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거리/내 생각, 내 마음

금강 길 홀로 걷기 기행문 8

허니강 2014. 4. 29. 12:37

걸음아, 걸음아 나와 함께 떠나자

(금강 길 홀로 걷기 기행문 8)

강헌희

- 제기랄, 허허벌판 사막에 가면 <신용카드>가 다 무슨 소용이랴 -

한참을 걸었더니 슬슬 배가 고파온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마땅히 배를 채우고 갈 만한 곳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기랄, 요즘 같은 세상에 집을 떠나 믿을 수 있는 것은 <주민 등록증>이 아니라 현금 대용 <신용카드>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삭막한 광야에서의 <신용카드>는 갈대밭에 똥 싸놓고 화장지 대용으로도 쓸모가 없는 그야말로 무용지물에 불과하였다. 내가 그토록 하느님 다음으로 신봉해 왔던 <신용카드>는 이번 여행에서 믿을 수 있는 내 신상의 완벽한 보호자로서의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였다. 도대체 물건 살만한 마트도 없고, 잠잘만한 모텔도 없고, 타고 갈만한 택시도 없는 곳에서의 ‘신용 보증 카드’는 별반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다.

현대인들은 흔히 <신용카드> 한 장이면 천국행 티켓이라도 거머쥘 수 있을 것처럼 맹신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내 졸렬한 생각으로는 천국에서 통용되는 카드는 <신용카드>가 아니라 <양심카드>여야 할 것이다. 아마도 그곳에서는 현세에서 통용되는 황금색 <신용카드>와 천국에서 쓰여 지는 붉은색 <양심카드>는 서로 맞교환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악마의 악의적인 해킹을 당해서가 아니고 원래 하느님이 인간을 지구상으로 내려 보낼 때는 소위 <양심통장>이라는 것을 각자의 심장 판막에 은밀하게 새겨 넣어 주었는데, 다시 죽어 되돌아 갈 때가 되면 천국의 문간에서 근무하는 천사가 그 잔고를 일일이 확인하여 양심이 많이 남아 있는 사람은 하느님이 계시는 궁전으로 보내고, 양심이 시커멓게 바닥나 있는 사람은 쇳물 끓이는 지옥의 용광로에 화부로 보낸다는 것이 내가 지어낸 전설 같은 이야기다. (ㅎㅎ 이러다가 사이비 교주로 지탄 받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느님 죄송합니다)

 

- 강변길에서 만난 어르신께서 귀중한 삶의 훈수를 들려 주셨다 -

마침 오늘 걷는 길에는 간간히 쉬어 갈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져 있어서 물 한잔씩으로 배를 채우며 쉬엄쉬엄 가다가 쉬고, 쉬다가 가고 하는데 마침 어느 곳에서 옛날 구식의 자전거를 끌고 운동 나오신 젊은 어르신(? 나이 77세) 한 분을 만나 한담을 나누게 되었다. 기억나는 말씀의 요지는 이러했다. ‘현업에서 은퇴를 하시고 한동안은 노인당 구석방에서 바둑, 장기나 두고 놀다보니 자꾸만 여기저기 병이 생기고, 젊었을 때 바람깨나 피우던 왕성한 정력도 떨어지고 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하시고는 그날부터 매일 아침, 저녁으로 자전거를 끌고 나와 운동을 지속적으로 했더니 이제는 뱃살도 현저하게 빠지고, 그 많던 지병도 없어지고 허리 근육이 강해지면서 정력도 되살아나 할머니와 잠자리를 다시 시작(이 대목에서 귀가 번쩍)하게 되었다’는 말씀과, ‘늙어가면서는 돈도 필요 없고 자식도 필요 없고 오직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면서 나에게도 있는 돈 마음대로 써보고, 바람도 피워보고(이 대목에서 또 한 번 감동) 멋지게 살다 가시라는 진심어린 삶의 충고를 남겨주셨다. (고마우신 아저씨 같으신 할아버지, 부디 오래 오래 사세요. 할머니하고의 잠자리도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하시고요)

 

자전거도로에 웬 새 발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생각해 보니 도로 포장 자재로 쓰인 시멘트가 아직 양생되기도 전에 어떤 이름 모를 새가 바삐 지나간 흔적인 것 같다. 그것도 먼 훗날이 되면 어떤 실력 없는 고생대 전공의 학자가 나타나 ‘수십만 년 전에 이곳을 다녀간 공룡 발자국이라고 우겨서 지자체에서는 ’얼씨구나!‘ 하고 울타리 둘러 쳐놓고는 입장료 받아먹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만일 그 자리에 술 취해서 지나간 사람의 발자국이라면 그때는 ’단군 할아버지가 낚시하러 왔다가 남겨 놓은 발자국‘이라고 하려나?

논산 읍내로 들어가는 길목 부근에서 둑길로 올라섰다. 대단위 은빛 비닐하우스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우리나라 농업도 이제는 대형화, 기업화되고 있음을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까치가 비닐하우스 지붕 위에서 뻔히 내려다보이는 먹이를 쪼아 먹지 못해서 안달을 부리고 있다. ‘야! 이 멍청한 놈들아, 담뱃불로 지지면 금방 뚫려!’하고 큰소리로 말해주려다가 주인이 들으면 몽둥이 들고 쫓아 올까봐 혼자서 웃고만 말았다.

 

가다가 길을 잃으면 자전거도로의 주행선을 나타내는 푸른색 선만 찾아가면 된다. 다시 강변에 내려섰더니 그곳에 외롭게 서있는 버드나무 가지에 웬 새들이 나무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나의 머릿속에서는 순식간에 장난기어린 기발한 상상력이 발동되었다. 황우석 박사님께 부탁해서 동물과 식물의 유전자를 합성하여 닭고기 열매, 쇠고기 열매, 돼지고기 열매, 상어 지느러미 열매 등등이 열리는 유전적 신품종 나무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주의 사항;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엉뚱한 소리 함부로 하고 다니면 왕따 되어 정신병원에 수용될 수도 있음)

 

끝내 눈 안에 들어오는 가게나 식당을 발견하지 못하여 점심을 건너뛰게 되어 가뜩이나 배가 고파 죽겠는데, 아침에 잠시 젖동냥 얻어 먹인 핸드폰이 금방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면서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젠장. 그래서 지금 나보고 어쩌라고?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