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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행복은 끝나고 고생은 시작되던 날

허니강 2009. 6. 1. 15:33

어린 시절, 행복은 끝나고 고생은 시작되던 날

강허니

  자꾸만 앞으로 가기를 주춤거리며 뒤를 자주 돌아다보게 되는 세대들에게 살아오는 동안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꼽아 보라고 한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는 부모 그늘 아래서 그럭저럭 근심 걱정 없이 지내던 초등학교 학령기 이전의 철모르던 시절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멍청하게도 초등학교 입학의 날이 곧 지옥문을 통과해 가는 날인지도 모르고 밤잠을 설치며 흥분과 기대 속에서 그 날을 학수고대하는, 생애 첫 번째 판단실수를 저지르게 되었다.

  그토록 내가 절실하게 학교 가기를 고대하였던 이유 중의 하나는 유감스럽게도 공부가 몹시 해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실은 나보다 몇 해 먼저 입학해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누나가 가끔 6․25전쟁 이후 미국이 원조 물자로 제공해 주던, 지금 생각해 보면 가축 사료로나 쓰일 만한 오래된 저질의 분말 우유를 얻어 오는 것이 몹시 부럽고 탐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콧물 닦아내는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학교라는 곳에 가보았더니 그곳에서는 밀도 높은 돼지 사육장과 같은 천막교실에다 그야말로 자유 분망하게 자라 온 새 나라의 어린이들을 가두어 놓고 헌법에도 나와 있는 개인행동의 자유를 구속하려 하거나 온갖 간섭과 핍박을 가해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만 크게 실망을 하고 말았다.

  그처럼 금시 학교생활에 싫증을 느끼게 된 우리들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우리 반 담임선생님이 아주 예쁘고 친절하신 여선생님이었다는 점이었다. 우리들의 예쁜 선생님께서는 매일같이 이제 막 부화된 오리새끼들을 훈련시키듯이 조심스럽고 친절하게 우리들을 달고 다니셨다. 그리고 방과 후 시간까지도 학교에 남아 교내 학예회에 나가 발표하게 될 무용을 열심히 지도해 주시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그토록 예쁘고 친절하신 담임선생님께서 교실에 들어오시더니 아주 슬픈 목소리로 ‘선생님이 결혼을 하게 되어 부득이 여러분 곁을 떠나게 되었다’며 작별을 고하셨다. 바로 이 때, 나는 평생 동안 거둬들일 수 없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선생님의 마지막 인사를 끝내는 순간 많은 학생들이 한꺼번에 울음을 터트려 그야말로 눈물의 바다를 이루게 되었을 때 정작 나를 포함한 몇 녀석들은 고개를 책상 밑으로 감추고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그 상황에서 내가 왜 울어야만 하는지를 얼른 이해할 수가 없었던 나는 쉬는 시간이 되어 내 앞자리에 앉아 서럽게 울어대었던 친구 놈에게 “너는 왜 그렇게 서럽게 울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 친구 대답이 “남들이 다 울길 레 그냥 따라 울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친구를 향해 “에-라-이! 사내놈이 그렇게 눈물이 헤퍼서야 쓰겠냐?”며 내가 평소에 어머니에게 자주 들어 왔던 말을 빌려 핀잔을 주긴 했지만 기분이 썩 가뿐하지는 않았다.

  나는 더 많은 인생을 살면서 비로소 울어야 할 시간에 웃어버렸던 그 때의 일이 내 생애의 두 번째 판단 실수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지금이라도 그 선생님을 찾아가 동이에서 바가지로 물 퍼내듯이 굵은 참회의 눈물을 쏟아내며 사죄드리고 싶다.  끝