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거리/내 생각, 내 마음

금강길 홀로 걷기 기행문 1

허니강 2014. 4. 28. 16:46

 

걸음아, 걸음아 나와 함께 떠나자

(금강 길 홀로 걷기 기행문 1)

강헌희

이제 나이가 들어 내 인생을 되돌아보니 매순간 할까 말까, 갈까 말까, 살까 말까, 줄까 말까, 먹을까 말까를 얼른 결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망설이다가 매번 옳은 판단과 선택의 기회를 놓쳐버린 일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부터서라도 일단 하고보고, 가고보고, 사고보고, 주고보고, 먹고보자는 심산이 들어 근래에 내가 고민해 왔던 떠날까 말까 중에서 일단 떠나고 보자는 쪽에 내 마음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럼, 어디로? ; 아무데나. 언제? ; 지금. 누구랑? ; 나 혼자서. 어떻게? ; 걸어서.

 

- 유성 <반석마을> 자전거 전용 도로에서 출발하다 -

일반적으로는 폭이 좁은 보행로나 자전거 도로는 넓은 차도의 양편에 옹색하게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은 인간 친화적인 신도시 설계의 배려 차원에서 미친 듯이 북쪽 방향으로 달려가는 차량과 정신없이 남쪽 방향으로 달려오는 차량의 살인적 충돌 가능성을 중앙 분리 노선에 설치된 자전거 도로가 평화적으로 양팔을 벌려 말리고 있는 형세로 되어있다.

 

나는 인류 이동 수단의 발달사 측면에서 보더라도 단연 자전거의 바퀴 문명보다는 인간의 원시적 직립 보행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다소 해괴한 논리를 내세워 감히 법률적 보행자 이용 제한 규정을 무시하면서라도 굳이 자전거 전용 중앙 노선을 선택하여 발걸음을 옮겨보기로 했다.

 

예상과는 다르게 <가운데 길>이라는 심리적 안정감은 오히려 길 양편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무섭게 질주하는 자동차의 위압적 소음이 나를 불안감의 코너로 몰아넣고 있다. 왜 인간은 자꾸만 시간의 속도를 높여 가려고만 하는지? 나는 문뜩 초등학교 운동회 때마다 노트 한 권이나 연필 한 자루를 탐내어 기를 쓰고 100m 달리기 경주에서 남들보다 앞서려고 했던 천진난만한 행동이 떠올라 입가에 멋쩍은 웃음을 흘려 내렸다.

 

만약에 우리 인생에서도 달음박질의 순서대로 삶에서 출발하여 죽음에 이르게 된다면 과연 사람들은 저토록 빨리만 달려가려고 안달을 할 것인가? 그래서 나는 오직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자전거보다도 훨씬 느린 속도로 주변의 자연을 여유 있게 둘러보며 한걸음 한걸음을 천천히 아주 느릿느릿하게 걸어보려 한다. 내 영혼과 이러저러한 화두를 꺼내어 알콩달콩 다정한 대화를 나누면서.

 

- 일단 출발의 기분은 상큼하다 -

출발지 <반석마을>에서 <세종>에 이르는 자전거 길은 ‘시나브로 녹색 여행길’이라는 이름을 지어 줄만하다. 특히 멀리에서 보기에 엄마 치맛자락처럼 보이는 산 아래 양지바른 쪽에서 평화롭게 볕을 쬐고 있는 마을의 모습이 그토록 살갑게 내 마음 안으로 다가온다.

벌써 봄의 기운이 밀려오는 들녘에서는 새 생명의 잉태를 준비하기 위해 밭두렁을 태우는 매콤한 냄새가 풍겨오고 있다. 잠시 지상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1년생 식물들의 시신들이 불태워져 다시 고향의 하늘로 하얀 연기가 되어 피어오르고 있는 모습이 아련하다.

 

길바닥에 표시된 자전거 주행 권장 속도는 시속 30km다. 2차선 일반도로에서 자동차 제한 속도의 반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내 발걸음의 속도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자.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소모되는 생체 에너지는 내 뱃살에 잔뜩 저장되어 있는 품질 좋은 고급 지방질을 꺼내어 연료로 사용하면 된다.

 

급속도로 도시 반경을 넓혀 나가고 있는 <세종>의 치솟는 땅값은 자전거 전용도로 위를 덮고 있는 ‘태양광 발전시설’을 보고도 금방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공간의 겸용 아이디어가 참신해 보이면서도 어쩐지 비좁은 국토 면적의 옹색함를 드러내는 것 같아 좀 딱해 보이기도 하는 광경이다.

 

어느새 씩씩하게 앞으로 내딛는 내 발걸음과 제멋대로 굴러가는 내 뇌리의 작동 간에는 다정한 친구가 되어있다. 인내심을 갖고 남의 이야기 오래 들어 주기를 따분해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저희들끼리 잘해 보도록 내버려두면 된다. 그래서 혼자 떠나는 여행의 출발은 기분이 한결 편안하고 상큼하다. 이대로라면 따로 몸 푸는 준비 운동 없이도 거뜬히 한나절쯤은 쉬지 않고 걸을 만하겠다. 이번 여행에서는 기필코 달성해야 할 목표도 내려놓고 그저 저녁밥 먹고 운동 삼아 동네 한 바퀴 휘~ 돌아오는 기분으로 가볍게 다녀오리라. 꼭. (다음에 계속)

 

# 이 글은 전체 10편의 글과 후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읽고 격려의 글 주시기 바랍니다. 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