부르고 있었다. “○○야, 이 나쁜 놈아, 거기서 뭐하고 있어. 빨리 돌아오지 않고.” “아가 빨리나와. 엄마가 널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그곳에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실신지경이 되도록 먼 바다를 향해 자식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고 있는 부모들의 한 맺힌 절규를 지켜보면서 겨우 찍어 낼 수도 없을 만큼의 눈시울을 적시는 것 말고는...
버스를 타고 되돌아오는 내내 ‘하느님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하는 깊은 상념에 빠져들었다. 가지고 간, 7일 동안의 뇌사를 경험했다는 신경외과 의사 이븐 알렉산더가 쓴「천국의 증거(PROOF of HEAVEN)」을 읽으면서 풀리지 않는 죽음에 대한 '신의 뜻'을 깊이, 깊이 탐구해 보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