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강 2009. 6. 3. 10:28

최근 나의 글 모음 (공직졸업 후 3년동안의 작품임- 18건으로두번 읽고 마음공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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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며 한 해를....

 

산과 들녘에 상서로운 첫 눈이 어느해보다 일찍 내려 소북히 쌓이고 연일 매서운 추위가 몰고와 몸과 마음을 얼어붙게 한다.

잠들은 저 들녘 대지에 숨을 불어넣어 생명을 키운 녹색바람이 멈추고 어디선가 삭풍이 불어오며 한해가 저무는 길목에 서 있다.

가을걷이가 끝난 벌판은 무릎아래까지 서서히 내려않는다. 바람불고, 눈 내리고,

또 바람이 불면 논과 밭은 길게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생명을 품는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생의 변주인가.

가는 세월을 원망하랴 순리인 것을, 우주 만유, 천지 만상이 돌아가는 대로 따라 가고, 이 세상 모든 것은 허공에서 왔다가 허공으로 돌고 돌아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을 느끼며 깨닫게 하고 있음이다.(無始無終) 

가는 해와 오는 해가 다를 게 없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때쯤이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들뜬 마음으로 야단법석이다.  인생이란 가둠과 풂, 버림과 모음, 떠나옴과 돌아옴의 반복이라며 지나간 일들은 반드시 메아리가 되돌아온다고 한다.

그래서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을 가둘 줄도 알고  풀 줄도 알아야 한다. 버릴 줄도 알아야 하고 모을 줄도 알아야 한다. 떠날 줄도 알아야 하고 되돌아올 줄도 알아야 한다.

어느 하나의 것에 집착하여 변할 줄 모르면 향상이란 없다고 한다.

그러한 삶은 순리가 아니다. 역사도 개인사와 마찬가지다.
처절하게 자신과 싸우는 입산 출가한 수행자가 아니더라도 이 세상 모든 보통사람들은 어느 해와 다름없이 올해에도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며,

자기를 속이지 않고 (不欺自心) 주어진 삶을 현실에 적응하며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고, 욕심과 집착 줄이고 편한 마음으로(不捨慾-끝없는 욕심) 안락한 생활을 하면서 한해를 정리하고 갈무리하리라 생각한다.

사람은 날마다 혹은 순간순간 자기와  여러 가지 약속을 한다.

그러나 자기와의 약속을 모두 지키며 사는 사람은 드물다.
서릿발같은 결심을 했다가도 슬그머니 물러서 버릴 때가 많다.

그러고 보면 부도란 사업하는 사람만 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도 마음의 부도를 내며 살고 있다. 마음의 부도는 알게 모르게 자기 질서를 허물어뜨리고 마침내 부실한 사람이 되게 하고 만다. 자기와의 선한 약속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다른 거창한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을 더욱 맑고 향기롭게 하는 일일 것이다.

사람에 따라 자기 자신에게 한 약속의 무게와 크기는 다를 수밖에 없지만 자기와의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나태와 타성으로부터 자기라는 질서를 흩뜨리지 않고 마침내는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처럼 오롯이 자기 자신의 生을 더욱 빛나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올해에도 한해를 보내면서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되돌아보고 자문자답을 화두(話頭) 삼아 본래의 참다운 '나'를 찾아보는 명상의 시간을 가져봄도 의미 있는 삶이라 생각한다.

 현재의 나를 들여다보고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깊이 사색해보는 것도 복락(福樂)을 구하는 삶일 것이다. 내 어둔 마음을 등불처럼 환하게 밝게 해주기 때문이다.
 올해의 최대의 국민적 관심과 화두는 아파트값 폭등과 쌀 수입 개방을 앞두고 관세화 유예 협상비준 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전국 곳곳에서 농부들은 "수입쌀이 밥상에 오르면 쌀값 폭락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고" 아우성이며 울분을 터뜨리고 있다.

풍년이 지겨워 쌀이 넘쳐난다고 야단이고, 아침밥을 먹자고, 쌀을 사주자고 법석이다. 우리에게 쌀은 경외의 대상이었고 정녕 생명이었다.

불과 수년 전 만해도 보릿고개가 있었고 밥상과 도시락에 쌀 한 톨 없는 새까만 꽁보리밥을 기억하고 있는가.
밀물처럼 밀려드는 국제사회에 동조하고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현실을 외면할 수만은 없으며 의연하게 대처하고 농촌을 성장시키고 농민들에게도

살아갈 길을 모색하여야겠다.

농심들이 받은 상처는 너무 크다. 농촌도 자생력을 가지고 고품질과 적정 생산으로

농업경쟁력을 향상시키고 농업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쌀값 폭락을 막는 지혜와 힘을 모아야한다.

이제 해가 갈수록 쌀소비가 줄고 영양식만 줄기고 있으니 쌀농사 대신 소득있는  대체작물을 개발, 육성하여 소득향상에 기여하고 어려움을 타개하자.

선조가 농민이 아닌 사람이 몇이나 있는가. 수 천년 동안 이 땅의 모든 것을 지배했던 쌀의 영화는 진정 끝나는가. 아우성에 잠못드는 저 들판은 누가 잠재울 것인가. 우리 모두 인간생명체인 논밭을 사랑하고 마음에 담긴 농촌에 희망을 갖게 하자.  

                ( 본인의 글임. 2005.12.15자 11면 새전북신문에 실렸음 )


                        해질녘 강가에서의 추억  

   
가을이 벌판을 가득 메우고 있다. 가을걷이가 분주하다.
말 그대로 만장(滿場)이다. 여름 내내 비가 잦아 풍수해가 일어 農心을 울렸지만 올해에도 풍작이다. 벌판의 주인공은 뭐니뭐니해도 누렇게 익은 벼들이다.

벼를 바라보면 깨닫는 것이 있다.
벼들은 귀가 밝다. 농부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라니까,
벼들은 상생(相生)을 안다. 큰바람이 불어와도 서로의 몸을 의지하며 넘어지지 않으니까. 벼들은 하심(下心)할 줄을 안다.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니까. 이만하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바람에 시간이 깃드니 단풍 내음이 난다. 몸이 먼저 계절을 아는 시기다.

온 산야에는 오색 단풍이 물들어가고 낙엽이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는 풍광은 황홀하다.
가을 벌판을 달리면서 바람에 참새처럼 날리는 낙엽이 저토록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일까. 낙엽은 그냥 떨어져 뒹구는 이파리가 아니다.

새싹이 돋을 때까지 겨우내 언 땅의 이부자리가 되어 주었다가 잎이 자라는 동안에는 스스로 썩어 거름이 된다.
즉 낙엽보살(落葉菩薩)이다. 하늘이 더욱 푸르고 높아만 보이는 가을의 넷째 주 토요휴무일을 맞아 변함없는 우정을 지속하고 있는 敎友산악회원 41명은 가을 풍광을 맛보고 낙엽따라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산 속의 간절한 이야기를 들으며 건강을

다지기 위해 천하의 명산 설악산 대청봉(大靑峰)으로 달린다.


산은 입을 다문자에게만 이야기를 해준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 지루함을 덜기 위해 원로 교육자이신 고문님의 삶의 지혜를 나누는 법문 시간이 있었고,

 法問중에는 "주전자(주인의식. 전문인. 자신감)"라는 삶의 지표를 마음속으로 새기며 살도록 주문하신다. 회원누구나 덕담과 웃음을 전하는 기회를 갖는다.

산을 좋아하고 나와 오랫동안 친교가 두텁고 오늘 처음 동참한 전주시내 모 초등학교 단순 근로직에 근무하고 있는 김00씨의 기구하고 파란만장한 파노라마 같은 눈물겨운 사연의 인생 역전기를 전하니 회원 모두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우렁찬 박수를 보낸다.
"주인공은 어떠한 역경에 처하더라도 평생을 밝은 미소와 따뜻함과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묵묵히 자신의 일에 충실하면서 이를 극복하며 삶을 이겨왔다고 한다.

 '3일을 굶어도 비겁하게 살지 말자'라는 인생 좌우명을 가지고 살아왔단다.
지리산자락 인월 땅에 태어나 5살 때 6.25상잔으로 경찰관이셨던 아버지를 여의고

조실부모하여 초등학교도 중도에 포기하고 힘들게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13살 때 양조장에 들어가 10여 년간을 잔일을 하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오직 사랑과 봉사정신으로 불우한 이웃을 도우며 푸른 꿈을 키워 왔다고 한다.
당시에는 먹고사는 것이 워낙 힘들고 보릿고개가 있어 쌀 한 톨 없이 지내는 민초들이 술 찌꺼기를 얻으려 줄을 섰다고 한다.
주인공은 술밥을 준비하느라 쌀을 씻으면서 약간의 쌀알을 하수도 구멍으로 흘러보내면 주민들이 주어다가 자녀들에게 쌀밥을 보시하였다고 한다.

주민들은 밥상에 마주앉은 자녀들에게 주인공의 은공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였다고 한다. 당시 쌀밥을 먹은 자녀들은 성장하여 현재는 서울에서 기반잡고 잘 살고 있는데, 주인공을 잊지 않고 자주 불러주고 찾아주면서 보은하고 있다고 한다.
역시나 베풀면 돌아오고 주면 받게 되는 것이 진리다.

 26세 때 초등학교 은사님의 소개로 공직생활을 시작하여 30여 년간을 이곳 저곳 학교에 근무하면서 새 학교 가꾸기에 앞장서고, 아이들의 뒷바라지에 최선의 노력을 하였다고 한다. 살아오면서 갖은 고생을 다하면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선행으로 자녀들 잘 키웠고, 작은아들은 서울대를 나와 관세고시에 합격하고 며느리는 아나운서란다.

시내 모 고교에 근무시 학교에서 지급하는 약간의 수당을 10여 년간을 모아 익명으로 보훈처에 천만원의 거금을 쾌적하고, 중도에 자퇴한 모교에서 명예졸업장을 받은 보답으로 교수매체인 수대의 컴퓨터를 기증하여 산골 어린 학생들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왔다.

현재도 틈만 나면 만원짜리 지폐 한 장 쥐고 소주 큰병과 돼지비지 몇근 사들고 노인정을 방문하여 위로하면 친아들보다도 더욱 반가워한다고 한다.

각박한 세상에 나 혼자만 배부르고 잘살면 그만이라는 풍조에 아무나 베풀지 못한다.
주인공은 대통령 표창을 비롯하여 여러 기관에서 받은 상이 즐비하며 학부형들이 준 감사패도 여러개다."
이야기를 듣고서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慈悲)을 일으킬 지이다) 이란 금강경의 구절이 홀연히 귀가 틘다.

이런 분이 바로 보살이라는 생각이 든다. 추울 때 옷이 되어주고 더 잘 되도록 자신을 거름처럼 희생하는 어머니 같고 아내 같은 존재가 보살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첫날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인공호수인 소양댐 해질녘 강가에서 병풍처럼 둘러싸인 자연경관을 벗삼아 쾌속정 유람선으로 30여분동안 관람을 하고, 제4땅굴인 을지전망대를 살펴보고 늦은시간에 숙소를 향한다.

이튿날 새벽에 오색약수에서 산에 오른다.
발걸음을 옮기며 자연의 소리없는 대화를 나눈다.

무수한 사람들이 다녀간 산길은 때 이른 첫눈이 내려 녹아 질퍽거리며 오를수록 눈이 쌓여 미끄럽고 위험하다. 대청봉 정상에 올라 저 아래 세상을 내려다본다.

검푸른 동해 바닷물이 넘실대며 금강산 단풍도 가까이 보인다. 어느새 세상 진(塵)이 다 씻기고 맑은 대 자연과 혼연일체

가 된 자신을 발견한다. 정상의 맑은 공기, 시원한 바람 싱그러운 자연의 모습... 그래서 또 산을 찾는다. 역시 설악산은 '산 중 제일미인'이라 말한다. 지리산은 포근한 어머니 품을 가졌다면 설악산은 날씬한 도시 멋장이 여인의 인상이다.

가파른 절벽들과 하늘을 꿴 날카로운 침봉들, 수만 년 물이 굽이치며 흘러 갖가지 기묘한 곡면으로 빚어낸 암반 등 명소들은 모두 바위로다.
8시간의 긴 산행 길 지루함이 있지만 정말로 황홀하다.

                                                           (2005.  11.  2  문우회보 )

 

                     천혜의 섬 탐라도를 찾다


태양이 이글거리며 복더위가 그칠 줄 모르는 짜증스런 8월초 염천 날,
생활에 쫓기고 힘들고 지치게 하는 고난의 자잣거리를 잠시동안이라도 잊고, 육신의 고달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모처럼 여름휴가를 얻어 피서처로 한라섬을 찾아 비행기에 올랐다. 

그간 태고의 섬 제주도 땅은 여러번 찾았지만 이렇게 더운 피서철에 관광은 처음이다. 평생을 마음과 정을 나누며 아름답게 살고 있는 30여 년 전 고창 땅에서 만난 도솔회 모임 부부 일곱 가족은 부픈 기대 속에 설레는 마음은 나이에 상관없이 그저 즐겁기만 하다. 

 

검푸른 바다를 단숨에 건너 신비의 섬, 제주도 땅을 밟으니 해외에 온듯한 착각에 빠져 약간의 흥분이 되고 날씨는 육지보다 더욱 후덥지만 그래도 태평양 먼바다에서 실려오는 바람기가 일어 살갗에 와 닿는 더위는 견딜만 하였다.

일행은 미리 예약된 교직원공제회에서 운영하는 라마다(RAMADA) 호텔에 여장을 풀고  인근 횟집으로 옮겨 싱싱한 

돔과 우럭횟감 안주에 출렁이는 파도소리와 함께 장단 맞추어 소주 파티를 하면서 여흥을 즐기고 그간의 쌓인 피로를 확 풀었다.

소주 파티를 마치고 기나긴 여름 석양빛이 노을지는 창파에 일렁이는 방파제 둑길을 1km이상 걸으며 망망대해로 펼쳐진 맑은 바닷물,

 깨끗한 모래알을 감상하며 사색도 하고 아름다운 추억도 만들었다.

역시 제주도는 산과 돌, 바다가 어우러진 독특한 천혜의 자연경관과 풍광을 자랑하는 무공해 청정지역이다.

"국제자유도시"로 지정되어 국제관광, 레저, 휴양지로 큰 발돋움을 하고 천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축복받은 섬이다. 투숙한 호텔은 최근에 지어진 제주도에서 최 상급이라지만 객실안에 보관중인 식수도 터무니없이 값이 비싸 민초들이 이용하기에는 무리라 생각되어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이튿날 친절한 관광버스 기사가 안내하는대로 관광 길에 나섰다.
첫번째 코스는 제주도의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등장한 몽골인 서커스장, 즉 조랑말타운으로 안내되었다. 서커스는 몽골 타리인 투스레 남녀 기마 단원들이 말을 타고 묘기를 펼치는 일종의 승마 서커스장으로 관광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었다.

몽고의 드넓은 초원에서 태어나면서부터 말과 함께 삶을 영위하고 있는 징기스칸의 후예 몽골인은 단련된

고난도의 화려한 기마술로 다양한 마상(馬上) 마예(馬藝)의 재주로 생동감 넘치는 진귀한 마상쇼와, 더불어 몽골전통의 음악과 춤사위 등 각종 기예 묘기를 보고 느낄 수 있어 무한한 감동을 받고 많은 박수를 보냈다.

두번째 코스인 소인국 미니 월드는 한라산이 코앞에 보이는 1만5천여 평의 부지에 불국사, 자금성, 만리장성, 개선문, 최후의 만찬,

에펠탑, 쥬리기파크, 시드니타워, 자유의 여신상, 버킹컴궁, 타지마할, 앙코르와트, 그리피스천문대, 나이아가라폭포, 벨렘탑, 볼쇼이극장 등 30여 개 나라 100여점의

세계 유명 건축물 미니어처 미니미니랜드로 세계적인 전문가가 수년간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작품들이다.

재질과 크기만 축소되어 다를 뿐, 실물과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져 아이들에게 세계문화유산을 체험하는 흥미진진한 학습장소의 공간으로 각광을 받고 마치 소인국에 온 걸리버처럼 건물과 인간 세계를 한 눈에 굽어 볼 수 있어 훌륭한 관광자원이었다.

이곳은 미니어처 테마파크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조경정원, 다양한 이벤트, 부대시설등 볼거리, 먹거리가 풍성하게 마련되어 가족과 함께, 연인과 함께 찾으면 더욱 행복하고 즐거운 복합공간이었다.

서귀포 근처에 있는 "주상젤리"라는 해변가 휴양림은 산책길이 잘 가꾸어져 있고, 멀리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가 바라보이는 바다전망이 아름다운 50-60m이상 되는 가파른 절벽으로 세차게 몰아치는 파도의 하얀 포말은 장관을 이루고, 언덕위에 서있는 나그네까지 갯내음이 나는 염기를 적시며 진동치고 있다.

 마라도 유람선은 파도가 심해 출항하지 못하여 일정을 취소하고 애월리 콘도 숙소에 짐을 풀고 근처 은빛모래 해수욕장내 식당에서 검정삼겹살로 포식하고, 일렁이는 짙푸른 바다의 파도를 벗삼아 석양에 물들이는 해변가 산책길을 1시간정도 걸으며 사색에 잠겼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선악이 개오사(善惡 皆吾師)라, 즉 "선과 악이 모두 나의 스승이다"라는 고사를 생각해 보고 성욕, 식욕, 집단욕, 공격, 도피 다섯 가지 욕구가 대뇌심리학의 오욕이라 했는데 현대인은 소유욕과 명예욕, 과시욕에 불타는 것이 보통이다.

짙푸른 바닷물에 끝없는 욕심(無廉之慾) 과 번고(煩苦)를 다 털어 버리고 재충전하여 삶에 활력을 되찾아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나의 갈길을 가리라. 돌의 섬, 신화의 섬, 역사의 섬, 예술의 섬, 체험과 레저의 섬으로 날씨도 맑아서 이번 제주도 여정은 새로운 명소를 관람하고 알찼다는 만족감을 안고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2005. 9.  16  문예연구지) 

                                                          

           남산 골 노송이 우거진 배움의 터전

 

   우리 한민족은 흰옷을 입고 흰색을 숭상하며 백설같이 맑고 고운 심성을 갖고 오순도순 정을 주고받으며 온순하게 살아온 백의민족이다.

어릴 적 푸른 잔디밭으로 조성된 토끼산에 올라가 중천에 떠있는 달그림자를 밟으며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 반짝이는 은하수와 하얀 달 속에서 토끼가 신나게 방아찧는

모습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초등학교시절에 원족(遠足)은 토끼산으로 달려가 멀리 망망대해 황해의 파도가 일렁이는 고군산열도를 바라보며 보물찾기가 단골 메뉴였었다.

 나의 삶터이고 동심의 푸른 꿈을 안겨준 유난히 달이 밝은 동네인 月村 땅,

아름드리 노송(老松)이 우거진 소나무 숲 동산의 솔바람이 솔솔 불어대는 남산골 자락에 자리잡은 모교가 모진 세월을 안고 변함없이 의연하게 자리잡고 빛내며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어 마냥 대견스럽기만 하다.

모교의 길목에는 황금빛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 지평선에 단야(丹若) 아가씨의 혼이 서린 우리나라 최대 최고 수리유적지인 벽골제가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자리하고 있으며, 지방민속문화자료로 지정 받은 立石줄다리기가 각광을 받고 있어 지평선축제기간에는 전국에서 관광객이 구름처럼 밀려들고, 체험현장 학습장으로도 많은 학생들이 참관하고 있다. 금만들 곡창 호남평야의 중심지로써 벼 고을에 풍요와 농경문화 예술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해가 어느새 강산이 다섯 번이 바뀌었는데 벌써 개교 80주년을 맞이한다니 감개무량하다. 세월은 가고 있는 것인가. 오고있는 것인가. 간다고 하면 아쉬움이 남고 온다고 하면 가슴 설레고 희망이 보인다.

토끼산에서 가깝게 바라보이는 금산사 모악산 자락에 흐르는 청녹수((靑綠水)에게 물어보고 남산골 저 소나무 그늘에 앉아 노래부르는 매미에게 물어보았더니만, 세월은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아니라며, 오늘 여기 이렇게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음이라고 한다.

그간 수많은 동량을 배출한 모교는 내가 재학시절에는 1500여명의 학생이 마음껏 꿈을 펼치는 금만경 관내의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명문우수학교로 자타가 부러움을 사는 둥지였으나,

 현재는 이농현상과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로 날로 학생수가 감소하여 영세학교로 전락, 학교가 존폐의 위기에 이르게 되었었을 실감하고 있었다.

 

이즈음에 혜성(彗星)같이 나타난 학식과 덕망을 고루 갖춘 역량있는 尹錫禮 교장님이 부임한 이래 교장선생님을 구심점으로 전 교직원이 합심하여 학생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분투노력하며 새롭게 변모 발전시키는 모교의 소식을 멀리서나마 접할 때 흐뭇한 마음 가누길 없음이다.

동문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고 뜻과 힘을 모아 지역주민과 학부모를 설득한바, 도심지학교만을 선호하며 떠나갔던 학부모들이 이에 동참하여 돌아오는 내 고장 학교 보내기에 앞장서고 있으므로 학생수가 날로 증가하여 소규모 학교지만 이제 정상적인 아담한 생기가 솟는 푸른학교 바른학교의 산실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여름방학 기간중에도 전교직원은 출근하여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배움의 터전을 만들기에 고심하고 있다. 현대화된 교수매체와 모든 학습자료가 구비되었고 사시사철 꽃이 웃음 짓고 싱싱한 생명의 숲으로 둘러싸인 드넓은 녹색 학습공간은 학생들이 마음껏 꿈을 펼칠 체험형 자연학습장이며 교육요람이다.

 아이들은 신바람 나서 즐거워하며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고 달리며 심신을 갈고 단련시키며 동심의 추억을 만들고 내일의 푸른 꿈을 키워가고 있다.

폐교 위기에 처한 학교를 기적이룬 모범적인 모교에 대하여 교육기관의 배려에 오랜 숙원사업인 통학차량도 지원되고 교육환경이 변모 새롭게 단장되고 있다.

학교가 정상적으로 발전하려면 교직원과 학부모, 학생이 서로간 일체감을 갖고 공동체로 정체성을 살려야 하리라.

총 동문회를 활성화하여 뜻 깊은 동문회 행사도 개최하고 오랜만에 동문상호간 정도 나누고 웃음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와 개교이래 처음으로 동문회보도 발행한다고 하니 동문회 한사람으로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모교는 서해의 넘실대는 바닷물에서 담아 올린 맛과 멋 인정이 넘쳐나는 살기 좋은 애향 골,

만금에 만금을 더한 새 만금에 격양가 울리는 풍요로운 내 고향 남산 위에 뻗어 나온 저 소나무처럼 영원무궁 발전하리라.

인간은 누구나 인고의 세월 속에 생활에 속고 마음이 깨어지는 아픔이 겪고 있더라도 흘러간 아름다운 동심의 추억을 담고 지나간 것을 그리워하며 새로운 희망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동문 개개인의 삶터에서 자기계발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며 자신의 미래를 힘차게 열어가고 있는 동문들이 있음으로 모교는 건재하고, 꿈나무 후배들은 큰 재목이 태동되리라 벅찬 기대를 가져본다.

내 삶이 다할 때까지 푸른 꿈을 갖게 한 나의 모교의 눈부신 발전상을 눈 여겨 지켜보리라.

모처럼 모교의 총 동문회 모임과 동문회보 발행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2005.9.4 동문회보 및 문예지)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물질만능시대에 영리만을 추구하는 각박한 세태에 한국의 Noblesse Oblige

(고귀한 신분에 따른 윤리적 의무)를 대표하는 두 집안이 있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많은 지혜와 깨달음을 던져주고 있고 잔잔한 감동을 일으켜 소개하련다.

 옛부터 대대로 존경받는 명문은 진정한 선비로서 덕행을 근본으로 삼았다.

한 집안은 최근까지 9대진사로 12대 300년 동안이나  부(富)를 유지했던 경주 최 부잣집이고, 다른 한 집은 조선 후기까지 자그마치 10명의 재상을 배출했던 경주 이씨 백사공파(白沙公派) 이시영(李始榮. 1869∼1953 - 임시정부 법무총장, 광복 후 부통령)집안이다.

최 부잣집이 조선의 부를 대표하던 집안이었다면, 이시영 집안은 조선의 귀(貴)를 대표하던 집안이었다.

전자는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보여준 집이라면, 후자는 일제 강점기에 명문가로서 귀를 어떻게 지켰는가를 보여주는 집이다.

이시영의 형제는 모두 6형제로 일제 때 나라가 망하자 모두 합심하여 만주로 망명하였다

'대대로 명문이라는 소리를 듣는 우리 가문이 일제 치하에서 노예가 되어 생명을 이어간다면 무슨 면목이 있겠는가' 라는 통탄이었다
두 집안의 이야기를 엮으려면 지면이 길어져 독자가 싫증이 나고 지루감이 있기에 후자의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접고 최 부자는 그 도읍지에서 12대를 만석꾼으로 산 명가이다.
경주 최 부잣집의 대대로 내려오는 가훈(家訓)은 이렇다.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初試合格者)이상은 하지 마라
        (政爭에 휘말리면 滅門之禍),
 둘째: 재산은 만석 이상은 모으지 마라
       (소작료를 낮춰 거의 공짜로 짓게까지 함)
 셋째: 과객(過客)은 후하게 대접하라 (하루 100명도 넘는 과객에다
        몰락한 잔반(殘班)이 몇 달씩 무위도식(無爲徒食)도 함)
 넷째: 흉년기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마라 (둘째와 같은 맥락)
 다섯째: 최씨 가문의 며느리들은 시집 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절약정신)
 여섯째: 사방 백 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덕망으로 이웃을 감싸다) 등이다.

'적선지가(積善之家) 필유여경(必有餘慶)'과 '공든탑이 무너지랴'가
생각난다. 12대를 유지한 것도 그렇고, 영남대학에다 재산 전부를 환원 한 것도 존경스럽다. 100여명의 하인을 두고 산 장손은 평범한 아파트에 살며 유산은 못 받고

"만석은 조부대에 끝났습니다."고 말하는 종손의 이야기도 겸손함과 덕스럽다.
중요한 것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했던 많은 부자와 저택들은 동학란과 6.25 동란과 같은 사회적 격변기에 처참한 응보의 값을 치루었으며 집안은 몰락하고 거의 불에 타 버렸다.
그러나 최부자는 큰 저택까지 영남대로 기증하여 덕망이 돋보인다.
우리주변에서 만석꾼을 한 집은 찾아보면 많지만 12대를 연이어 만석을 한 집안은 아마도 조선 팔도에 이 집뿐일 것이다.
역사상의 기록으로 앞으로도 깨기 어려운 전무후무한 기록일성 싶다.
가장 본받을 덕목은 논을 살 때도 흉년이 들어 노비들이 곤궁하여 할 수 없이 팔아야 할 때는 손을 내밀지 않고 오히려 고지를 깍아주어 굶주림에서 벗어난 뒤 제 값을 주고 사들였다.
가난한 사람에게 감언이설로 깍아 내리지 않고 논 값이 더 치솟았을 때 사들인다는 것이다. 이것이 부자가 지녀할 덕이 아닌가 싶다.
더욱이 처세육연(處世六然)은 본받을 덕목이 아닌가 싶다.
그 첫째는 자처초연(自處超然)으로 평상의 처신에 늘 초연할 것이며,
둘째는 대인애연(對人愛然)으로 사람을 대할 때는 부드럽고 포근하게.
셋째 무사징연(無事澄然)으로 일이 없을 때는 물이 맑듯이 대처하고,
넷째 유사감연(有事敢然)으로 일이 있을 때는 과감히 행 할 것이며,
다섯째 득의담연(得意淡然)으로 뜻을 얻었다 해도 되도록 담담하게
      처신하고,
여섯째 실의태연(失意泰然) 실의에 처해도 태연 하라고 엄격히 지키게 했다.
유순 겸손에서 덕이 생기고 덕행은 영혼의 美라고 했던가.
'부처님 공양말고 배고픈 사람 밥을 먹여라'했고 '美는 멸망해도 덕은 영원히 아름다움이라'고 했다. 그러나 덕행은 실천이 말같이 쉽지만은 않다.

금강산 그늘이 관동 팔십 리라는 우리 속담도 덕망 있는 사람 밑에서 지내면 그의 덕이 미치고 도움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양반이 망해서 종들을 내 보낼 때의 일화도 덕스럽다.

옛부터 덕인은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식솔(食率)을 거느린 종들의 밥그릇을 빼앗는 일을 죄악으로 여겼다.
평생을 정열을 바쳐 그 사업체를 키웠건만 하루아침에 거기서 해고
당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더욱 가슴에 와 닿는 대목이다.
부자가 망해서 집안의 가세는 어렵지만 평생을 주인을 위해서 일을 해온 사람들의 생계를 염려해서 남은 전답까지 팔았다.

내보낼 때 마지막으로 새끼를 되도록 가늘고 튼튼하게 꼬아 놓고 가라고 일렀다.

 평소에 게으르고 눈속임을 한 종은 나가는 날까지 부려먹는다고 불평하며 대충 꼬아댔고, 언제나 내집 일처럼 하던 성실한
종은 온갖 정성으로 마지막 주인의 당부를 수행했다.

아침이 되자  주인은 "네가 꼰 새끼에 엽전을 꿔어 메고 갈 만큼 가지고 가서 잘 살라"고 했다. 죄는 지은 대로 덕은 닦은 대로 간다.
'부자가 3대를 넘기가 힘들다' 부불삼대(富不三代)라고 했다.
최근 들어 우르르 무너지는 재벌들을 보면서 옛 어른들이 남긴 이 말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고 생각해 보게 된다.
100년은 유지될 줄 알았던 한국의 재벌들이 허망하게 넘어지고 부도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부자가 3대를 넘긴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세간사의 이치를 깨달으면서 현세에 내 눈으로 보고 있다.
이루는 것도 빨랐지만 망하는 것도 신속하다. 졸부(卒富)는 췌망(悴亡)이라던가!  삼천리를 내려가는 백두대간의 유장한 산줄기처럼 3대를 넘어 오래가는 부자는 왜 없단 말인가!

그런대도 12대 만석꾼을 지낸 그 유장한 부자!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과 진정한 덕을 깨닫게 하고 영원한 아름다움을 시사해준 졸부(拙夫)가 아닌 명부(名富)를 눈으로 보고싶어 경주 땅을 찾아 가보리라. 

그리고 오늘의 사는 지혜로 삼아 나의 것으로 간직하고 더 아름답게 살아보고 싶다.
삶의 탐착하는 속된 마음을 버리고 언제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사람의 모습이 아름답다. 부(富)에도 걸리지 않고 권력에도 매몰되지 않고 명예에도 머물지 않을 때 삶의 참된 의미와 만나게 된다.
나는 가끔씩 내게 물어본다. 내 삶의 주인은 나인가,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닌 것만 간다. 때로 탐내고 때로 화내는 내 삶 역시 분주한 것이기만 하다. 소유하되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행하되 행위에 매몰되지 않는 그런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며 살고 싶다.                                                  (2005. 7    문우회보)

 

                               매미의 음덕

 한 여름 푹푹 찌는 伏더위인데도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대는 나뭇가지 위에 앉아 목청을 가다듬고 소리를 하늘 위에 풀어놓고 매-앰과 쓰르 쓰르... 소리 높여 노래부르며 마음을 열고 님을 찾는 매미의 구애의 목소리가 마냥 즐겁고 잠시라도 더위를 잊게 한다.
연일 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속에서 혹시나 나를 잊고 헤메이는 사람은 없는지 듣기만 해도 시원스런 매미 이야기나 하고 잠시라도 더위를 잊는 시간을 가져봄이 어떨까한다.
교정 주위로 둘러싸인 숲속은  백일홍과 능소화가 만발하다.

애절한 사랑과 전설을 간직한 능소화와 백일홍이 활짝 웃고 매미의 노래소기가 끊이지 않으며 아이들은 마냥 즐거워한다.

세월은 오는 것인가 가는 것인가. 온다고 하면 가슴 설레고, 간다고 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세월의 본성은 석양빛을 비껴 흐르는 저 계곡 물과 같이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지리산 자락의 뱀사골 골짜기와 모악산 개울의 흐르는 물에게 물어보았더니만

어제의 물이 따로 있고 오늘의 물과 내일의 물이 따로 있냐고, 물은 어느 곳에도 집착하지 않고 자신의 성품대로 여기 이렇게 흘러간다고 답한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고 있을 뿐이란다.

요즘의 현실은 익선관(翼蟬冠)의 유래를 되새겨보게 하는 세태다.
익선관은 옛날 임금님이 정무를 보실 때 쓰던 모자로 양옆에 매미 날개를 붙인 모자다. 상감 머리 위에 매미날개, 멋과 운치가 있는 것 같지만 왠지 거추장스런 느낌이 든다. 무엇 때문에 매미날개 모자를 쓰고 국정을 논하는가를 그 깊은 뜻을 알아야 할 것 같다. 매미의 다섯 가지 德을 염두에 두고 그 유래나 그 뜻을 새겨 보면 우리 조상들의 슬기에 숙연해진다.
첫째가 매미의 입이 곧게 뻗은 것이 마치 선비의 갓끈이 늘어진 것을 연상하게 하므로 매미에게는 學文이 있고(文)
둘째, 나무의 수액이나 이슬을 먹으며  곱게 사니 맑음이 있다(淸)
셋째, 사람이 애써 가꾼 곡식이나 채소를 먹지 않고 탐하지 않으니 염치(廉恥)가 있는 것이며(廉)
넷째,  다른 곤충들과는 달리 집이 없이 살고 있으니 검소하고 (儉)
다섯째, 겨울이 되면 때맞추어 죽으니 신의가 있다(信)는 그 뜻을 살려 임금님 머리 위에 매미날개가 자리잡게 되었다고 한다.

국정에 임하는 사람은 항상 이 매미의 오덕(五德)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임금이나 신하가 모두 매미의 날개를 관모에 붙여 사용했다고 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예나 지금이나 국민을 주인으로 알고 맑은 마음과 염치와 신의 그리고 검소를 사람됨의 바탕으로 하여 몸을 낮춰 봉사하는 것이 각계 각층 지도자의 자질이 아닐까한다.
오늘날 각계 각층의 지도자들이 매미의 오덕을 머리 속에 간직하고 제자리에 앉아

 국민의 편에서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였다면 자고 나면 아파트 값이 천장부지로 폭등하여 서민경제에 찬물을 끼얹고 빈부격차가 이만큼은 확산되지는 않았으리라.

인격과 자리는 동전의 앞과 뒤와 같이 불가분의 관계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삼라만상도 제격에 맞는 자리가 있고 또 그 자리에 있어야만 어울리는가 보다.

항아리는 장독대에서만 조화롭고, 신발은 댓돌 위에 나란히 놓여 있을 때 아름답듯이 비록 한 폭의 그림일지라도 제자리에 있어야만 아름답다.
유명한 삼여도(三餘圖)의 교훈 또한 심오하여 물고기 그림도 제자리를 잘 가려 붙여야 돋보인다고 하였다.
그러면 삼여도에 암시되는 뜻은 무엇이며 그 유래는 또 무엇인가?
재산도, 명예도, 권력도, 수명도, 넉넉히 남으라는 뜻인가?

이렇게 세속적으로 추측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뜻밖의 내용이 숨어 있다. 위지 (왕숙전-王肅傳)에 나오는 동우(童遇)에게 젊은 농부가 배움을 청하자 책을 백 번만 읽으면 뜻이 저절로 통한다(讀書百編意自見)며 그렇게 하기를 충고한다.

그러자 그처럼 여러 번 책 읽을 시간이 없다하자 다시 말하기를 학문을 하는 데는 '세 가지 여가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가르친 말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여기서 세 가지 여가란 남들이 다 잠자는 밤, 겨울, 흐리거나 비오는 날이다. 밤은 하루의 나머지 시간이고 겨울은 일 년의 나머지, 흐리거나 비오는 날은 맑게 갠 날의 나머지가 된다.(冬者歲之餘, 夜日之餘, 陰雨時之餘) 밤과 겨울, 흐린 날은 농사짓는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여유 있는 시간이고 이 세 가지 여유 있는 시간 만 활용하더라도 학문하는 데는 충분하다는 말이다.
이는 결코 학문을 경시한데서 오는 것이 아니고 주경야독의 근면성과 배움을 아울러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여하튼 '삼여'라는 말은 학문하는 태도에 대하여 일깨운 말이기 때문에 비록 물고기 그림일지라도 서재에 자리를 잡아야 제격이다.

혹시 안방이나 식당에 붙이는 것은 제자리가 아닌 것이다. 비록 그림 한 장도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아름다운데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야 말해 무엇하랴.
제격에 맞는 자리에 앉은 사람은 아름답다.

사람에게도 사람 사람마디에 어울리는 자리가 있는가 보다.

꼭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거기에 자리할 때 믿음이 간다.

실력이 없으면서 자리만 탐한다면 남의 웃을 빌어 입은 것처럼 어색하고, 실력이 벗는 본 바탕이 드러나면 보기에도 민망하다.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격에 맞지 않는 자리에 앉아 버티고 있는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우리는 익선관에 숨겨진 사람됨의 덕목을 그리고 '삼여도'에서 보여준 제자리의 의미를 되새겨 보면서 각자의 삶의 과정을 소홀하거나 후회 없이 제자리의 몫을 다하고 잠시라도 '나'를 찾는 시간을 할애하였으면 한다.

          ( 이 글은 새전북신문 오늘 8.1자 맨 뒷장(16면)에 게재됨

             인터넷으로도 찾아볼 수 있음. 다음 주소란에 치면 나옴. )

 

           자랑스러운 한국인 “기적을 이룬 꿈”을 읽고


지천에는 더위와 장마, 광란의 날들이 지나니 저토록 찬란한 들녘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넘실대며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다.

만산에는 고운 오색 단풍물결이 극치를 이루어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느끼고 나들이 길을 재촉한다.

하늘은 비어 높고 마음이 살찌는 독서의 계절에 마음의 양식을 얻고 영혼을 맑게 하기 위해 서너권의 책은 읽어야 하리라.

  재외동포재단에서 700만 해외 동포와 젊은 청소년들에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가장

‘자랑스러운 한민족'으로, KBS가 ’자랑스러운 한국인‘ 특별상 대상자로 선정한 재미동포인

신호범 자서전 “기적을 이룬 꿈”을 읽고 감동의 눈물이 한없이 쏟아져 소감을 적어본다.

  주인공은 “나에게 어떻게 살아왔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오를 수 없는 산과 건너지 못할 강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살아왔다고 대답하고 싶다“라고 첫 이야기다.

 네 살 되던 해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 얼굴도, 자태도, 음성도 아무것도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은 어머니를 찾아 70여 년간 살아오면서 수천 만 번 부르고 또 불러보며 몸부림치며 살아왔고,

한국에서는 정규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고 유년시절에 거리에서 10여년간을 부랑아로 살았던 한 소년이 세계 속의 한국인이 된 주인공은 우리 시대에 한 번뿐인 인생을 안일과 낭비로 살아왔다는 후회와 자성을 하게 되며 극한의 삶을 극복하고 인간 승리의 기쁨을 안겨주었음을 자랑한다.

세상에서 가장 그리운 이름, 힘들고 어렵고 슬플 때 부를 수 있는 이름,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에도 부르고 싶은 이름, 아주 특별한 이름 ‘어머니!’를 가슴에 안고 평생을 살아온 주인공이다.

  경기도 파주시 금촌 산간마을에서 태어나 이웃 동네 외가에서 외할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동네 꼬마들은 엄마가 없고 아빠가 없어 업신여기며 놀림을 주며 기를 꺾고 어린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비가 내리고 풀잎들이 비 눈물방울에 얼룩이 져 있을 때, 햇살이 하루 종일 쏟아낸 빛을 다 거두어 서산에 둥그렇게 가두고 타는 노을빛으로 들녘을 물들일 때, 소쩍새가 울 때,

 그리고 해 너머 가는 줄 모르고 골목에서 옹기종기 모여 놀던 친구들이 그들의 어머니가 목청껏 부르는 이름을 따라 길게 대답하며 제집으로 쪼르르 달려 들어갈 때, 주인공을 부르는 어머니가 없다는 사실에 몸서리를 쳤다고 실토한다.

엄마 품안이 얼머나 그리웠을까?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외로움과 배고픔보다 훨씬 더 깊고 강하여, 마음은 항상 앞산 솔밭에서 우는 소쩍새 울음처럼 슬펐단다.

외가에서 2년동안을 이 눈치 저 눈치, 눈칫밥을 먹으며 천덕꾸러기로 자라던 주인공은

여섯 살 적 사촌 막내 동생이 먹는 엿을 뺏어 먹다가 외숙모한테 피가 흐르도록 두드려 맞고 도망쳐 나와 서울에 가서 엿장수를 해서 엿을 한 리어카 갖다가 온 동네 아이들과 외숙모에게 주겠다는 결심을 하고 기차역으로 갔다.

서울역에서부터 남대문 시장 통을 넘나들며 거지생활을 하며 生과 死를 수없이 넘나들며 처절한 배고픔과의 싸움으로 몸부림하고 부대끼며 딱지가 덕지덕지 심신에 얹히는 상처를 끌어안고 거칠고 험하며 고난한 인생길을 걸어왔다.

여덟 살 때는 새까맣게 때가 절은 작은 몸뚱이는 먹지 못해서 뼈와 가죽만 앙상한 채 구겨진 휴지처럼 의식을 잃고 시장 통 한 구석에 쓰려져 죽어가고 있는데 쓰레기 치우는 아저씨가 발견하여 서울역 맞은편 남대문 근처의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시켜 목숨을 건졌음을 현재까지 잊지 않고 술회하고 있다.

대개 사람들은 열 살 이전의 유년기에 대한 기억들이 없다고 말하는데 주인공은 뼈 속에 저린 추억들이 어린 날의 슬픈 상처로 각인되어 생생하게 기억하고 그 애달픈 날들의 기억들을 어찌 잊을 수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남대문 시장에서 어슬렁어슬렁 노점상 앞이나 국수 집 앞에 침을 꼴깍 삼키고 왔다갔다

눈요기를 하면, 배가 고픈데다가 떡볶이가 먹고 싶어 환장할 지경이어 떡볶이 아주머니 노점 앞에서 한 걸음도 더 움직이지 않고 주춤거리며 발을 떼지 못하고 침을 삼키고 있으면 아주머니는, “이 녀석! 한참 안 보이더니 왜 또 왔냐? 그런데 너 왜 이 모양이냐?

다 죽을상이니......” 반가워하는 기색은 아니어도 아는 체 해주는 아주머니 말에 자신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쪽으로 와라.” 아주머니는 양동이를 비켜 놓으며 비좁은 옆자리를 만들어 나를 잡아 앉히더니 떡볶이 한 접시를 덜어주었다

“너 많이 아팠던 게로구나. 빌어먹는 주제에 아프지나 말아야지. 어서 먹고 가거라.” 이러는 덕에 주린 배를 채우면서 기진맥진한 몸을 추스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울지마라. 울면서 먹으면 목에 걸린다. 생기기는 귀엽게 생겼는데, 어린 것이 이 고생을 해서 쯧쯧.....”

주인공은 떡볶이, 개피떡, 칼국수, 개떡, 순대, 호떡을 좋아한다며 지금도 한국에 오면 신촌이나 신당동 떡볶이집 청진동 해장국집을 즐겨 찾는다. 허기에 시달릴 때 남대문 시장 아주머니들이 이따금 건네준 이 음식들은 산해진미보다 더 맛있는 음식이었고, 평생 잊지 못할 맛으로 혀를 길들여 놓았다고 한다.

굶주림에 허덕일 때 국수 한 그릇, 떡 한 덩이가 얼마나 큰 활력을 주는지 굶어 보지 않은 사람은 전혀 알 수가 없을 것이라고 회고한다.

주인공은 10여년을 밤 고양이처럼 언제나, 어디서나 먹을 것을 찾아 두리번거렸고, 쓰레기통에서라도 먹을 것을 골라내어 굶주린 배를 채우며 억척스럽게 살아왔다.

 어느새 세월은 흘러 주인공 나이 열다섯이 되던 해에 6.25전쟁이 터지고 노량진역의 대합실에 둥지를 틀고 인천에서부터 수송되는 군용차량이나 트럭과 지프가 부교를 건너기 위해 늘어서 있는 한강다리 남쪽에서 구걸행각을 했다.

"헬로, 오케이, 기미 껌, 기미 초콜릿.“ 누가 먼저 이 말을 배워서 퍼트렸는지

알 수 없으나 손을 흔들면서 이렇게 외쳐대면 자동차에 타고 있던 미국 군인들이 껌은 물론 과자, 사탕 등을 던져주었고, 이따금 운수 좋은 날은 레이선 박스를 던져 주어 횡재를 하기고 했다.

행운이 찾아와 어느 날 트럭 위에 있던 군인들이 껌 달라고 흔드는 손을 잡아 트럭 위에 올려 세 명이 차에 태워졌고,

 용산 기지에 도착한 미군은 2주정도 테스트 기간에 이 눈치 저 눈치, 눈칫밥을 얻어먹으며 살아와 재빠르게 눈치껏 행동을 하니 자연히 장교들의 칭찬을 받고 장교 하우스보이가 되어 일하다가 우연한 인연으로 치과 의사인 폴 대위의 양 아들로 입양되었다.

16살이 된 주인공을 입양한 양아버지는 유아기에 입양하여 살붙이 같이 기른 정으로도 그처럼 깊을 수 없으리만큼 한 없이 넓고 깊은 사랑을 베푸셨다.

헐벗고 굶주리고 의지할 곳 없는 한 소년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랑을 주고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 주어 무슨 일이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며 돌봐 주셨다.

우여곡절 끝에 21살 되던 1955년 9월에 미군 화물선을 타고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간다.

서른여덟 살의 젊은 치과의사인 양아버지는 한국에서 학교라고는 문턱도 못 가본 주인공을 학교에 입학시키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학령기를 훨씬 넘긴 나이에 미국 교육제도상 학교교육이 불가능하다는 알고 공부해서 선생님이 되겠다는 청운의 꿈이 좌절당해야 하는 현실에 교장실에서 대성통곡을 한다.

미국인 교장선생님의 안내로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하여 하루에 3시간(평생토록 현재도 실천하고 있음) 이상 잠자지 않고 공부를 했다. 양부모님은 밤늦은 시간에 여러 과목을 지도해 주셨고,

 영어 단어를 외우다가 답답하여 사전을 불에 태워 그 재를 먹기도 했다.

공부를 하면서도 동생들의 세탁과 다림질, 설거지 등으로 가사를 도우며 한 가족이 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공부하면서 코피를 수도 없이 쏟으며 고된 생활에 영원한 인생의 스승이요 등불이었던 양아버지의 격려와 사랑으로 참고 극복한 결과, 1년 반 만에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계속 노력하여 대학원 졸업과 함께 하와이 대학 강단에 선다.

강의 과목은 동양사, 국제정치, 세계 문화사, 세과목을 맡아 밤잠 안 자고 강의안을 준비했다.

 현재는 계모와 5명의 이복동생들을 미국에 이주 안착시켜 사업자금, 학자금, 살림집을 마련해주고 안락하게 살도록 돌봐주었다.

  50년만에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찾은 친아버지에게 어느 날 물었다.

 4살 때 왜 저를 버리셨습니까?  아버지는 눈물을 쏟아져 내리며 “호범아! 세상에 어느 애비가 자기 핏줄인 제 자식을 버릴 수가 있겠느냐?

네 어미가 죽은 후 나는 그 때 가난해서 먹고 살길이 막막했다. 너를 먹여 살릴 길이 없었다. 셋집도 쫓겨나서 할 수 없어 다른 동네로 남의 집 머슴이 되어 갔기 때문에 어린 너를 데리고 갈 수 가 없었단다.” 주인공은 아버지를 끌어안고 통곡했다.

 50년 만에 응어리진 한을 풀고 화해했다.

가난은 죄가 아닌데 아버지를 오해했다는 것을 사과하며 아버지께 엎드려 절을 하고 용서를 빌었다. 미국으로 이주하신 아버지를 4년 7개월간을 모시고 돌아가시기 2주일 전에 주인공의 손을 꼭 붙잡고 말씀하신다. “나는 아무 여한 없이 행복하게 간다.

내 아들! 애비가 변변치 못하여 제대로 돌보지 못한 이복동생들을 네가 보살펴 줘서 참으로 고맙다. 애비를 용서해 주서 마음 편히 간다. 고맙다.”

현재는 90고개를 바라보는 계모에게도 효심이 지극하시다. 주인공은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와 태어난 한반도는 누가 가르쳐 주거나 부르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내 어머니와 내 조국이라고 부른다. 지극한 사랑이나 보살핌을 받은 적은 없지만 어머니라는 이름, 조국이라는 그 이름만으로도 언제나 잠잠하던 피가 끊고 설레며 마음을 촉촉하게 적신다.

주인공은 ‘저 산 너머’로 가신 어머니, 그 특별한 이름을 찾아 헤매던 유년의 추억을 잊지 못하듯, 조국을 잊지 못한단다.

주인공은 모든 가난과 억울함과 분노마저도 철저하게 승화시키고 남은 것은 사랑, 봉사, 그리고 스스로 행복하고 자족할 줄 아는 편안한 인간으로 오늘도 오대양 육대주가 좁다 하고 뛰어다니며 조국을 빛내고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위대한 세계인’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며 세계인이다.

한 인간이 성취해 낸 위대성을 발견한다. 주인공의 역경을 극복한 고생담을 어찌 다 짧은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현재 워싱턴주 상원부의장이며 국제무역 경제 발전 위원장, 경동대학 명예총장, 한미정치교육 장학재단 이사장, 31년간 하와이대 교수 등 다수)             (2006. 10. 20)

 

             처음마음으로(初心)...

 

  올 여름은 문턱에서부터 시작된 장맛비와 폭우로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내어 四面八方에서 아우성이었고, 지루한 장마가 그칠 줄 모르고 하늘엔 운무가 잦아 가랑비와 장대비가 쏟아져 몸과 마음이 우울한 해였다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

나의 메모장을 뒤적여 보았더니 꼬박 36일 동안 먹구름이 하늘을 가리우고, 날씨가 흐리어 장맛비가 그치는 날이 없어 햇빛을 구경 못했다.

오늘은 오랜만에 맑은 하늘에 고운 햇살이 쨍쨍하고 무더위가 절정을 이루는 말복이 지나는 길목, 교정주변 푸른 숲속에서 유난히 울어대는 매미의 노래 소리가 반갑지만 처연하면서도 듣기가 아름답다.

저렇게 한 철 노래하기위해 매미는 땅속이나 나무 밑동에서 짧게는 7년, 길게는 20년이라는 긴긴 시간을 애벌레로 기다리다 세상에 나와 1주일 남짓 노래하다 저 세상으로 간다고 한다.

매미의 노래 소리는 탄생의 기쁨이면서 동시에 수명을 재촉하는 소리이다.

반면 여름철 곤충인 반딧불이(개똥벌레)는 소리가 없으나 침묵 속에서 빛으로 무서운 사랑을 노래하며 제 존재를 알린 뒤 열흘 남짓한 생명을 다한다.

세상 삼라만상이 순간에 있으며 스치는 인연 속에 매미도 반딧불이도 여름 한철을 위해 오랜기간 번데기로 살면서 힘든 탈바꿈 과정을 겪지만 각각 울음소리와 빛으로 제 존재를 알린 뒤 열흘 남짓한 짧은 생명을 다하고 간다.

이와 같이 인간의 삶도 그러하다. 사람은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극상(極上)의 위치는 짧고 달콤하다고 한다. 극상에 오르면 이제 내려올 일만 남은 것이다. 누구나 극상이면 자멸한다고 한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겸손과 자중의

신조로 신망을 얻고 존경을 받도록 자기관리와 노력을 하여야한다 .

매미도 반딧불이도 열흘 남짓 살다 가지만 하늘을 찌를 듯한 시끄러운 울음소리보다 아름다운 침묵의 빛을 내는 반딧불이가 더 가슴에 남는 건 무슨 이유일까.

누구나 찡 하고 해 뜰 날을 꿈꾸며 살지만 찬란한 태양보다도 은근한 달빛의

여운이 더 오래가는 것 같다.

매미와 반딧불이, 햇빛과 달빛, 우리는 어떤 삶을 원하는지?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경계(인식이나 가치판단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에 부딪치고, 생활에 지치고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고 슬럼프에 빠져들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제일 먼저 처음 생각했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일본의 유명한 도자기 감정자 스즈키는 소장박물관이나 소장자를 밝히면 절대 작품을 감정하지 않았다. "누가 소장하고 있다.

 어디서 소장하고 있다"란 말에 속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감정방법은 오로지 현품대조(現品對照), 작품을 바라보는 눈이 순수해야 제대로 된 감정을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기에 그는 일본 최고의 감정가로서의 명성을 지켜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순수한 마음, 본래의 마음, 자기를 속이지 않는 마음, 그것이 初心이다.

불가에서도 내 마음에 고뇌와 번뇌가 있다고 생각되면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불가에서는 항상 초심을 잃지 말라는 격문이 있다.

초발심시변정각 백척간두진일보 (初發心時便正覺 百尺竿頭進一步)

(처음 발한 마음이 부처의 마음이며, 백 척의 까마득한 절벽에서 한 발을 내딛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삶의 나태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초심의 절실한 마음을 잃지 말고 스스로 극

한 상태에 처하게 하여 긴장하도록 해야 한다. 초심을 지키기란 참으로 어렵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초심을 잊고 만다.

 그러나 초심을 지키면 흔들리지 않는 떳떳한 삶을 살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매 순간 자신을 진화시킬 수 있다.

신의를 저버리지 않고 남과 한 약속을 반드시 지키며 신뢰를 신조로 삼아 자신을 절제하고 자기관리를 잘 한 사람도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만절(晩節)을 보면 초심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만절이란 '오랜 절개'로 이 말은 평생을 잘 살아온 사람이라 할지라도,

맨 마지막 행동까지 지켜봐야 그 사람의 참모습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직장에서 또는 사회에서 인간관계가 모나지 않고 후덕한 마음가짐으로 순수하게 지내온 평범한 보통사람이 지위가 오르거나 갑자기 높은 벼슬을 얻으면 올챙이 시절을 망각하고 아집과 독선으로 본성을 드러내고,

삼독(탐貪-탐욕. 진瞋.-성냄 치癡-어리석음 )에 물들어 남의 입줄에 오르내리는 몰지각하고 파렴치한이 우리 주위에 자주 나타나 실망스럽다.

36년 동안 독립운동을 했어도 마지막 순간에 친일을 했다면 친일파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남 보기에 친일을 했어도 끝에 가서 독립운동을 했다면

 

그 사람은 독립운동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맨 마지막 절개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초심을 지키려면 마음을 닦는 공부, 즉 내 정신을 잘 수양하여야 하겠다.

“인생의 주인공이 되라"고 강조 한다.

수레를 밀고 가는 사람은 평생 수레만 봐야하지만, 수레를 끌고 가는 사람은

하늘과 땅, 세상을 볼 수 있으므로 인생의 주인공이 그가 되는 것이다.

중국 당대 스님 임제선사의 유명한 말씀 중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말은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어는 곳에 있든 가장  진실한 자기

자신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네 자신을 주인공으로 만들어라.’ 아주 당연한 말 같지만 한번쯤 반문해봐야 한다.

과연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인가. 혹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은 아닌가.

주인공만이 살아지는 삶이 아닌, 살아가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인생을 절약하면서 살아야 하겠다.

 절약은 다양한 의미로 돈을 절약하고 시간을 절약하며 근면하고 검소하게 살았다는 말이지만 절약의 절(節)은 자기 자신을 절제한다는 말이다.

돈이 있을 때 돈을 절제할 수 있고, 권력이 있을 때 권력을 절제할 수 있고,

몸이 건강할 때 건강을 절제할 수 있고, 인기가 있을 때 인기를 절제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을 절제할 수 있은 의지력이 바로 절(節)이라고 한다.

오늘 하루를 잘 살면 인생을 잘 살게 된다고 한다.

이를 미리 알고 인생연습을 열심히 한 사람은 눈앞에 즉음이 닥쳐도 의연하지만, 자신이 오래 살 것이라 착각하고 연습을 게을리 하면 뒤늦게 후회하는 일이 생긴다.

하루가 한 생이요. 1년이 영겁이라는 마음으로 매일 인생을 연습하는 사람만이 잘 살고 잘 죽을 수 있다고 한다.

 어떤 일을 자기가 처음 계획하여 시작했을 때의 초심을 잃지 않게 위해 항상 회광반조(回光返照)하며 살도록 하여야겠다.

인생의 슬럼프(slump)에 빠졌을 때는 초심으로 돌아가 시작하여야겠다.

처음 먹었던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에 일이 안 풀리어 꾀이고 있음을 알아야한다. 우리주위에는 처음과 끝이 다른 사람이 많이 있음을 자주 접한다.

부디 이번 생만큼은 끝도 처음처럼 살다 가야 하여야 함을 다짐해 본다.

우리는 어디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하루하루를 즐거운 마음으로 끊임없이 아름답고 좋은 행동을 하기위해 마음과 몸으로 노력합시다.

                                                                        (2006. 12 전북문우회보)

 

                     삼천배(拜)의 의미


  성철 큰 스님께서는 어느 누구라도 부처님께 삼천배의 절을 하여야만 친견하였다.

그냥 절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절해라, 삼천배 절을 하고 나면 그 사람의 심중에 무엇인가 변화가 옵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남을 위해 절이

잘 안돼도, 나중에는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며, 그렇게 행동하게 된답니다.

절에 가면 법당 벽에 그려진 심우도(尋牛圖)를 볼 수 있다.

  참 나를 찾아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소를 타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가는

동자의 그림이다. 소는 진리, 동자는 수행자를 상징한다.

모두 10단계가 있는데 마지막 단계는 깨달음을 이룬 뒤 깨달았다는 자취마저 지우고 중생 속으로 들어가 자비를 펴는 입전수수(入廛垂手)의 단계이다.

  성철스님은 동서양 학문(영어, 일어, 독어를 독학으로 익히어 소크라테스의 어록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뉴턴의 전기 등을 원문과 함께 메모 변역하고, 일어판 신수대장경을 열람)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해박한 강설은 많은 지식인들을 매혹시킨 수재이시다.

지금까지 어떤 고승도 성철 스님처럼 원자물리학이나 (타임)지에 소개된 윤회를 들고 나와 깊이 있게 강설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불가에서는 흔히 윤회(輪廻) 전생한다고 믿는다. 혼백(魂魄)중에서 눈에 보이는 백(몸)은 지수화풍으로 돌아가지만 혼은 윤회 전생한다고 한다.

인과(因果)의 법칙은 전생은 因이고 금생은 果라고 한다. 

무슨 일의 성과가 없다고 초조해 할 것이 못되고 인과의 통장에 자신의 노력의 거짓 없이 차곡차곡 저축되고 있다고 한다. 자기가 짓고 자기가 받는다.

 '불교원리를 이야기하면 너무 어려워서 알 수 없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불교의 근본원리인 불생불멸(不生不滅) 원리를 상대성이론, 등가원리로 입증해 설명하고 있어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진리라고 한다.

불생불멸은 원자물리학에서 자연계를 구성하고 있는 근본요소인 에너지와 질량이 둘이 아니고, 질량이 에너지이고 에너지가 질량인 동시에 서로 전환하면서 증감이 없다고 밝혀낸 것이다. 이것이 불생불명이다. 반야심경의 色卽是空이 곧 空卽是色이다.

 

 (유형이 즉 무형이고 무형이 즉 유형이라고 한다) 지극히 선한 성품을 기독교에서는 ‘영성이라 하고 불교에서는 불성이라 한다.’ 언어는 다르지만 그 근본은 살아 있는 동안 남을 돕고 자신의 인격을 선하게 닦자는 것이 종교적인 삶이라고 믿는다. 종교적인 가치를 놓고 선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마음에 그늘을 드리우게 하는

독선(獨善)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종교에 대해 비평해서는 안 된다.


 어려운 이야기 접고 성철 큰 스님과 얽힌 일화 한 토막 소개하련다.

현재 모 대학에 재직 중인 유능한 교수의 중학생 시절의 이야기다.

중학생 소년은 유망한 축구선수였다. 축구명문인 시골 중학교에서 주장을 지낼 정도로 운동에 재능이 있는 어린 꿈나무였다.

강릉의 한 축구 명문고에서는 학생을 눈여겨보고 있다가 스카우트를 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생이 졸업할 무렵 그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스카우트하겠다는 고등학교에서 갑자기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었다.

소년은 눈앞이 캄캄했다. 축구를 계속 열심히 하여 국가대표선수가 되려 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어려워졌고, 학과 공부를 하여 진학을 하자니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사실 운동한다고 중학교 시절 내내 학과 공부는 거의 등한시했던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학생은 고등학교 입학시험에서 낙방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재수였으므로 소년은 실의에 빠진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소년은 가족을 따라서 김룡사(경북문경 운달산내)할머니의 49제를 지내러 갔다. 할머니의 49제를 김룡사에서 지내게 된 것은 그의

고모가 김룡사로 출가한 인연이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김룡사에는 성철 스님이 주석하고 있었고, 스님의 시봉은 천제 스님이 하고 있었다.


소년은 성철 스님 앞에 앉았다. 가족 중에 누군가가 소년의 처지를 얘기했다.

그러자 성철 스님이 위로는커녕 야단을 쳤다.

"못난 놈! 고등학교 시험에 떨어지다니 앞으로 무엇에 쓴단 말인가?

지 앞길도 제대로 가지 못한 놈이 어떻게 할머니의 저승길을 인도하겠다고

49제에 왔는가 말이다." 가족 중에 아무도 대꾸를 못하고 있자.

성철 스님이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빠르게 말했다.

"저놈은 삼천배 갖고는 안 되니 삼천배를 일주일 동안 시켜라."

소년은 처음부터 큰소리를 치는 성철 스님의 기세에 눌려 절을 하기 시작했다.

도망칠까도 생각했지만 고모가 스님인 데다 할머니의 49제에 왔으니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런데 매일 여섯 시간이 걸리는 삼천배를 일주일 동안 반복하는 것은 소년으로서는 무척 힘든 일이었다.

 할 수 없이 소년은 도중에 포기를 하고 성철 스님이 주석하는 토굴로 갔다.

성철 스님에게 인사라도 하고 절을 내려가기 위해서였다.

"스님, 스님." 좀 더 큰소리로 불렀지만 방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불이 꺼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소년은 슬그머니 손에 침을 묻히어

문구멍을 뚫었다. 안을 들여다보고 난 후 소년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성철 스님은 소문대로 밤에도 잠을 자지 않고 장좌불와(허리를 길게 펴고 반듯이 앉아 있음)정진을 하고 있었다. 좌정에 든 자세로 좌복에 앉아 돌부처처럼 앉아 있었던 것이다.

성철 스님의 요지부동한 모습에 자극을 받은 소년은 다시 삼천배를 시작했다. 마침내 일주일 동안 무사히 2만1천배를 마쳤다. 삼천배를 일주일 동안 하고 나자 자신감이 솟구쳤다. 보름 동안 잠을 자지 않고 계속 공부해도 피곤하지 않을 정도로 집중력도 생겼다.

가족들이 겁이나 방 안에서 소년을 쫓을 정도가 됐다. 한 해가 지나고 난 뒤 소년은 당시 서울의 명문고인 경복고에 입학했다.

집안 친척 중에 경복고에 다니던 학생이 있었는데, 고향에 내려오면 늘 학교 자랑하는 것이 부러워 경복고를 지원했는데 덜컥 합격해 버렸던 것이다.

여기서 성철스님의 독특한 중생제도를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부처님 앞에서 삼천배를 시키어 나라고 고집하는 아상을 뽑은 다음, 모든 이를 부처님 모시듯 행동하도록 제도하고 있는 것이다.

성철스님은 말한다.

"모든 사람을 부처님처럼 섬기라. 그것이 참 불교이다."

참 불공이란 목탁을 두드리며 불단에 음식을 차려놓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를 몰래 돕고, 나보다 못한 이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원망하는 원수까지도 부처님처럼 섬기는 것이 참 불공인 것이다.

모든 사람을 부처님처럼 섬기고 사는 이가 있다면 그도 역시 부처님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되도록 헌신하다 보니 성불할 틈도 없는 그런 존재를 대비천재라고 부르는데, 그 뜻이 더욱 절절하게 다가온다.

전주지검장 역임하고 현재 대검 형사부장이신 이동기 검사님은 매일 새벽 5시에 기상하여 108배 기도하고 있음.                                            (2006. 12 문예연구 텃밭지)

  

                  색 다른 수학여행 所懷


                             

 싱그러운 신록이 짙어가는 지난(4.25-4.28)에는 학생수학여행단의 인솔자로 모처럼 제주도를 찾아 이슬비가 촉촉이 내리는 가운데 난생 처음으로 꿈에 그리던 우리나라 최남단의 섬, 마라도를 찾았더니 너무나 환희에 벅차 흥에 겨워 무아지경에 빠졌고,

푸른 초원의 잔디밭을 뜀박질하며 몇 시간을 누비다가 무정하게 떠나가는 선박을 놓치고서 다음 배를 타고 나왔으며, 마음 통하는 영문학 전공 교사는 흥에 젖어 세속의 모든 일체의 번뇌 망상을 태평양 망망대해에 모두 쏟아 버리고 마라도 섬에서 살고 싶다며 푸념하면서 마음껏 스트레스를 풀었답니다.

 이 시간만큼은 천혜의 고도인 마라도에 마음속에 낀 때를 닦아내어 욕심 다 버리고 세속의 번뇌망상 다 잊고 본마음을 찾아 無心으로 돌아가 나의 참 마음을 바로 찾고 볼 수 있었으며, 마음의 눈을 가린 삼독(三毒 -욕심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을 완전히 제거해 녹아 버릴 수 있었습니다.

자랑거리로는 자장면과 싱싱한 미역줄기, 금세 잡아와 길거리에서 몇 점 맛보는 자리돔 횟감은 일품이었고, 자전거를 타고 초원을 누비는 즐거움은 황홀하였습니다.

 간이 노점에서 세찬 비바람을 이겨가며 관광객들에게 커피를 공양하고 있는 금슬 좋은 부부의 모습은 한 쌍의 원앙새처럼 아름다웠고 그윽한 커피향이 더욱 향기를 발산하였습니다.

 

 한라산 산행은 예전에는 돌풍 탓으로 진달래 밭에서 통제하여 백록담을 정복 하지 못하였는데 이번에는 기어코 정복하였습니다.

1400고지 지나니 길가에는 녹지 않은 하얀 잔설이 쌓여 기온차를 실감하였으며, 덩치 큰 까마귀는 입구까지 마중 나와 어서 오라고 修人事하며 산 중턱까지 따라와 지저대며 길 안내를 해주면서 반가워했고,

이른 아침 성판악에서 오전 7시52분에 출발하여 오후 3시 49분에 돌아왔는데 산행시간은 꼬박 8시간 소요되었습니다.

한반도 남쪽 땅에서 가장 높은 꼭지인 1.950m의 정상을 정복하고 왕복 19.2km의 먼 거리로 지루하고 다리는 저리 오지만 마냥 즐거웠고 가슴 뿌듯하였습니다.

 보통 걸음이었지만 점심시간과 정상에서 쉬는 시간이 약간 지체 소요되었고, 진달래 밭은 화사한 봄 햇살을 받아 지천(至賤)으로 꽃봉오리만 맺어 꽃망울 터뜨리기 직전으로 아직 피지는 안했어도 주위 경관이 눈부셔 장관을 이루었고, 오르는 주변의 풀 한포기, 바위하나, 색다른 나무하나에도 깊은 의미가 있었고, 정상부근까지 파릇파릇 생기가 돋아난 활기찬 푸른 주목나무는 보기가 정말로 아름다웠습니다.

 

산을 오르면서 자연을 벗 삼고 노닐며 천고의 변치 않은 자연의 섭리를 느끼며 배울 수 있었습니다.

5월 중순경에 진달래 축제가 성대하게 열린다고 하니 마음만 기대가 큽니다. 사력을 다해 오른 백록담 정상은 감탄사가 저절로 나와 신비스러움 그 이상이었고, 시야가 확 트여 사방천지 빙 둘러 보아도 검푸른 바다의 파도치는 물결과 너울너울 춤추는 바다 참새(갈매기)의 아름다운 모습이 보였으니 행운 이었습니다.

 한라산 오르는 길은 예전보다 잘 가꾸고 다듬어져 있어 중간 중간에 잔자갈과 토막목이 안치되어 걷기에 편하게 조성되었습니다만 아직도 큰 돌이 자연 상태로 방치되어 무릎 관절에 무리가 올 가능성이 있어 더 좀 손질하였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내 생애에 한라산과 마라도 다시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 됩니다만 이번 여행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영원토록 뇌리에 지워지지 않고 길이길이 남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학교 교장님의 교육철학관은 학생들의 수학여행은 일상적으로 놀러가는 일이 아니라 색다른 아이디어로 학생들에게 굳은 의지와 정신력 함양, 모험정신의 배양, 강인한 체력을 연마하여 창조정신과 도전정신으로 인내심을 기르고,

호연지기로 어떠한 역경에 처하여도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스스로 삶을 극복하고 개척할 수 있도록, 남들이 안하는 극기 훈련으로 즐겁고 영원한 추억의 "신경세포"를 가슴속에 남기려고 하는 속 깊은 참된 교육자의 길을 모색하고 있답니다.

 

 이순(耳順)을 훨씬 넘긴 교장님께서 노익장을 과시하며 맨 앞줄에서 진두지휘하여 낙오자나 부상자가 한사람도 발생하지 않도록 150여명을 안전하게 인솔하며 백록담까지 무사히 산행 완주하는 모습에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답니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생생한 교육입니다.

교장님은 오랜 경험으로 학생들이 갑자기 오버 페이스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면 발목에 쥐가 나고 인대가 늘어나 고통이 심해 산행을 더 이상 할 수 없으며, 뒤에 쳐진 학생은 낙오자가 되어 포기해 버린다며 자기 페이스를 지키며 일사불란하게 다 함께 산행을 마치도록 노련한 지혜를 발휘하였습니다.

자기의 페이스를 지킨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삶의 나침반이 되리라 생각 한다.

학생들에게 자긍심을 갖도록 하고 자신감으로 “나도 하면 된다”라는 굳은 신념을 가슴속에 안겨주었습니다.

 교장님은 평생을 교직생활을 통하여 수학여행으로 여러 차례 지리산 천왕봉을 정복하였다고 말씀하시며 현재도 지리산 천왕봉을 정복하는 극기 훈련이 수학여행 안성맞춤 코스라고 자랑하신다.

요즘 생활이 좋아져 일부고등학교는 수학여행 목적지를 해외(일본. 중국)로 정하고 있는데,

 

경제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평생토록 잊혀지지 않을 맺힌 한 덩어리를 가슴속에 품고 살아 갈 것입니다. 우리나라 산천 구석구석의 선조들의 혼이 서린 명승고적지

 답사와 수려한 명산을 찾아 건강을 다지고 아름다운 山水를 배우면서 즐기는 것이 큰 의미 있는 수학여행이라 생각됩니다.

 이번 수학여행은 날씨가 쾌청하여 축복받은 여행이었으며 우리학교의 학생들의 행운 이었습니다.

                  이상으로 간단한 여행 소감을 적어봅니다.            (2006. 5.3)

    

        재미있는 인연이야기 한 토막


우리고장 국립공원 명산인 고찰 내장사 일주문 앞에 " 福중에서 가장 큰 복은 인연 복이라고"큼직하게 적혀있다

 김룡사 (경북문경운달산)에 못생기고 미련한 찬(璨)스님이 살았다. 일찍 절에 들어왔지만 조실스님은 찬스님에게 글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래서 찬스님은 부목처럼 아궁이에 넣을 땔나무나 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 열대엿 살의 아이가 머리 깎고 출가하여 조실스님에게서 글을 배우고 있었다. 찬스님은 분한 마음이 나 견딜 수 없었다.

나이 오십이 넘도록 땔나무나 하러 지게 지고 산을 오르내렸는데, 아이는 출가하자마자 편안하게 온돌방에 앉아 불경을 배우고 있는 것이었다.

찬스님은 조실스님에게 달려가서 불만을 터뜨렸다.

"큰 스님, 저에게는 땔나무나 시키면서 왜 저 애송이 사미에게는 글을 가르쳐주십니까?"

조실스님은 소리 없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네가 이제야 내 앞으로 오는구나.''

조실스님은 찬이 이제야 공부할 준비가 되었다고 여기면서 지시를 했다.

"그렇다면 오늘부터 저 웅진전에서 염불부터 해라."

"왜 염불을 합니까?"

"경전이나 참선공부는 아직 네 근기와 맞지 않느니라."

이후 웅진전에서 시작한 찬스님의 염불이 99일째 되는 날 한밤중이었다.

갑자기 불빛 한 점이 컴컴한 허공에 나타나더니 절 앞의 산 능선을 넘어 석봉리 마을로 날아갔다. 조실스님도 불빛을 보고 있었다.

조실스님은 그 불빛이 찬의 영혼이라고 생각했다.

불빛은 당시 석봉리에 살고 있던 어느 부인의 입으로 들어갔다.

부인 역시 꿈에서 자신의 입으로 불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 남편인 권씨를 깨웠다.

"여보, 여보"

"왜 잠자는 사람을 깨우고 그래."

"불이 내 입으로 들어갔어요."

부인의 예기를 듣고 난 권씨는 길몽이라 생각하고는 그날 밤 물을 데워 함께

몸을 깨끗이 씻었다. 천문(天門)이 열리는 자시(子時)가 지나고, 지문(地門)이 열리는 축시(丑時)가 지났다. 그들 부부는 천지 만물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인시(寅時)에 합궁을 했다.

동짓달이었으므로 밖에는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다음날이었다. 두 부부는 찬스님이 웅진전에서 좌탈입망 했다는 소식을 듣고

김룡사로 달려갔다. 조실스님이 두 부부에게 말했다.

"근전래(近前來)하라."

"근전래"란 가까이 오라는 말이었다. 조실스님이 의미심장하게 한마다를 했다.

"인연이 지중하니 웅진전에 가서 기도하라"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부인 열 달 만에 아기를 낳았다.

권씨는 날이 밝자마자 기쁜 나머지 젠 걸음으로 김룡사에 갔다.

그때 조실스님은 주장자 끝에 미역을 달고 일주문 밖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조실스님, 어디로 가십니까?.

조실스님은 말없이 주장자를 권씨에게 내밀었다.

그제야 권씨는 주장자 끝에 달린 목도리 같은 것이 미역이 줄 알았다.

"큰스님, 다 알고 계셨군요. 사실은 큰스님께 이름을 부탁드리려고 달려왔습니다."

"지어주지"

"이름을 이미 점지해두셨군요."

"꿈에 찬스님을 보았으니 몽찬(夢璨)이라 해라."

권씨는 아들의 아름이 스님의 법명 같아서 불만이었지만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두 부부는 혹시나 아들을 절에 빼앗길까 염려되어 절에서 더 먼 점촌으로 이사를 갔다. 그러나 몽찬은 공부를 하러 한양으로 가려고 하던 중 어머니와 함께 소원 성취를 위해 김룡사로 기도 하러 갔다가 출가해버리고 말았다.

전설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지만 찬스님의 혼이 권씨 부인의 입으로 돌어 갔 듯 불가에서는 혼이 윤회 전생하다고 믿는다.

혼백 중에서 눈에 보이는 백(몸)은 지수화풍으로 돌아가지만 혼은 윤회 전생하는 것이다.

불경공부에 소질이 없던 찬스님이 염불과 기도를 해서 그 공덕으로 다음 생에는 대강백이 되었다는 인연 이야기인데, (동국대 초대 총장을 역임하셨던 퇴경 권상로박사의 이야기임)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엄정하고 엄밀한 인과의 도리가 담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찬스님의 간절한 마음이 다음 생에서는 끝내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놓았기 때문이다.

전생은 인(因)이고 금생은 과(果)이다. 먼지 한 알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곳이 세상이다.

먼지를 걸레로 훔쳤다고 사리지 것은 아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진 것뿐 아닌가.

어떤 물체, 예를 들어 바위가 하나 있다.

이것을 자꾸 나누어보면 분자들이 모여 생긴 것이다. 분자는 또 원자들이 모여 생긴 것이고,

원자는 또 소립자들이 모여 생긴 것이다.

바위가 커다랗게 나타나지만 그 내용을 보면 분자 원자 입자 소립자, 결국 소립자 뭉치다.

소립자는 원자핵 속에 앉아서 시시각각으로 “색즉시공 공즉시색”하고 있음이다.  

 자기가 스스로 충돌해서 문득 입자가 없어졌다가 문득 나타났다가 한다.

인공으로도 충돌형상을 일으킬 수 있지만 입자의 세계에서 자연적으로 자꾸 자기충돌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입자가 나타날 때는 色이고, 입자가 소멸할 때는 空이다.

이리하여 입자가 유형에서 무형으로, 무형에서 유형으로 되풀이하고 있다.

실제로 깊이 생각해 들어가면 이해가 되고 확실히 증명이 되는 것이란다.

제 앞길 가리지 못하면 산 사람도 중음신(망자의 혼이 극락도 못가고 지옥도 못가며 외롭게 떠도는 신)이다.

살아가면서 누구든지 無上大道(지극한 도, 즉 가장 안락하고 행복한 평상의 마음)를 성취하려면 간택하는 마음을 버려야 하는데, 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무엇이건 취하고 버리고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 즉 증애심을 완전히 버린다면 무상대도 한답니다. 불법이나 율법을 좋아하고 세간법은 미워하는 憎愛心만 버리면 지극한 도는 분명하고 또 분명하다는 것이다.

 

무상대도의 네 구절이 바로 〈신심명 - 불교의 근본골자로 지극한 보배〉의 근본 골자입니다.

지리산 천왕봉 중턱(1450고지) 하늘아래 가장 높은 사찰인 법계사(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에서는 매주 토 .일요일 11:00-14:00에 방문객에게 맛있는 산채 비빔밥을 무료로 공양하고 있습니다. 불법의 가르침대로 남을 위한 봉사와 자비의 극치이며 보살도다. 나는 아무리 고생이 되더라도 남의 안락을 위해서 노력하는 종교인의 참다운 모습입니다.  

                                                        (2006. 6 )

      

       

복천암과 한글창제의 일화

 

복천암은 속리산 법주사 산내암자이다. 문장대 가는 길과 상고암 가는 길로 갈라지는 삼거리 산길에서 왼편으로 조금 올라가면 바로 나타난다.

법주사 오른편 계곡을 따라 오르면 비구니 수행도량 탈골암이 나오고 그 다음에 물맛 좋기로 이름난 복천암이다. 아마도 복천암(福泉庵)이란 암자명도 "건강의 복을 내리는 물"이 솟는다는 근거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산길을 오르면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흐르는 계곡물을 무심히 바라본다.

흐르는 물의 시제는 현재진행형만 있다.

모든 것엔 과거의 흔적이 있지만 흐르는 물에는 지금이라는 순간만 있다. 흐르는 물은 과거로 돌아가거나 미래를 사유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을 사는 물은 온전한 삶이다. 온전한 삶에 대해서 어느 선객이 사색한 바를 다음과 적어본다.

 온전하게 산다는 것은

내가 주인공이 되어

내 정신으로 깨어 있다는 말이다.

 온전하게 산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온전하게 산다는 것은

치열하게 개성을 드러낸다는 말이다.

 온전하게 산다는 것은 나만의 꽃을 피우고 산다는 말이다.

그렇다.

물 흐르듯이(如水流) 현재의 시간에 온 몸을 다 바쳐 살아야 한다.

이것이 천 년을 하루같이 흐르는 계곡물의 무정설법이다.

운수납자(雲水納子)란 말에도 구름 흐르듯이, 혹은 물 흐르듯이 지금 이 순간에 온몸을 바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나를 찾아 떠난 길 위에 서 있을 뿐이다. 복천암은 공민왕과 세조가 자주 찾았던 암자이다.

 

그들이 찾았던 이유는 약수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금도 다녀간 왕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공민왕의 무량수(無量壽)라는 붓글씨가 그것이며, 세조와 세종의 일화들이 구전되고 있다.

세종은 암자의 신미(信眉)대사를 불러들여 한글 창제 중인 집현전 학자들에게 범어의 자음과 모음 체계를 설명케 했다고 하며, 암자의 사적비에도 기록되어 있지만 신미대사의 공로를 인정하여 한글이 반포된 후 암자에 미타삼존상을 조성 봉안케 하였으며, 이어 문종은 혜각존자(慧覺尊者)라는 호를 내렸다고 한다.

신미대사가 한글 창제에 간여한 이유는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즉 표음문자인 그이 범어 실력 때문이었다. 한글 창제를 연구하던 세종이 전국 각지에서 학자들을 찾던 중 신미대사의 범어 실력을 인정하여 발탁하였던 것이다.

신미의 고향은 영동이었고 그의 부친 김훈은 진사 급제한 후 사후에 영의정을 추증 받은 분이었다. 신미도 어린 시절에는 한학을 배워 사서삼경을 마쳤고, 출가한 후에는 해인사 장경을 열람하였는데 한문 번역이 마음에 차지 않아 범어로 된 원문을 직접 읽기 위해 독학으로 범어를 공부하여 터득했다고 전해진다.

세조는 신미 스님의 주도로 한글이 만들어진 것을 직접 4년간 직접 보았기 때문에 스님을 존경한 나머지 복천암에 법문을 들으러 자주 왔다.

권력을 잡은 세조와 신미대사 간에 서로의 신뢰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이 있다. 세조 10년(1464)에 기록된 오대산 상원사 중창 권선문이 바로 그것이다. 세조의 수기로 된 권선문은 다음과 같이 씌어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일곱 가지 중요한 일이 있는데, 삼보(佛法僧),부와 모, 군(君),선지식(善知識)이 그것이다.

삼보는 현실을 박차고 떠나을 근본으로 하고, 부모는 자식을 키우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임금은 백성을 보호함을 근본으로 삼고, 선지식은 미혹에 빠진 자를 인도함을 근본으로 삼는다.

나는 일찍이 잠저(대군시절)에 있을 때부터 혜각존자를 만나 道가 합하고, 심기가 서로 화합하였다.

 매번 속진의 길에서 나를 포섭하여 이끌고 나로 하여금 항상 깨끗함을 지니게 하여 탐욕의 수렁에 빠지지 않게 하였다.

지금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 어찌 스승(신미대사)의 공덕이 아니겠으며,

 다겁(多怯)의 깊은 인연이 아니면 어찌 능히 이토록 계합할 수 있으리오.

지금 내가 병이 들었음을 듣고 수 백리 밖에서 주야로 달려 나에게 이르렀으니 이것을 고상한 일로 삼지 않으면 어찌 중생을 제도하고 대비(大悲)라 할 수 있겠는가. 놀라고 감동하여 흘리는 눈물이 끝없다.

또한 스승께서는 나를 위해 동료스님과 함께 옷을 팔아 영찰(靈刹)을 중창하는 비용으로 쓰고자 함을 들었다.

스승이 나를 위해 마음 쓰는 것을 보니 나 역시 스승을 위해 감은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까닭에 나는 스승들을 위해 기꺼운 마음으로 얼마간의 비용을 보태 구경의 올바른 연(緣)으로 삼고자 한다.

이것이 직심(直心)의 보리(菩提)인 것이다.

이에 세자에게 부탁하여 영원히 후사(後嗣)로 드리우고자 한다.

복천암 수각에 떨어지는 석간수는 공민왕이 마시고 세조가 마셨던 복천의 찬물이다.

수각은 육영수 여사의 어머니인 이경령보살이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시주금을 받아 보시한 것이라고 한다.

암자에 세워진 다섯 개의 석등과 수각에 각각 이경령이라고 음각되어 있다.

속리산 법주사 문장대 산행시에 복천암에 찾아가 복을 내리는 물맛을 봐야겠다.

복천암의 바위 속에서 솟는 청정한 그 물맛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리라.

"현전일념(現前一念)"

 눈앞의 일을 일념으로 살피고 옳은지 그른지, 무엇을 왜 하고 있는지 한 순간도 헛눈 팔지 말고 살펴 살라는 뜻으로, 즉 삼매(三昧)라고 정의 한다.삼매란 일에 빠지되 일념으로 전체를 통찰하는 행위이다.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당달봉사라고 부른다. 자신은 지금 극단에 치우침이 없이 바르게 보고, 생각하고, 말하고, 실천하고, 바른 목적을 향해 가야하겠다.

일념으로 전체를 성찰하는 사람이야말로 지혜의 눈을 뜬, 의식이 밝게 깨어 있는 사람이다.

“현실모순을 중도로 극복하라”

현실세계란 전체가 상대모순으로 되어 있다. 모순 상극이어서 곳곳에 언제나 싸움이 그칠 사이가 없다.  물과 불, 선과 악, 옳음과 그름, 있음과 없음, 괴로움과 즐거움, 너와 나 등이다. 그 싸움 때문에 苦가 자연히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참다운 평화의 세계를 이루려면, 진정한 자유를 얻으려면 양변을 버려야한다.

 모순 상극의 차별 세계를 버리면 두 세계를 다 비추게 된다. 다 비춘다는 것은 서로 통한다는 뜻이다. 양변(兩邊)을 떠나 가운데도 머물지 아니하는 중도사상만이 오직 참다운 삶이라 한다.

모순 상극인 현실의 세계를 벗어나 걸림 없는 자유의 세계, 해탈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원통 자제한 중도(中道)에 입각하여야 한다.            (200 6. 7)

 

      속리산 복천암 (입증하는 글-조선일보) 


▲ 조용헌
산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천년고찰(千年古刹)에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한반도의 한가운데는 충북 지역이고, 충북에서도 속리산(俗離山)이다. 한국의 중심에 속리산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속리산에서 보은(報恩) 쪽으로 흘러간 물은 금강에 합류되고, 화북(化北) 쪽으로 흘러간 물은 낙동강으로 합류되며, 속리산 내(內)에서 흐르는 물은 괴산(槐山) 쪽으로 역류(逆流)하다가 한강에 합류된다.

속리산에서도 가장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는 고찰이 바로 복천암(福泉庵)이다. 그래서 복천암을 배꼽 ‘제(臍)’자를 써서 ‘속리산제중’(俗離山臍中)이라고 부른다.

 속리산의 배꼽에 해당하는 복천암은 문장대의 맥이 천왕봉으로 가면서 갈라져 내려온 맥이 뭉친 지점이다.
복천암에서 풍수상으로 주목할 부분은 물이 나가는 수구(水口)가 벌어지지 않고 잘 막혀 있으며, 수구 밖에 있는 안산의 모습이 말안장처럼 생겼다는 점이다.

풍수가들은 앞에 보이는 안산이 말안장(馬峰)처럼 생긴 터에는 말을 탄 귀인이나 고관대작이 많이 배출되거나 또는 방문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복천암은 고려시대에는 공민왕이 자주 머물다 가곤 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세조가 머물다 갔다.

 복천암에 전해져 오는 ‘복천보장(福泉寶藏)’이라는 문헌에 의하면 세조는 500명의 수행원들을 데리고 와서 3일간 머물다 갔다고 한다.
말티재 오기 전에 저수지가 있고, 이 저수지 옆을 보은 사람들은 ‘대궐 터’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세조가 데리고 온 500명의 수행원들이 여기에서 묵었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정2품송’ 소나무도 세조가 법주사의 복천암을 찾아오던 길목에 서 있던 것이었다.

이 소나무 때문에 임금의 가마가 통과하기 어렵다고 걱정하였는데, 막상 임금 가마가 통과하려는 순간에 저절로 소나무 가지가 들어 올려져서 무사히 길을 지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소나무에게 정2품의 벼슬을 주었던 것이다.
왜 세조가 한양을 떠나 고생을 하면서 깊은 산속인 속리산 복천암까지 찾아왔는가? 당시 대학자이자 고승(高僧)이었던 신미대사(信眉大師·1403~1480)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복천암에는 이 신미대사가 세종 대에 집현전 학사로 참여하여 한글을 만든 장본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신미(信眉)대사와 한글  (입증하는 글- 조선일보)


▲ 조용헌
속리산 복천암에 전해져 오는 ‘신미대사(1403~1480) 한글 창제설’을 요약하면 이렇다. 신미(信眉)는 속성(俗姓)이 영산김씨(永山金氏)인데, 영산김씨 족보를 추적해보면 ‘집현원학사(集賢院學士)’로 ‘득총어세종(得寵於世宗)’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집현전학사’였고,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는 말이다.
 
이처럼 집안 내에서는 신미가 집현전학사였다고 내려오지만, 조선왕조실록에는 그가 집현전에서 일했다는 기록이 없다.
 불교 승려는 무대 뒤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시대였던 것이다.
세종은 죽기 전에 유언으로 신미에게 ‘우국이세 혜각존자(祐國利世 慧覺尊者)’라는 법호를 내렸다. 하지만 유생들의 줄기찬 반대로 인해서 ‘우국이세’(나라를 위하고 세상을 이롭게 했다)라는 표현은 삭제되고, ‘혜각존자’라는 단어만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다.

신미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범어(梵語)와 티베트어로 된 불교경전에 정통했던 대학자였으므로 혜각존자라 할 만하다. 이러한 인물이니까 세종 사후에도 세조(世祖)가 불교승려인 신미를 만나러 속리산까지 찾아왔던 것이다.

한글이 창제(1443)되고 나서 불과 몇 달 후에 집현전 실무 담당자인 부제학 최만리를 중심으로 한 유학자들이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상소를 올린다. 그 반대 배경에는 훈민정음의 원리적 근거가 유교가 아닌 불교였기 때문이고, 그 불교의 한가운데에 신미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공교롭게도 한글 창제 무렵에 간행된 국가적인 번역사업이 불교경전이라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면 24권 분량의 ‘석보상절(釋譜詳節)’이 그렇고, ‘능엄경언해(楞嚴經諺解)’도 그렇다.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도 찬불가(讚佛歌) 아닌가. 쉬운 한글을 만들었으면 ‘논어(論語)’‘맹자(孟子)’와 같은 유교경전들을 번역해서 백성들이 읽게 해야지, 왜 하필이면 불경을 번역했단 말인가.
‘월인석보’는 세종의 어지(御旨)가 108자이고, ‘훈민정음’은 28자와 3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찰에서 아침 저녁으로 종을 칠 때 그 횟수는 28번과 33번이다. 하늘의 28수(宿)와 불교의 우주관인 33천(天)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신미 창제설’의 결정적인 근거는 신미가 당대 최고의 범어전문가였고, 한글이 범어에서 유래하였다는 주장이다.

 

               좋은 헤어짐은 재회의 기쁨

 

 리들의 인생역정은 끊임없이 만나고 만나면 헤어짐의 연속이랬다.

사람의 운(運)에는 세가지 즉 천운(天運), 지운(地運), 인운(人運)이 있다.

천운은 하늘이 정해준 운으로 내 부모가 아무개라는 것, 내 성별이 남자 혹은 여자라는 것 등 바꿀 수 없는 운을 말한다. 지운은 타고나 재능이다.

그림이나 연기, 노래 등 타고난 재능은 지운이 결정한다. 아무리 천운과 지운을 잘 타고 났어도 마지막 인운에서 그르치면 삶이 힘들어진다.

 인운은 사람 복을 말한다. 인생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으며, 그 사람이 내 인생에 도움이 됐는지 안됐는지는 인운으로 정해진다.

좋은 인연을 만나면 하루아침에 부자도 될 수 있고 출세도 할 수 있고 삶이

풍요롭지만 나쁜 인연을 만나면 수 초 안에 인생의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다.

정해진 운처럼 보이지만 다행히 인운은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있다. 인운을

풍요롭게 가꾸기 위해서는 먼저 천운과 지운을 탓하거나 원망해서는 안 된다.

부모를 탓하고, 시대를 탓하고, 직장을 탓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다. 부모와

시대를 탓하는 것은 자신의 근본을 부정하는 것이다.

설사 시대와 부모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더라도 이를 탓하지 말고 좋은 방향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직장을 불평하고 욕하는 사람은 잘 살 수 없으며 잘된 사람 보지 못했다. 무엇을 탓하기 시작하면 운이 오지 않는다.

얼굴에 불평불만이 가득한 사람에겐 운이 다가왔다가도 도망쳐 간다.

인운은 마지막 순간에 결정된다. 사람의 만남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이별의 순간에도 처음 만났을 때의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더 좋은 인운을 만나고 복을 받게 된다.

작은 인연도 큰 인연으로 만드는 사람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다.

복은 자신이 전생에 지은 카르마(업)와 현생의 마음씀씀이에서 비롯된다.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의 명장면은 단연 황태자와 케티의 이별장면이다.

케티는 황태자를 보내주며 무덤덤하게 "안녕히 가세요."하고 인사한다.

 

 닫히는 문 사이로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던 케티는 문이 닫히자마자 눈물을 흘린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밝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영원히 기억되길 바랐던 케티의

사랑에 많은 관객들은 큰 감동을 받는다.

이들의 이별처럼 사람과 헤어질 때 원망과 미움 없이 처음 만난 그 순간처럼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선다면 더 좋은 인운이 찾아온다.

인연은 맺을 때도 중요하지만 접을 때도 중요하다. 상사나 직장동료, 친구, 애인과 안 좋게 끝나는 사람은 앞으로의 인운도 좋을 리가 없다.

인운으로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아무리 힘들더라도 끝을 잘 맺어야 한다.

 회향(回向-스스로 쌓은 공덕이나 수행을 사람들이나 살아 있는 생명체에게 돌리는 일)을 잘 하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큰 운을 받게 되어 있다.

자신에게 큰 운이 찾아오더라도 절대 교만해지지 말고 반드시 조상과 주위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해야 한다.

 물고기는 물 밖에 나와서야 물의 고마움을 알게 되고, 사람은 폭군을 만나야지만 전자의 성군을 그리워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있을 때 있음을 고마워할 줄 모르고, 행복할 때 행복을 모를 때가 많다.

부모 친지들이 곁에 있을 때는 그 고마움을 알지 못하다가 떠나가고 난 다음에야 안타까워한다. 그 분들이 항상 영원히 있으리라는 것은 착각이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요, 회자정리(會者定離)이다. 태어나면 멸하고 만나면 헤어진다.

그러나 간다고 해서 아주 가는 것은 아니며, 헤어짐은 만남의 약속이다.

인생에서 가장 큰 즐거움은 먹는 즐거움, 생각하는 즐거움, 자연과 벗 삼는 즐거움이란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한다면 아마도 좋은 인연을 만나는 즐거움일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복 중에서 인연 복이 으뜸이라고 부처님께서는 설파하였다.

인연복은 자기가 전생에 지은 복도 되지만 지금 만난 인연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가,

사람을 어떻게 잘 만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잘 사는 사람은 작은 인연도 소중히 생각하며 큰 인연으로 만들지만, 못 사는 사람은 아무리 큰 인연이 곁에 있어도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한다.

좋은 인연을 갖고 싶다면 "항상 줘라, 빈 곳에 줘라, 주고 난 뒤 잊어버려라."라는 말을 잊지 마시기 바란다.

인연을 만들기 위해 누군가에게 무엇을 해주고 그 대가를 바란다면 이는 인연을 그르치는 나쁜 방법이다. 또한 인연을 만날 때는 잘 판단하고 관찰하여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악연을 좋은 인연일 줄 알고 가까이 두는 실수를 저지른다.

인연을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아무리 좋은 인연이라도 언제 나쁜 인연으로 변할지 알 수 없다.

 항상 주변에서 고맙고 감사하다고 전하는 인연도 떠나가기 마련이다.

그 떠남의 자리엔 또 다른 인연이 자리할 수 있고 또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만남과 이별에 구애받지 않고 좋은 인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다'는 연기법의 가르침처럼 인연법을 잘 따라야 한다.

인연법을 중시했던 부처님도 세 가지는 하실 수 없다고 하셨다.

“첫째 모든 중생을 제도할 수 없고,

둘째 자신이 지은 정업은 면할 수 없고,

셋째 인연 없는 중생은 제도할 수 없다. “ 이처럼 인연은 정말 중요한 것이다.

현재 만나고 있는 인연을 가장 소중함을 마음속에 간직토록 하여야한다.

“전삼삼 후삼삼(前三三 後三三)이라는 법문이 있다.

앞으로 세발자국, 뒤로 세발자국이면 제자리다. 즉 지금 내가 서 이 있는 자리에서 큰 뜻을 이루고 현재에 충실하라는 가르침이다.

지금 맺고 있는 인연뿐 아니라  내가 서있는 이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우치라는 의미이다. 

”저는 인복도 없고 재복도 없습니다.“라고 한탄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스스로 박복하다고 생각하고 믿는다면 오던 복도 되돌아간다고 한다. 또 하늘이 자신에게 능력을 주지 않는다며 한탄하는 사람도 있다.

하늘은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능력’을 주었다. 내가 하늘에게 마음을 주지 않으면 하늘도 내게 마음을 주지 않는다.

우주는 이처럼 철저한 거래 법칙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만물에는 차이가 존재할까요. 사람은 처음부터 똑같지 않게 태어났다. 체력, 지적능력, 학력, 아름다움, 재산 등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차이는 바로 자기 자신이 전생에 지은 業, 카르마에서 오는 것이란다.

인과응보(因果應報)다.

차이 때문에 괴롭고 힘들지만, 달리 생각하면 이러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무한한 향상과 진화가 있으며 인생도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차이를 인정할 때 평등해지며 발전할 수 있다.

차이를 인정하되 차이 있는 사람을 다르게 대하는 차별은 해서는 안  된다.

 원(怨)과 한(恨), 차이와 차별을 명확히 구분하여 그릇된 감정으로 업을 짓지 말아야한다. 긍정적이며 바른 마음으로 하늘과 거래를 하면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사람은 언젠가 전 생애에 응축했던 기운을 모두 방출하는 떼가 온다고 한다.

그날을 위해 한 시도 대충대충 살아서는 안 된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여 이 생애 마지막 순간에 피어오를 꽃 한 송이를 항상 가슴 속에 간직하고 부디 하얀 눈꽃처럼 청명하여 보는 이들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는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나와 맺은 인연과 잘 지내도록 하고 좋게 헤어져야한다.                        (2006. 9)

            

          공원에서 만난 인연들

 

  나의 삶의 보금자리인 아파트 주변에는 도심속의 푸른 숲이 우거지고 아담하게 가꾸어진 공원이 두 군데나 자연 상태로 있어 가벼운 운동이나 산책코스로 안성맞춤이고, 참선(參禪) 공간으로 내가 틈만 나면 찾는 안식처(安息處)다.

나이 먹는 것과 시간은 같은 속도로 강물처럼 도도히 흘러간다고 하더니만 20여 년 전 아파트 붐이 일어 주거문화가 안착될 즈음 처음 이곳으로 이사 올 당시는 우리 아파트가 변두리 지역에 위치해 유일하게도 죽순처럼 우뚝 솟은 고층이었으나,

서부신시가지 개발에 밀리고 세월이 흘러 현재는 도심 한가운데 서 있고 8차선 백제로는 질주하는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내뿜는 매연으로 공기가 혼탁하고 소음으로 인해 주거환경이 점점 쇠락(衰落)되어 가고 있다.

천만다행으로 보금자리 인근에 황토 흙 밭과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녹색공간인 화산 소공원이 있으며, 노란개나리, 느티나무와 밤나무, 싸리나무, 아카시아나무가 함께 어우러진 효자공원은 동서남북 확 트인 곳에 천금짜리 그늘이 있어, 서해의 미풍이 솔솔 불어대며 여름철에는 휴식공간으로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시시 때때로 찾아든다.

공원에는 할아버지들의 놀이 터전인 모정(茅亭)이 있으며, 할머니들만이 휴식하는 간이 사랑방(舍廊房)이 별도로 시설되어 피서지로 활용되고 있다.

할머니들은 무슨 얘기 거리가 많은지 몰라도 옛날 살아온 일들을 회상하며 한담을 즐긴다. 나는 겨울철만 제외하고 봄철부터 가을까지는 틈만 있으면 손에 잡히는 책 한권 들고 흙을 밟으러 푸른 숲이 기다리는 공원으로 달려간다.

공원에는 나이 지긋하여 머리에 하얀 서리가 내려앉은 퇴직자나 각양각색의 한량(閑良)들이 주류를 이룬다. 얼굴은 삶에 찌들려 시름이 가득한 사람도 모이고,

젊은 시절 각고의 노력으로 자기의 뜻을 이루어 고생하지 않고 편한 삶을 살아온 복 받은 선량한 사람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대부분 한 생을 보람 있게 잘 살아왔고 아들 딸 다 가르치고 성장시켜 한가하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화산공원(전주여상 울타리와 경계하고 있음)엔 모정이나 의자달린 널따란 평상에서 삼삼오오 둘러앉아 장기를 두거나 바둑에 몰두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화투놀이를 벌이고 있다.

효자공원에서는 할아버지들이 윷놀이를 재미나게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화투놀이는 네 댓 명이 한 조가 되어 100원짜리 동전치기 고스톱 판으로 시끌벅적 희희낙락 웃음과 시비 다툼이 떠나지 않으며 즐겁게 여가를 보내고 있다.

고스톱판은 보통 두서너 팀이 게임을 하고 있는데 곁에서 화투놀이 하는 광경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판에 매료되어 흥미도 있고 시간도 금세 지나간다.

노후에 그늘 밑에 앉아 여가를 즐기는 일은 공덕을 쌓아 복 받은 사람들이다.

 공원에 찾아가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오랫동안 소식이 두절된 직장 옛 동료도 만나고 교육계 선배와 정다운 동향인도 반갑게 만나 쌓인 정담을 나눈다.

나는 공원에서 마음씨 좋은 동갑내기 두 사람의 친구를 허물없이 사귀었다.

한 친구는 사업마무리하고 하루 일과를 공원에서 흘러가는 세월을 낚으며 마음 비우고 유유자적 소일하며, 한 친구는 퇴직했으나 전문기술이 있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오후 해질 무렵이나 주말에는 어김없이 공원을 찾는다.

요즘도 공원에만 찾아가면 두 친구는 반가워하고 정이 들어  막걸리 한잔 마시자고 청한다. 정에 못 이겨 한잔 마신다. 따스한 정이 넘친다.

오는 정 가는 정 한잔 내가 베풀면 곧 바로 돌아온다. 뿌린 만큼 거둔다.

 퇴근 후 날마다 간소복으로 갈아입고 학교 운동장을 돌아 대 화산공원을 올라 1시간쯤 걸으면 소화산공원에 도착한다. 숲속을 걸으면서 가벼운 운동도 하고 맑은 산소와 우주의 정기를 실컷 마시며, 사계절 변화무쌍한 주변 풍치에 매료되어 추억과 환상의 순간으로 빠져들며 심호흡도 하고 땀을 흠뻑 흘리며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소화산공원은 키다리 토종 소나무가 즐비하여 그늘을 만들어 따가운 햇볕을 가리며, 요소요소에 벤치와 의자달린 평상이 설치되어 독서하기도 좋고 명상하기에 매우 좋다. 독서하다 졸리면 잠간 오수(午睡)도 즐길 수 있다.

 화산공원 모양새는 동서로 약간 길게 뻗어내리고 타원형으로 부지가 평평하여 소나무 숲만이 있으며 공원 가장자리로는 빙 둘러 산책로를 조성하여 10바퀴만 걸으면 등줄기에 땀이 흐르고 운동 효과가 크다. 야밤에도 운동하기 위하여 둘레를 걷는 선남선녀가 즐비하다.

 한편 효자공원은 잡목 숲속으로 경사진 오르막 내리막이 있어 가벼운 산행이 되고, 각종 운동시설이 설치되어 운동이 잘 되며 공간이 넓어 활동하기에 편리하다.

잡초와 잡목이 무성하게 식재되어 있으며 지저귀는 새들도 많다.

어느때는 뻐꾸기 울음소리도 애잔하고 참새와 까마귀 굴뚝새 매화부리와 딱새, 소쩍새가

공생하고 있다.

도심속에서 지면이 대부분 아스팔트나 시멘트 콘크리트로 흙을 덮어 버려 복사열(열섬현상)을 몰고 오는 요즘에 공원에서 부드러운 흙을 밟고 걷는 기분은 상쾌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보약중의 보약은 흙을 밟고 많이 걸어야한다. 하루에 1시간 넘게...

흙만큼 우리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은 드물 것이다. 인간은 흙에서 태어나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태초에 조물주는 우리 인간을 흙으로 지으셨다고 했으니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우리는 흙으로 만들어지고 흙을 토대로 하여 활동을 하고 흙에서 성장하는 것 등을 먹으면서 살아왔다.

누구에게라도 할아버지, 할머니 생존하시냐고 물어보면 “돌아가셨다고” 답한다.

어디로 돌아갔을까? 저세상인 천당 아니면 지옥으로 또는 극락정토로....

 의문의 꼬리를 물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흙으로 돌아갔음을 이해한다.

종교적인(불가) 의미로는 영혼의 고향으로 돌아가셨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흙은 우리의 삶의 터전이며 고향이다. 고향에 대한 애착과 향수는 고향산천에 대한 애착이며 나아가서 얼이 깃들어 있는 고향의 흙에 대한 향수일 수도 있다.

  '흙을 밟고 사는 마음'에서

흙은 영원한 인간의 고향이다. 흙을 밟고 살아야 우주의 원리와 인간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고마움을 알 수 있다.라고 설파하고 있다.

나는 어릴 적 하루 종일 흙과 더불어 밟고 살아왔다. 농촌에서 태어나 성장하면서 논두렁과 야산을 헤매면서 흙과 잡초 속에서 살았다.

송아지를 몰고 흙을 밟으며 꼴을 먹이면서 영어단어를 외우고 퇴비를 조성하기위해 지게를 메고 꼴을 베어 쌓았다. 흙냄새는 독특하다. 초등학교 시절뿐 아니라 중학교 등하교 길을 들로 야산으로 걸어 다니며 흙과 함께 살아왔다.

지난 일을 회상해 보면 아쉬움도 많았고 아름다운 추억도 뇌리에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 일을 회상해 보면 그 자체로 끝나버린다.

우리에게 기회는 두 번 다시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일회성의 삶을 살아가는 처량한 인간일 뿐이다. 종착역을 향해 달리는 열차와 같다.

옛날을 되돌아봄은 다 부질없는 일이다.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나는 도심속에서 살고 있으면서 공원에서 운동하고 산책하며 흙을 사랑하면서 만지고 밟고 또 흙냄새를 맡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살고 있어 건강하고 행복하며 즐겁다. 공원을 찾는 인연님들 모두 다복(多福) 건강하고,

무병장수 (無病長壽)하기를 염원드린다.            (2006. 8  공원을 즐겨 찾는 나그네가 씀)


     

             고스톱과 정신건강

 인간의 건강관리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가 정신 건강이며, 두 번째는 마음을 다스리는 건강이고,

세 번째는 육체 건강이다.  육체 건강을 잃으면 살아가는 데에 큰 고통을 겪고, 마음 건강을 잃으면 삶이 괴로움에 지쳐 자포자기 해 버리고, 정신 건강을 잃으면 희로애락(喜怒哀樂)의 모든 것을 잃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위 세 가지의 건강을 함께 지키며 하루하루를 즐겁고 보람d있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자.

첫째 육체적 건강에는 본인의 체력과 체격에 알맞고 좋아하는 운동을 쉬지 않고 꾸준히 규칙적으로 열심히 하면 足하고, 두 번째로 마음을 다스리는 건강관리는 삶에 괴로움과 경계가 오더라도 미혹(迷惑)함이 없이 슬기롭게 대처하는 것으로,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도(祈禱)와 참선(參禪), 명상과 수신치기(修身治己)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며(無時禪과 無處禪-시간과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마음공부), 세 번째의 정신 건강관리는 고스톱 열심히 치면 만사형통이다.

그렇게 하면 쌓인 스트레스(疲勞)가 확 풀리고 기분이 전환되며 노화(老化) 억제와 치매(癡呆)예방에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삶에 활력소가 생기고 전신운동이 되어 흥미진지(興味眞摯)할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정신건강에 필요하고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Go-Stop에 대하여 글을 아니 쓸 수 없지 않는가.

고스톱 문화가 어디서 발생하여 언제쯤 우리나라에 번지기 시작했는지는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일본에서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다.

고스톱은 화투(花鬪 -꽃싸움)놀이지만 기교와 꼼 수가 없고 운칠기삼만이 있다. 우리 조상(남자)들은 놀이문화가 윷놀이, 제기차기, 구슬치기, 잦치기, 쥐불놀이, 썰매타기, 방울치기, 딱지치기, 연날리기 등 자연과 땅을 접하는 놀이가 대부분 이었다. 지금은 명절 때만 가족이 모여 윷놀이만이 겨우 명맥을 유지할 뿐이다.

화산공원에서는 시원한 소나무 그늘아래 날마다 평상이나 사랑방에서 한량들이 여가를 이용하여 틈만 나면 뭉친다. 두 서너 팀이 판을 벌이는데 100원짜리 동전치기로 구경하기에 흥미진지하다. 팀원끼리 호흡이 맞아 서로간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웃음을 나누는 소리가 보기도 듣기도 좋지만, 어느때는 사소한 실수로 인하여 시시비비가 잦아 언성이 높아져 얼굴상을 찌푸려 보기가 좋지 않다.

어느 누가 말했던가. 고스톱은 人生의 축소판이라고....  맞는 소리다.

인간은 이승에 태어날 때부터 도박성이 있으며 모험심이 강하고 어떤 기대감이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단다. 우리 모든 중생(衆生)들은 오늘도 어떤 희망과 기대 반으로 속절없이 살아가지 않는가. 속 좁은 나 자신부터 막연히 그런 희망과

기대가 있으므로 삶이 윤택하다. 고스톱판에서는 싸놓은 것을 까서 먹으면 기분이 황홀하다. 나는 고스톱을 종합 레저 스포츠 (leisure sports)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이유는 믿거나 말거나, 다음과 같이 궤변(詭辯)을 토한다.

첫째가 고스톱은 팔운동과 무릎관절운동에 좋다. 단좌(團座)하고 움직이므로

무릎 관절의 신축작용이 잘 되어 육체적 운동에 알맞고 全身운동이 된다.

물론 장시간 치면 허리도 아프고 무릎 관절이 시리어 오히려 역효과가 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고스톱 치는 시간은 서넛 시간이 안성맞춤이라고 생각 든다. 무엇이든지 넘치면 부족함만 못하니까.

둘째는 고스톱을 치다 보면 사람들의 관(觀)을 바로 읽어 그 사람의 살아가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물욕에 대한 애착심과 品格을 꿰뚫어 볼 수 있다.

그리고 공업중생 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읽을 수 있어 마음 운동도 된단다.

셋째는 정신 건강 운동이다. 종교를 믿는 것도 마음 편하고 어떤 소망과 믿음 속에 生을 살아가는 것도 정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역시 고스톱은 스트레스 풀고 나를 잊는 無我의 삶에 완전히 매료(魅了)되기 위해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고스톱 치는 시간은 왜 그리도 빨리 지나가 버리는지 누구나 다 공감한다. 고스톱 치는 시간만은 정말로 그 판에 빠져들기 때문에 아무런 잡념이 없단다. 고스톱 판을 즐기는 세 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있는데 유형을 보면,   첫째가 무료(無聊)한 시간을 道友들과 어울려 운칠기삼(運七氣三)으로 몇푼씩(똥)떼어 점심이나 술 한잔으로 회포를 풀고 희희낙락(喜喜樂樂)거리며 友情을 더욱 돈후(敦厚)히 하고 삶을 더욱 풍요롭게 즐기는 사람이 있으며,

두 번째는 도박성이 있고 승부욕과 집착이 강하며 탐욕(貪慾)이 많아 남의 돈을 따서 용돈 쓰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 번째는 접대 고스톱으로, 애경사나 어쩌다 생긴 모임자리에서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판에 이기고 지는 부담 없이 그저 흥미롭게 Go만 하면 된다. 우리는 위 세 가지유형 중에서 어디에 해당되는가를 자문자답 해 보기 바란다. 본인의 생활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느 누구라도 100원짜리 고스톱 판에서 2만원정도 넘게 잃게 되면 가슴이 쓰리고 속이 상하다. 나 자신부터 아직도 수양이 부족하여 그렇겠지만 물욕을 초월하여 여가를 선용하고 오락으로 항상 즐�! 탓� 고스톱 판으로 생각하도록 하여야겠다. 우리는 정신 건강과 삶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고스톱 판을 즐겁고 흥이 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여 공감토록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항상 소욕지족(小慾知足-적은 욕심으로 만족)의 생각과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고스톱 판을 즐겁게 해야 할 것이다. 정신 건강을 위하여 나도 氣가 있는 한 고스톱 열심히 쳐서 삶에 활력을 갖고 인생도장으로 새기며 즐겁게 살련다.    (‘06. 삼복더위에 공원을 찾는 나그네)

    

일본 간사이(關西)지역 방문기

                                  

극락정토(極樂淨土)에서 편히 쉬고 계시는 선친께서는 일제강점기에 징용당해 규슈(九州)탄광에서 2년 여 간을 탄가루를 마시며 갖은 고초를 겪다 조국의 해방을 맞이하여 구사일생으로 환향한 후 평생을 병고와 시름, 간난신고를 겪으며 자녀들 뒷바라지만 하시다 저세상으로 떠난 아픈 상처가 나의 뇌리 속에 남아있어 그간 일본 방문기회가 있었으나 생애에는 찾지 않으리라는 신념으로 살아왔으나,

뜻하지 않게 교장님 몫을 배려에 의하여 일본 관서광역연휴협의회 초청을 받아 4박5일 일정으로 일본 땅을 찾았다.

첫날 설레는 마음으로 밤잠을 설치고 인천공항에 8시까지 약속되어 새벽4시 리무진을 타기위해 3시25분쯤 코아에 도착하여 표를 구하니 월요일이라서 매진이 되어 5시발밖에 없다고 한다.

방심한 탓에 예매를 안했으니 이걸 어쩌나...

한 밤중에 버스를 타려고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모습에서 해외여행객이 부쩍 늘어났음을 실감한다.

가슴이 철렁하여 후회해도 소용없고 서성거리고 있는데 반갑게도 인천택시가  호객을 하고 있어 2명이 버스요금의 곱절이 넘는 값으로 서해안고속도로를 질주하여 무사히 공항에 도착하여 10시 비행기에 올랐다.

 60생을 헛되이 살았다는 자괴감을 느꼈다. 삶을 살아가면서 미리미리 계획을 수립하고  준비하여 한 치의 오류가 없도록 마음의 준비를 철저히 하여야 하겠음을 다시 한번 일깨웠다.

인공섬으로 조성된 오사카(大阪) 간사이국제공항에 12시경에 내리니 서울소재 서라벌고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해 정착하여 국위선양하며 돈벌이하고 있는 인품 좋은 건장한 체구의 박학다식한 40대 초반의 가이드의 안내로 따끈한 우동과 초밥으로 점심을 채우고 효고현(兵庫県)으로 달렸다.

1601년에 축성되어 전 세계에서 단하나 밖에 없는 일본최초로 지정된 세계문화유산,

국보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5중7층의 히메지성(姬路)의 천수각을 2개의 목기둥으로 지탱하고 있는 정상까지 밟아보고 감탄하였다.

히메지성은 일본을 대표하는 최고 완성도의 성과 건축물이며, 목조성곽과 석조 성벽, 흰색 토벽(점토에 자갈을 섞어 쌀뜨물로 굳힌 기름벽)으로 긴 역사를 통해 한번도 전쟁과 화재를 겪지 않은 건축물이란다.

고베(神戶)에서 1박한 후 1995.1.17 대지진으로 수많은 인명피해와 건물을 파괴시킨 당시 피해상황을 재현시키고, 경각심을 주기위해 건립된 “사람과 방재 미래 센터”에서 대지진 재해의 경험과 교훈을 후세에 알리고,

재해에 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한 실물자료와 영상을 관람하고, 우리나라도 지진발생의 경각심과 사전에 만반의 준비를 하여야함을 실감하였다.

옛 일본의 수도(약1000년간)이며 역사와 전통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그들 마음의 고향인 고도의 교토(京都)로 이동하여 연못가의 금벽목조건물인 금각사(金閣寺)를 구경하고 밤에는 교토 역 주변 빌딩과 역사 앞 7층높이의 육교와 광장을 산책하고 신비스러운 건축기술에 탄복하였다.

일본은 과연 독하고 무서운 나라라는 것을 다시금 실감한다.

대 낮의 길거리에는 인적이 드물고 도시가 썰렁하며 실업자가 별로 없는 것 같고, 나이에 상관없이 노는 사람이 없으며, 특히 문화유적지 안내원 또는 통행료 징수원과 명소나 명품 종사원은 고령(70세이상)인 분이 일하고 있으며,

길거리의 젊은이는 핸드폰이나 안경 착용하는 사람 별로 없으며, 야간 길거리는 가로등이나 네온사인 등이 없어 적막의 거리로 음침하다.

나는 어릴적 등잔불 밑에서 공부하고 책 읽으며 살아왔기 현재의 시력이 밝은가 보다.

텔레비나 컴퓨터 문화가 우리나라 청소년의 시력을 보호하지 못하며 우리나라는 너무 밝게 살고 있다 낭비가 심하다. 자원을 아껴야 한다.

밤 8시만 되면 대부분 상가는 문을 닫고 9시만 되면 잠자리에 든다고 한다.

일류호텔에서 4일간 각지에서 숙박했는데 실내 조명등이 밝지를 안했다.

 도로폭은 4차선 이상은 없으며 인도는 우리나라 두배 정도 넓어 대부분 자전거로 활동하고 자가용은 많으나 집안에 정차하고 휴일에만 야외활동이나 필요시만 운행한다.

식사시 수저는 없으며 반찬은 본인이 먹을 양만큼 소량으로 음식물 쓰레기가 전혀 발생치 않고 남기지도 않아 낭비를 줄여 환경오염이 되지 않는다.

길거리의 담배 꽁치나 쓰레기는 없으며 등산객도 전혀 보지를 못했다.

상점의 간판은 겨우 눈여겨 보일정도로 조그맣게 걸었고, 플래카드는 없었다.

도심거리에는 우리나라 교회만큼이나 사원과 신사(神社)가 많아 일본인들의 정신수양과 도장으로 삼고 있다.

자연환경이 사면팔방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로 태풍과 지진이 빈번하여 불리한 지리적 여건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 국민들 모두가 몸에 베어있나 보다.

주택은 여러 도시 둘러봤으나 아파트는 별로 없으며 수십 년 지난 2층고가로 퇴색되지 않고 균열이나 파손되지 않은 기와지붕으로 아담하고 알뜰한 아주 적은 집이 소박하고 아름다웠다. 큰 집이 없었다.

 열을 방지하기 위해 콘크리트 지붕은 없으며 섬세하고 정교한 기와지붕으로 건물이나 주택에 페인트칠(도장)은 전혀 보질 못했다.

정말로 알뜰하고 근검절약하며 내실 있게 살아가는 민족으로 본받을 점이 너무 많다. 교토 변두리 농촌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교토subaru 고등학교를 방문하였는데 1985년도에 개교하였고, 회계과. 기획과. 정보과학과를 둔 실업계 직업전문학교로 교육목표가 강인한 정신과 신체단련으로 생기와 활기가 넘쳐 자기 힘으로 진로를 개척하고 체험학습으로 취업과 진학을 겸하고 있다.

컴퓨터수업 참관하였는데 40명 학생이 보조교사와 함께 학습분위기 진지하고 열정이 있었다. 수업시간 전에는 교사에게 실장의 구호로 전학생이 일어나서 “잘 부탁합니다, 종료시는 ”감사합니다“라고 정중하게 인사하고 있다.

학생들은 인사성이 밝고 친절하며 순박하다.

 더욱 놀라움은 매일 청소시간이 50분으로 교사와 함께하며 한달에 1번씩 대청소를 실시하고 있고,

교사용은 낡은 철제책상을 사용하고 있으나 학생책걸상은 신품으로 상판은 넓고 회전의자이며, 천정에 냉난방시설이 되어있고 교내외 구석구석이 청결하고 깔끔하게 정돈되었으며 시설관리가 수준급이다.

 학교운영위원회나 자모회등은 구성되지 않고, 총학부모 모임인 P.T.A가 구성되어 의무적으로 가입하여야하며 연간 회비는 6.000엔(오만원정도)이며, 임원회의를 2개월마다 개최하며 학교행사나 체육대회시 참관한다.

그리고 모든 학교운영은 학교장이 교직원과 협의하여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오사카 근교에 위치한  명문 MAKINO 인문고등학교를 방문하여 교장님으로부터 현황을 청취하고 순회한바, 운동장은 넓으며 (약9천평정도-교장님은 협소하다고 함) 창립30주년이 되어 시설은 낡아 건물은 퇴색되고 녹슨 철제 캐비닛과 책상을 활용하고 있으나,

학생들의 90%가 적성에 맞는 소질을 기르고 다양한 클럽활동으로 예.체능(검도. 유도 .축구. 농구부 등)부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95%가 자전거로 통학하고 있으며, 보충수업은 1주일에 3시간이며 방학중 보충수업은 30%참가로 저조하며 무료로 실시하고 있다.

취업학생은 없으며 학생 대부분이 대학에 진학하고 있는 오사카지방 24개학교중 3위수준이라고 자랑한다. 학생 스스로 개성을 살려 공부를 잘하고 있다.

일본동전 10엔 속에 새겨져 있는 우지(宇治)에 극락정토(極樂淨土)를 재현하기위해 1000여년전에 지어진 뵤도인(平等院)절을 관람하고,

 절 입구에서 전통 우지차 다도(茶道) 체험을 하고, 숲이 우거져 주위 경관이 아름답고 만병통치에 효험이 있다는 성령수 물이 있는 청수사(淸水寺)오르는 길목은 관광객이 붐비고 상점은 즐비하여 번화하고 혼잡스럽다.

일정에 없는 가이드 안배로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의 지시에 의하여 전리품으로 베어간 가련한 선조님들의 이총(머리와 귀와 코 무덤)을 참배하니 숙연해지고 눈시울을 적셨다.

 5세기경 백제시대에 王仁박사(전남영암군유적지)가 논어와 천자문을 일본에 전해 문맹인 일본인들을 교육 시키고 문화를 발전시킨 묘소를 참배하였고, 마침 당일 광주지역 후손들이 2억원을 모아 묘소를 정비하고 있어 자긍심과 가슴 뿌듯함을 느꼈다.

교토의 사립명문인 同志社대학 화단내에는 일제강점기시절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서시) 읊었던 민족시인 윤동주(尹東柱)와 순수한 우리말 詩, “향수”로 한국의 시단에 커다란 영양을 끼친 정지용(鄭芝溶)시인의 詩碑가 의연하게 자리 잡고 있어 흐뭇하였다.

기회가 주어지면 일본 땅 다시 한번 찾아가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싶다.    (2006. 9)

 

 

   사계절 꽃이 활짝 웃는 숲 속 배움의 터전

                                                                         

                                                                                                           

 찬란한 생명의 기운이 세상에 넘치고 꽃망울 터지는 소리에 대지는 술렁이고 사무실 창 밖으로 싱그럽게 쏟아지는 아침 햇살이 황홀하고 눈부시다.

교정 앞 화단가에는 새봄이 알리는 파릇파릇한 새잎들이 눈뜨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새싹들이 쑥쑥 자라고 하얀 목련과 샛노란 개나리가 슬며시 얼굴을 내밀더니 만개하여 화사하며 빨간 동백과 함께 꽃밭을 이룬다.

탁 트인 널따란 운동장 가장자리에는 화산공원 산자락이 백제교까지 뻗어오다 뭉그러져 반 도막난 동산이 바다 한가운데의 섬처럼 우뚝 솟아 뽐내고 서있다.

이곳 녹지 동산은 연초록 녹음이 우거지고 은사시와(미루나무) 상수리 나뭇가지가 한들거리며, 실바람은 교실 깊숙이 학생들에게 안겨져 한 낯의 졸음을 쫓고 학습 분위기가 한층 고조되고 있다.

학교 앞 남천(南川-전주천) 맑은 물에는 송사리와 쉬리떼, 모래무치와 가물치 역수(逆水)하며 뛰어 놀고 고수부지(高水敷地 - 둔치) 십리 길은 꽃밭, 풀밭에 사람길이 조성되고 잔디, 억새, 들꽃, 유채 꽃이 만발하여 오순도순 사랑스런 속삭임이 들린다.

 화산공원비탈에서는 실 바람결에 실려오는 정겹고 구슬픈 뻐꾸기와 소쩍새 울음이 교실 안까지 묻어온다.

교정 울타리에는 가시 달린 넝쿨 장미가 새잎을 내밀고 백설같은 산 벚꽃과 매화는 함박웃음을 안고 고운 얼굴로 너울너울 춤추며 장관을 이루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가 저절오 나오며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형형색색의 철쭉도 뒤질새라 꽃망울을 터트리고 교정 발길 닿은 곳 어디나 연초록의 생명의 이파리들이 지천으로 물결을 이루고 흔들거리며 꽃송이들은 청천(靑天)의 숲을 더욱 싱그럽게 한다.

숲과 꽃이 바다를 이루는 이곳 교정은 참새를 비롯하여 때까치와 굴뚝새. 할미새가 기쁨에 넘쳐 종일 즐겁게 노래 부르고 춤추며 생명의 활기가 넘치고 있는 공간이다.

생명의 푸른 이파리들과 만발한 꽃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마음가짐은 우주의 반짝이는 별처럼 맑고 밝고 훈훈하리라.

남녀 1000여명의 꿈나무들은 오늘도 도심 한가운데에서 맑은 공기와 우주의 정기를 흠뻑 마시며 심신을 갈고 다지며 미래를 향해 분투노력하고 있다.

학생들은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현관 앞의 대형 수족관속의 금 잉어, 붕어와 눈웃음을 주고받으며 동심의 세계로 빠져든다.

도심 한 가운데 자리잡은 교정에서 학생들은 자연과 더불어 푸른 꿈을 키워가고 있으니 그야말로 푸른학교 바른교육이 아닌가 싶어 학교도 학생도 마냥 정겹다.

이곳이 마음껏 꿈을 펼치고 싶은 교육요람지요 무릉도원(武陵桃源)이다.

날마다 학생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학생과 함께 큰 둥지를 품어가고 있어 즐겁고 기쁨이 넘치고 있으니 뿌듯함을 만끽하고 있다.

변화와 혁신의 바람이 화두가 되어 이곳 교육현장에 몰아쳐도 아낌없는

사랑과 열정으로 학생의 마음을 얻어 가르치는 교사와 따르는 순박(淳朴)한 아이들은 온 교정이 울창한 녹음 속에 반짝이는 별처럼 각자의 꿈을 안고 길을 찾아 노력하고 있는 모습에서 큰 재목이 태어나리라는 벅찬 기대가 나를 흐뭇하게 한다. 요즘 교육현장에는 폭력과 성 관련문제들이 심상치 않게 일어나고 있어 많은 학부모들이 우려하고 있다.

우리학교 교정은 꽃밭과 숲속으로 둘러싸여 철따라 꽃이 피고 지고 새들의 속삭임이 끊이지 않는다.

사계절 자연과 더불어 꽃밭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은 어느새 고운 심성이 싹트고 그야말로 푸른 학교 속에서 바른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발견하며 된다. 바른 기본생활습관과 가치관이 형성되고 인성교육과 전인예절교육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아이들은 인사성(人事性)이 밝기로 정평이 나 있다. 교내외에서 때때로 만나도 인사 잘 한다. 교장선생님은 인사교육만 잘 지도하면 인성교육이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강조하신다.

 냉난방시설과 현대화된 교수매체를 구비하고 모든 학습자료와 쾌적한 학습공간이 준비되어 있어 학생들은 교육활동에 부족함이 없고 활기가 넘쳐 행복감에 젖어있다.

사학(私學)의 기여도가 교육발전과 국가 인재양성에 큰 역할을 하였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교내외 구석구석 둘러보아도 휴지 한 장 없으며 팬지와 폐튜니어가 심어진 꽃 박스가 즐비하고 황홀하며 쾌적하고 청결한 교육환경이다.

글로벌 무한 경쟁시대를 맞이하여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고 인재양성이 절실한 현실에 우리학교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조기에 발굴하여 타고난 잠재력을 계발할 수 있도록 능력과 소질에 따라 영어와 수학 영재학급을 운영하고 있어 각종 경시대회에서 우수한 입상 실적과을 얻고 있다.

특히 수학분야에서는 03,05,06년도에 대통령과학장학생(이동현,최현정,서지혜)이 선정되어 각 4천만원이라는 거금의 장학금을 받았고 또한 올해에는 2학년학생이(서지혜,최지원) 포항공대에 합격하여 조기 졸업으로 진학하였다. 

이러한 결실은 역량과 자질을 겸비하여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무욕의 마음가짐으로 분골 무아헌신하고 계시는 지도교사의 값진 희생정신으로 우러러 생각된다.

학생들은 한량없는 선생님의 은공에 감사하고 더욱 정정진(正精進)하고 있다.

평생을 근검절약으로 모은 사재를 털어 육영사업의 뜻을 이루신 설립자의 건학이념인 "신의(信義). 인화(人和). 창조(創造)"를 건학이념의 모토(motto)로 성실과 근면, 화합과 봉사, 창조와 개척의 건학정신이 학생들 가슴속에 알알이 새겨져 실력향상에 매진하고 있는 모습에서 큰 보람이 있음직하다.

가르치는 교사의 믿음과 열정 속에 배우는 학생들의 자긍심이 낮에는 교실에서, 밤에는 도서관에서 꺼질 줄 모르는 불빛이 되어 명문 ꡐ한일고ꡑ로 자리매김하고, 학생들은 역사의 주인공으로 희망 가득한 미래의 그 꿈을 펼치고 자신의 길을 찾아 꼭 자아실현을 도모하고 국가. 사회발전에 기여 할 수 있기를 염원해본다.

         ( 본 글은전북일보와 전북교육지및 문예연구지 또 전국 교육주간지에 게재되어 5월에 책으로 발간됨-예쁜시계 상품받음)

 

                                         새만금 현장을 찾아가다

 

유난히 뜨겁게 달구던 더위도 한풀 꺽이고 풀벌레 소리가 가을을 재촉

하듯 서늘함을 들려주는 8월 27일 전북문우회원 80여명은 두대의 버스에 올라 서해바다의 중심인 바닷길을 막아 이 고장 부안과 군산을 연결하는 새만금 간척사업 현장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일평생을 후학들의 뒷바라지에  헌신봉사하고 영예롭게 졸업한 교육행정원로들은 매월 전국 구석구석의 산업현장과 선진지 명소를 시찰하고  변화발전하고 있는 현장의 모습을 체득하면서 노후의 삶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보내고 있다.

새만금사업이란 산업도시, 도로건설, 주거단지 등으로 해마다 사라지는 농경지를 대체할 귀중한 토지를 화보하기 위하여 변산반도 해변에서 고군산열도까지 길이 33km의 방조제를 막아 토지 8,500만평을 조성하고 10억톤의 수자원을 화보하여 농업,공업, 생활용수로 활용할 대역사의 국책사업이다.(국토확장 1억 2천만평)

지난 1991년부터 2011년 완공목표로 현재 막지않은 방뚝 2.7km만 남겨놓고 배수갑문 공사가 한창 진행중에 있다.

새만금사업이 완공되면 일부는 우량농지로 조성되어 친환경 농업을 실현하고 고군산 군도와 연계한 교통망이 구축되어 다양한 관광요소를 갖춘 국제해양관광도시를 건설한다는 원대한 꿈이다.

레저관관형 복합도시로는 새만금지구 일대가 가장 적지로 중국과 접근성이 뛰어난 서해안의 한 중심에 위치에 있으며 내변산 국립공원을 비롯한 백체문화권의 각종 관광자원이 풍부하다고 한다.(동진강유역관광지 2천만평조성)

또한 수심이 깊어 서해안 항만건설후보지로 최적지라고 한다.

일행은 바지런을 떨어 정해진 아침 8시에 출발하여 잘 다듬어진 준 고속화도로를 지나 산과 들, 바다가 함께 어우러진 새만금사업 시척지 변산반도를 향해 달리니 확트인 황금들판에는 벼가 알차게 익어가는  풍광에서 올해도 풍년 농사가 기대되고 있었다.

1시간쯤 달리니 그새 버스는 바다가 보일듯 해안선에 접어드는 바람모퉁이라는 동네를 지나니 육지를 따라 불어오는 서해바람은 모퉁이에서 흩어져 살결을 스치고 간다.

바닷바람에 갯내음을 실어 고스란히 이곳에 제일 먼저 닿았을 것이고 한쪽 바람은 격포를 향하고 한쪽 바람은 내변산으로 불어 가게끔 하였을 것이다.

해안선을 돌아 의상대사가 머물고 갔다는 의상봉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곳을 지나니

푸른 하늘과 맞닿을 듯 서 있는 풍력발전소를 만나고 해창 갯벌이 나타난다.

바닷물을 쓸고 간 흔적 위로 수건을 둘러쓰고 삼삼오오 모여 바지락과 조개류를 캐는 아낙내들의 모습이 그저 정겹고 쓸쓸하다.

해창 다리를 지나니 도로변의 대자연 해안가 언덕에 외롭게 숨을 쉬고 있는 신석정(辛夕汀)詩碑가 일행을 반기고 버스는 새만금전시관에서 멈추어 잠시 안내원의 진척설명과 영상을 시청하고 8개의 배수관문이 완공된 어도의 방조제 현장을 관람하고 군산 신시도로 달린다.

우람찬 배수관문은 앞문과 뒷문으로 1갑 설치비가 200억이라고 한다.

 이곳 살기좋은 부안은 자연과 문화와 사람 그리고 물이 함께 어루러지는 예향(藝香)지역으로 예부터 향토문인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500여년 전 조선 선조시절 기녀인 비운의 여류시인

 이매창(李梅窓)의 유명한 구애시를 가슴으로 읆조려본다.

                       梨花雨 흩날릴 제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을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라하느라

위 詩는 사랑하는 님을 찾아 한양으로 갔으나 찾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 그리운 님 생각에 상사병으로 몸져 누워 젊은 나이에 죽음에 이른다.

현재 부안교육청 건너편 넓다란 녹지에 문학동산인 매창공원을 아름답게 조성하여 시비를 세우고 휴식공간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아든다.

또한 부안이 낳은 현대 한국시단의 거목이며, 목가적 민족시인으로 전원 시인인 신석정님의 대표작 詩 한수 실어본다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 지대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야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 새기  마음 놓고 뛰어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그 먼 나라를 일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서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즈시 타고 내려오면

  양지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 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서요

  그 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내리면

 꿩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라

 서리가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

 노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나와  함께 그 새빨간 능금을 또옥똑 따지 않으렵니까?

 

夕汀시인은 20여 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자연으로 돌아간 어머니를 부르는 절절한 사모곡 작품이며 모성에 대한 그리운 詩가 다수씌여있다. 선생은 한 생애를 청담한 풍모와 격조높은 인격의 선비로 후학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은 향토 서정시인으로 詩문학사에 크게 공헌 하였다.

일행은 군산땅에 도착하여 맛있는 매운탕에 소주 한 잔으로 공복을 채우고 야미도 비응도 를 거쳐 신시도로 달린다.

 신시도의 높은 바위산을 깍아 밑 바닥에 배수관문 10개를 만드는 대역사의 기계소리가 요동치고 분주하다.

한때는 환경단체들의 억지논쟁과 아우성으로 공사가 중단되기도 하였고 현재도 논쟁은 불식되지 않고 있다.

 어느 누가 이 거대한 대역사를 막을 것인가?

비좁은 국토를 땅 한평이라도 개간하여 우리와 후손들이 안락한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갯벌은 다시 살아나온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으로 갔다가 오고

왔다가 가는 순환작용으로 우주의 생명체는 살아나온다.

이제 새만금은 세계적인 친환경간척 모델로 개발되어 미래세대에

 물려줄 자랑스런 유산이 되리라 확신하면서 즐거운 현장체험이었다.

산업시찰 행사를 주관한 문우회장님을 비롯하여 사무국장님,총무님께

더없는 감사를 드리며 문우회가 더욱 활기차게 발전하여 전북교육   발전에 일조하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맺는다.

                                         (문우회보.  전북문우회원     李     奉    熙  )

 

                            퇴직자의 하루 일기

한 해가 저물어 갑신년 새 해가 열고 공직에서 졸업하여 어느새 1년 가까이 지나간다.

올해 봄날에는 흐리고 비 뿌리는 날이 많았지만 

 여름날에는 유난히 찜통 더위가 몸살을 앓고 지나갔다.

새해 첫 일요일(1월4일),  교무님의 설교에서 모든 착심을 버리고 변화

된 삶을 살으라 했는데 난 아직도 미련이 남아있는지 실감이 가지 않다. 지난 31년  6개월동안 기나긴 세월을 열정과 애정으로 초.중.고또는 교육행정기관에서 후진양성의 뒷바라지에 나의 일평생을 다 치고 아무런 탈없이 정년퇴임을 하고 영예로운 "옥조근정훈장"까지 았으니 이보다 더한 쁨이 없으려만 그래도 뒤돌아보면 못다한 일이 남아 아쉬움은 남는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자고 자신과의 굳은 약속을 했건만 지나온 세월을 더듬고 뒤돌아보면 내 삶의 도처에 검은 얼룩들이 어지럽게 찍혀있는것 같다.

새 해 첫날은 평생을 허물없이 터놓고 정을 주고 받고 지내고 있는 이웃에 사는 죽마고우 가족과 함께 내 고향 땅에 손맛있다고 소문난 매운탕집에 들려 소주 한 잔으로  마음을 달래고 퇴직기념 축하와 신년 계획을 담소하며 즐겁게 보냈다.

 

둘째날은 밀린 은행업무 처리차 운동겸  도보로 시내에 외출하여 우연히 평소 친분있는

 LG 사장님을 만나 점심을 하고  오후에는 집근처 초등학교에 들려 나의 수필집 '푸른 꿈을 위하여'우송할 주소록을 정리하느라  컴퓨터를 빌려 이것저것 정리하였다;

 

세째날은 남은 인생을 무엇을 하고 어떻게 소일하며 살아가야하는 자유인의 첫 일과가 시작되는 날로 퇴직 선배들이 모임을 갖고 자주찾는  모악산 등산을 합류하기로 하고 집에서 오전 8시 40분에 출발하여 금산사 입구 용화동 삼거리에서 능선을 타고 오솔길로 두 시간동안 눈송이를 밟으며 가볍게 산행을 하였다.

 

글쓰는 오늘 현재까지 한 주일에 세번(화.목.토)은 산행을 하면서 변화하는 산천초목과 생명체를 감상하고 사색을 즐기며 우주의 정기를 실껏마시며 건강을 다지고 있다. 추위에 떨고 있던 앙상한  나무가지에 어느 날 햇살이 따뜻한 봄이되면 새싹이 움트고 새로운 생명이 살아나온다.

필 것은 피고 뻗을 것은 뻗고 맺을 것은 맺는다. 가을이 되면 낙엽이 지고 낙엽은 어디론가 흩어져 멀리 가버린다.

우주가 돌아가는대로 따라 가고 이 세상 모든 것은 허공에서 왔다가 허공으로 살아진다는 것을 조금은 느끼며 깨닫는다.

산행후에는 금산사입구 전주회관에 들려 점심내기 고스톱판을 벌이는데 100원짜리동전 판돈으로치다가 싸기만 하면 치는 두사람은 500원씩 내어 점심 밥값을 만든다. 고스톱판은 그저 즐겁고 흥이 절로 난다.

맛있는 산채와 두부찌게로 점심과 곁들인 동동주로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아! 바로 여기가 천국이며 극락정토인것을 미처 몰랐구나. 과일이며 녹차와 따근한 커피도 나오고 토종 누룽지(깐밥)도 나와 고소하다. 서비스가 만점이다.

시간 지는 줄도 모르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무아삼매(無我三昧)에 빠져 오후까지 신나게 치다가 돌아온다.
선배님들은 고희(古희) 가까운 분들로 모두가 화색이 밝고 氣가 충만한 건강한 몸과 마음을 지니고 있어 한편으론 부럽기만 하다. 역시 세속의 일은 다 잊어버리 산속에서 맑은 공기와 약수로 체력을 다지고 가볍게 살고 있으니 건강이 넘치리라. 욕불욕(慾不慾)을 실천하고 있는 분들이다.

평소 건강관리을 위하여 틈만 나면 산을 찾았는데 나의 삶을 더욱 활기차고 퓽요롭게 가꾸기 위해서  산행을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세상에 인간의 생명처럼 아름답고 존귀하고 신성하고 소중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인간의 관리중에서 가장 중요한 관리는 건강 관리다.

건강에 대한 명언을 소개하고 싶다. '돈을 잃어버리는 것은 인생의 적은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용기를 잃어버리는 것은 인생의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은 인생의 전부를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하였다.

어떻게 하면 병없이 건강한 몸으로 오래 살 수 있는냐가 우리 모두의 관심이며 소망이라고 생각한다.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병없이 튼튼한 몸으로 오래 살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관리라고  어느 선지자가 부르짖은 병없이 오래 사는 비결인 무병장수도(無病長壽道)의 4대 원칙을 소개하고 싶다.

 

첫째는 오과(五過-과음, 과식, 과색, 과로 과욕)를 피하는 것이다.

한문자의 과는 지나칠 과자인 동시에 과실 과자다. 무슨 일이나 지나치면 반드시 실수한다. 여기서 과음(過飮)은 인간의 간장을 못쓰게 만든다. 적당히 마시면 약주가 되지만 과음하면 생명을 해친다. 과식(過食)은 인간의 건강을 해친다.

사람은 나이가 먹을수록 절식하고 소식하여야 한다. 宋나라의 거유(巨儒) 朱子는 '말을 삼가 덕을 기르고, 음식을 절제하여 몸을 기르라고 하였다. 과색(過色)도 하지 않아야 한다.

남색이건 여색이건 색으로 인생을 망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과로(過勞)하지 않아야 한다.우리의 몸은 과로하거나 무리를 하면

반드시 질병을 일으킨다. 과욕(過慾)을 버려야 한다. 사람은 분수를 알고 분수를 지키고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 분수에 지나치는 행동을 하면 반드시 실패와 불행을 초래한다.

둘째는 적절한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인간의 몸은 운동을 아니 하면 녹이 슬고 기능이 약화된다.'우주에는 정기(精氣)가 충만하다.

이것을 우리의 몸안에 마셔 흡수하는 것이 운동이다.' 적절한 운동으로 나의 심신을 강건케 하여야 한다.

셋째는 라이프 워크(life work)를 가져야 한다. 산다는 것은 일하는 것이요, 일하는 것은 산다는 것이다. 생즉동(生卽動)이다. 일이 없는 사람은 인생의 허무감과 소외감과 무력감을 느낀다. 

퇴직자로 갑자기 늙고 일찍 세상을 떠나지 않기 위해서는 이렇게 글도 쓰고 운동도 꾸준히 하여 생활에 활력소를 가져오고 기쁨과 보람을 찾아야 하겠다.

끝으로 정신 관리다. 건강 관리의 근본은 정신 관리다. 몸이 건강하려면 몸의 주인인 마음과 정신이 건강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속에 시기, 질투, 분노, 불만, 증오, 공포, 불안, 복수심, 비관, 열등감, 좌절감, 절망감, 강박관념 등의 어두운 부정적 감정이 도사릴 때 우리는 절대로 건강할 수 없다.

인간은 천 가지의 질병을 갖는다고 하였는데 그중의 약 절반은 마음의 병에서 생긴다. 마음의 원인이 되어 생기는 병이 심인성 질병(心因性 疾病)이라고 한다.건강 관리의 근본은 마음가짐이다.

밝고 평화롭고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저절로 몸이 건강해진다.

 

퇴직후 오늘 이 시간 현재까지 나는  매일 아침 일찍(5시30분) 잠자리에서 일어나 공원으로 달려가 1시간 정도 氣 운동과  참선(參禪한 후 돌아와 신문 읽고 T.V를 시청하고 하루의 일과를 계획한다.

일요일에는 원불교 서신교당법회에 마음공부 열심히 하고 주문외우고 성가도 부르고 도반(道伴)들과 도담나누고 하루를 의미있게 보내고 있다.

또한 시간을 아껴가며 글쓰고 책읽고 모든 일은 계획대로 나의 삶을 뜻있고 보람있는 일을 찾아 바쁘게 움직이면서 항상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음 공부 열심히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되도록이면 이타심을 가지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아니 휴지 한장이라도 줍는 실천으로 그리고 나와 맺은 인연들에게 고마움을 잊지않으면서....

퇴직후  오늘까지 그런대로 마음을 추스리고 닦는 공부 한것 같고 은 벗 만나 보람있는 하루하루를 살아온것 같다.

남은 인생을 무아봉공의 다짐으로 욕심줄이고 기쁘고 즐겁게 살아야 하겠다.                     ( 2004. 11. 전북교육지  문예연구회원    李   奉   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