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낚는 법
행복을 낚는 법
강헌희 (예로니모)
행복과 불행은 나의 양손에 들린 과일과 같다. 어느 쪽을 먹을 것인가 하는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니, 말하자면 내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고나 할까, 나는 가끔 “행복과 불행 중 어느 쪽을 더 많이 선택하여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옛 제자 심군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는 어렸을 적에 얇은 뇌성 소아마비의 후유증으로 지체가 부자유스러울 뿐만 아니라 안면 근육이 마비되어 말조차 자유롭게 할 수가 없었다. 가정 형편 또한 넉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일반 지체 장애자들과는 사뭇 달랐다. 성격이 까다롭거나 친구들의 접근을 꺼리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는 무슨 일이든지 적극적으로 앞장을 서곤 하였다.
그는 신체상의 장애쯤은 넉넉하게 극복해 낼 줄 알았다.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뛰놀고 장난치고 우스운 이야기를 나누는 것쯤은 예사롭게 하는 등 기특한 모습을 보여 주곤 하였다. 학급 오락 시간에는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더 이상 찡그릴 수도 없는 얼굴 표정과 서투른 발성을 숨기지도 않은 채 유행가를 불러 대기도 하고, 교내 체육대회라도 열리면 자진해서 핸드볼 선수로 나서서 불편한 몸짓으로나마 사력을 다해 경기장 양편을 부지런히 뛰어다니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시원스럽게 트인 행동은 주변 친구들을 마음 편하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감싸주기까지 하는 것이어서 그는 친구들에게 항상 인기가 있었다.
이제는 졸업하여 의젓한 대학생이 된 그는, 여전히 세상살이가 즐겁고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활기 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간간이 들려온다. 때로는 엉뚱하게도, 의과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에게 공포의 시간이 되고 있는 사체 해부 시간에 대리 출석까지 하여 그들의 우정에 보답하고 있다고 하여 우리를 더욱 흐뭇하게 해주곤 한다.
나는 그러한 그에게서 그의 웃음 뒤에 숨어 있을 법한 고독감과 절망감을 생각하면서 가슴이 담담해지는 걸 느끼곤 했다. 또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행복이란 결코 피안의 세계에서만 찾아지는 환상이 아닌 고통의 현실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결코 행복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변에 널려 있는 행복을 끌어 모을 줄 아는 지혜가 부족하거나 혹은 나는 불행하다는 심적 불만이 우리 마음에 가득 채워져 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기뻐하고 사랑하고 나눌 줄 아는 가슴의 공간을 비워 두고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나는 비로소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재물과 권력 중에 어느 것 한 가지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교사라는 직업을 통해서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작고 아름다운 행복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꽤나 애를 태우고 말썽을 부리던 제자들이 어느 날 갑작스럽게 내 소재를 수소문하여 전화를 걸어오거나, 새해 벽두에 반가운 옛 제자들의 연하장을 받아들 때라든지, 도무지 소갈머리 없이 제멋대로만 행동하려 하던 녀석들이 어느새 다 컸다고 여자 친구와 희희낙락거리며 길을 가다가, 문득 옛날의 선생님을 발견하고는 계면쩍어 하는 모습을 대하게 되면서도,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무심코 담배를 피워 물고 있는 청년에게 담뱃불을 청하자 이내 알아보고는 “아이구, 선생님!”하며 당혹스러우면서도 반가워하는 모습을 볼 때, 한글도 모르는 학생에게 영어 단어 암기를 과제로 내주고는 확인하려하자 매 맞지 않기 위해 흉내라도 내보려 하는 노력이 기특하여 잔뜩 추켜 주었더니 그 뒤로는 아예 영어 책만 붙들고 있던 제자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나는 행복감을 느끼곤 한다. 학교를 졸업해 내보낸 지 몇 해가 지나서 떼로 몰려 집으로 찾아온 녀석들이, 자기들이 사온 술병마저 바닥내고 선생님한테 고스톱을 가르쳐 준다고 나를 끌어들이고서는 저희들 용돈까지 챙겨 가면서 희희덕거리던 제자들을 회상하면서도 나는 마냥 즐겁고 흐뭇한 마음에 행복해지는 것이다.
나는 교사로서 생활하면서 수없이 많은 행복의 씨앗들을 곳곳에 뿌려 두었다는 풍족한 마음을 누리고 살 수 있어 행복하다. 그 씨앗들은, 어느 날 갑자기 발밑에서 움터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꽃을 피우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기도 하리라.
나무는 결코 곁에 서 있는 사람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 사람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 주변에는 행복의 조건들이 무수히 널려 있다. 다만 우리가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에 나의 눈을 뜰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전북 부안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