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길 홀로 걷기 기행문 6
걸음아, 걸음아 나와 함께 떠나자
(금강 길 홀로 걷기 기행문 6)
강헌희
- 강물은 이제 밤의 이불을 덮고 고요 속에 잠들어 가고 있다 -
강변길을 걷다가 가끔씩 양편 산 언덕배기를 올려다보면 최근에 지어진 그림 같은 전원주택들이 눈에 들어온다. 기획 부동산 업자들이 돈벌이를 목적으로 집단으로 조성해 놓고 임자를 찾고 있는 경우도 있고, 개인 사업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세파를 벗어나 휴식을 취할 목적으로 지어진 집도 있을 것이다.
나도 젊은 시절 한때에는 눈앞에 아름다운 산이나 강이 시야를 꽉 채워주는 독립된 전원주택을 지어놓고 늘 아름다운 생각만 하면서 아름답게 살다가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꿈을 꾸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 일상의 패턴에 너무 익숙해지다 보니 이제는 자연은 어쩌다가 한번 씩 찾아가 반갑게 안부를 묻는 친구와도 같은 사이로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은 역시 사람과 어울려 사람답게 살아갈 때 비로소 사람다운 맛을 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강은 이미 깊은 잠이 들었는지 사방에 고요한 정적이 흐르고 있다. 평생 동안 강을 바라보며 강과 함께 생존해 왔을 강 건너 독립 가구에서 비치는 외로운 전등 불빛만이 강물에 퐁당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아무리 걸어도 여전히 도시의 불빛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번 여행 중에는 결코 문명의 교통수단에 의존하지 않으리라는 내 발걸음과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도 없다.
내 오른쪽 어깨에 매달려 있는 가방의 무게가 내 몸의 피로도 만큼씩 서서히 무거워지고 있다. 최대한 간편하게 준비한다고 하면서도 이것저것 챙기다보니 가방의 뱃살이 좌우로 불거져 있다. 생면부지의 잠자리에서 불면을 견디기 위한 대비책으로 막상 보지도 않을 책을 세권씩이나 집어넣었던 것부터가 욕심이었다. 어쩌면 욕심을 버리는 일은 생명을 버리는 일보다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다음부터는 내 신체의 장기 일부를 교실 뒤편의 <학습 판> 게시물처럼 떼고 붙일 수만 있다면 이제 나이가 들어 이미 왕성한 생식기능이 마감된 황금 복 주머니속의 알사탕 두 개마저 떼어내 냉장고에 보관해 두고서 집을 떠나야겠다.
어쩌다가 길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불빛이 흘러나오는 곳이 있다. 그러나 집 주인이 나를 보고 야밤의 불한당으로 여겨 경찰에 신고할까 봐 차마 용기를 내어 잠자리를 청할 수도 없어 그냥 지나쳐 왔다. 마을회관을 갖춘 꽤 큰 마을을 통과하면서는 인근의 대형 비육우 축산 단지에서 분사하는 쇠똥 가스로 인한 질식사가 염려되어 또 그냥 지나쳐 버렸다. 이래저래 광활한 하늘 아래 내 한 몸 누일 곳이 없어 처량하구나! 하지만 어쩌랴. 오직 앞으로 가는 일만이 내가 이 세상에 살아남을 수 있는 거라면 죽기 전까지는 계속 걸을 수밖에.
나에게 평소에는 별로 애용할 일이 없어 보이던 도로변의 러브호텔마저 풀밭에서 약에 쓸 만한 개똥을 찾아내기 보다 더 어렵다. 오죽하면 아주 멀리에서 볼 때는 모텔 표시로 보이던 빨간색 네온사인이 가까이 가서보니 교회라는 사실을 알고서 실망과 원망과 배신감을 느꼈겠는가?
<백제보>를 간신이 통과하면서부터는 급격하게 체력의 고갈을 느낀다. 기진맥진 + 그로기상태 + 넉 다운 + 까무라치기 일보 전 → 그 모두의 표현을 다 합해도 지금의 상태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벌써 오늘 하루만 하더라도 거의 쉬지 않고 걸어 온 시간이 7시간이 지났다.
어쩔 수 없이 내 자존심을 내려놓고 지나가는 택시라도 얻어 타고 시내를 찾아 들어가야 할 모양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러나 돈만주면 지옥까지라도 데려다 주겠다고 하는 택시도 나타나지 않는다. 수시로 내 옆을 내달려가는 자가용 승용차를 보고 애원하는 눈빛으로 손을 들어보지만 막무가내다. 하긴 나라도 깊은 밤에 벙거지 모자에 마스크를 하고 강도들이 가장 선호하는 검은색 복장에 가방 하나 덜렁 어깨에 멘 채로 혼자서 밤길을 걷고 있는 수상한 사람이 손을 든다면 줄 행낭 놓듯이 도망치고 말았을 일이다.
하느님은 항상 우리가 더 이상은 삶의 고통을 견딜 수 없다고 포기하려는 순간 물 한모금의 희망을 던져 주신다. 내 두 다리가 도저히 더는 혹사당할 수 없다며 업무 거부 선언을 할쯤에 바로 눈앞에 구세주처럼 ‘관광호텔’이 나타나 준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본성이 원래 간사한지라 막상 호텔에 들어서니 불과 몇 시간 혼자서 잠자고 비싼 호텔 값 치르는 것이 좀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내까지의 거리를 물으니 20여분만 더 걸어가면 된다기에 한사코 더 이상의 노동력 제공을 거부하는 내 두 다리에게 조금만 더 참으면 찜질방에 데려가 실컷 목욕도 시켜주고 뜨거운 불가마에 들어가 하루의 피로를 말끔하게 씻어 주겠노라고 겨우 겨우 달래 가지고 이번에는 내 몸뚱아리를 시켜 두 다리를 억지로 끌고 드디어 부여 시내로 입성해 들어갔다.
찜질방을 찾아 들어가니 시간은 그날 하루를 꼴딱 넘기고 다음날 새벽 1:00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에고. 행여 우리 집 마나님이 알면 ‘당신이 지금, 아직도 이팔청춘의 나이인 줄 아느냐?’며 된통 나의 무모함을 질책해 올 일이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